전국서 모인 30만 교사들 "또 2명 사망, 우린 지금 PTSD"

박수림 2023. 9. 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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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집회 4시간 전부터 인산인해... "교육부 겁박, 9월 4일 더 모이자"

[박수림, 권우성 기자]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에 참석해 국화와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기사 보강 : 2일 오후 5시 55분]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에 교육부에서 대책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서울과 전북에서 교사 2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됐습니다. 교육부의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이잖아요." - 권아무개씨(대구·20년 차 초등교사)

"오늘과 앞으로 있을 집회들을 계기로 (교육계 상황이) 바뀐다면, 아들에게 '너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너도 그 검은 점 중 하나였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7살 아들과 함께 추모집회에 온 이아무개씨(전주·11년 차 초등교사)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를 이틀 앞둔 2일 오전 10시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수많은 버스에서 연신 교사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2시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를 3시간 앞둔 시점이었지만 이미 부근은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 권우성

집회 참가자들은 국회 쪽을 바라보고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도로 옆 가로수엔 "우리는 교육을 지킨다, 교육부는 교사를 지켜라", "벼랑 끝 교사들을 보호해 주세요", "공교육 정상화, 그날까지 우리 함께 합시다" 등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요며칠 선선했던 날씨와 달리 이날은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아스팔트 바닥을 뜨겁게 달궜다. 집회 주최 측은 교사들의 이동 동선마다 대기하며 얼음물과 "악성민원인 강경대응" "아동복지법 즉각개정"이라고 적힌 피켓을 나눠줬다. 

"교육부, 교사 얼마나 더 잃으려고 하나"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가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이날 오전부터 전국의 교사들이 집회 장소로 모여들었다. 사진은 오전 11시 50분께 대절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 박수림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가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이날 오전부터 전국의 교사들이 집회 장소로 모여들었다. 사진은 낮 12시 30분께 집회 진행요원들이 참가자들에게 피켓을 나눠주고 있다.
ⓒ 박수림
 
21년 차 초등교사 이아무개씨는 "(교육 현장이) 아무것도 안 달라져서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에서 오시는 선생님들은 새벽밥을 먹고 서울까지 올라왔다. 그만큼 절박한 것"이라며 "장소가 국회 앞인 만큼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는 기댈 곳이 없다"며 "아동을 보호하는 법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교사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자녀의 손을 잡고 집회에 참석한 이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7살 아들과 함께 전주에서 올라온 11년 차 초등교사 이아무개씨는 "아들이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변화해야 할 게 아직 너무 많아 참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학교폭력 가해 학생 8명의 부모가 학교에 화풀이를 한 적이 있어 곤란했다"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가 피해를 볼 뿐"이라고 말했다.

대전에서 올라온 18년 차 초등교사 김아무개씨는 "오늘이 3번째 참석하는 집회다. 힘을 모아 (법 개정 등) 교육 시스템 개선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로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어 "교사들 사이에서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이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대체 몇 명의 교사를 더 잃어야 교사들을 거들떠보려나 싶다"고 토로했다.

그 옆에 있던 25년 차 초등교사 류아무개씨와 10년 차 초등교사 김아무개씨도 "교사들은 우스갯소리로 '퇴직하기 전에 경찰서 안 가면 운이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한다"며 "말이나 행동 한 번 실수하면 아동학대로 몰려 제대로 생활지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13년 차 초등교사 박아무개씨는 "(서이초 교사 사망 후) 방학 내내 주말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제도 개선을 외쳤는데 아직도 변화가 없음에 모든 교사가 분노하고 있다"며 "어제 (서울과 전북에서) 교사 2명이 또 사망해 교사 집단은 지금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정상적인 교육 환경에서, 교사도 아이도 안전하고 행복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부안에서 올라온 20년 차 교사 유아무개씨도 "(또 교사가 사망했다는) 그런 기사가 뜰 때마다 앞으로 나한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직장을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교육 현장이 안 좋다"고 말했다.

"공교육 하루 멈춰 바뀔 수 있다면..."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에 참석해 "악성민원인 강경대응"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권우성
 
이들은 교육부가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9월 4일)'에 엄정대응 방침을 내세운 것에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교육 현장에선 집단연가, 재량휴업 등의 방식으로 평일인 당일 추모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대구에서 5살 딸아이와 함께 올라온 10년 차 초등교사 이아무개씨는 "(교육부는 교사들을 상대로) 교육가족이라고 말을 하면서 정말 우리의 가족이 맞는지 의문"이라면서 "49재 집회를 두고 교육부가 징계하겠다고 협박하는 건 잘못된 방식으로 교사들에게 압력을 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만난 류씨(대전·25년 차)는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를 침해하고 직무를 유기하는 것처럼 말하던데, 오히려 교육부가 직무 유기하지 않았나"라며 "9월 4일 공교육을 하루 멈춰 교육계 전체가 바뀔 수 있다면 충분히 멈춰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구에서 올라온 21년차 초등교사 김아무개씨는 "교육부 장관은 '49재에 병가 낸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겁박하고 있다"면서 "우리 권리에 대해 징계를 운운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으니 더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집회 무대 앞 1열에서 만난 20년 차 초등교사 이아무개씨는 "벌써 4번째 참여하는 집회"라며 "교육부가 대책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교사들은 아무 의미 없는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부는 '49재 당일에 왜 자꾸 뭘 하려고 하냐'면서 교사들을 이해 못 하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가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이날 오전부터 전국의 교사들이 집회 장소로 모여들었다. 사진은 오전 11시 30분 모습.
ⓒ 박수림
서이초 교사 스승 "제자 죽음에 애도 아닌 분노, 이런 불행 더는 안 돼"

오후 2시가 되자 참석자들의 묵념과 추모 영상 시청으로 집회가 시작됐다. 주최 측은 "집회에 30만 명이 참석해 지금까지 열린 일곱 번의 교사 추모집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서이초 사망 교사의 동료들은 발언자로 나서 교육부·교육청을 향해 "동료들이 안전하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 환경을 만들어 달라"라고 주문했다. 서이초 사망 교사와 1년간 함께 기간제 교사 생활을 했다는 동료 교사들 또한 떨리는 목소리로 고인을 향한 추모 발언을 이어갔다.

한 교사는 "작년에 제가 학급의 힘든 일로 병가 중일 때 고인이 저를 위로해줬고 여름 방학에 만나자고 약속했다"며 "(하지만) 약속을 지킬 수도, 다시 볼 수도 없다. (고인이 숨진) 7월 18일 우리의 삶도 함께 멈추었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가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서이초 사망 교사의 대학교·대학원 동기라고 자신을 소개한 경기도 의정부의 한 초등교사는 국화 꽃바구니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미리 준비한 편지를 꺼낸 그는 "네가 떠났다는 소식을 새벽에 듣고 학교에 출근했는데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웃어줘야만 했다"며 "나는 이제 친구와 동료들이 죽은 자리에 서서 얼굴색도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수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육부·교육청) 당신들이 바라는 공교육 교사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말 문제가 됐던 세종시 고등학교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 피해 교사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악성 민원으로 인해 직위해제를 당했거나 삶이 무너진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린다"며 "(저 역시)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 공론화 후 벌어진 교육청 감사실의 2차 가해로 인해 사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죽음도 많을 것이고,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겨우 버티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며 "저도 한때 그런 긴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났다. 저는 교직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동료 분들이 더 나은 현실에서 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홍성두 서울교대 교수는 "제자를 잃은 상실감, 누가 상대인지조차 모를 막연한 싸움,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죄책감들에 너무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발언 중간마다 울컥한 감정을 애써 추스른 그는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가장 숭고한 일은 타인을 기억하는 일"이라며 "내일 밤 서이초에 들러 우리 제자가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학생들에게 '선생님께서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학생들이 너희였다는 걸 꼭 기억해다오'라고 기도하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자의 죽음 앞에서 애도가 아닌 분노를 보여야 하는 저 같은 불행한 교수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국회, 교육부, 교육청 관계자는 서이초를 비롯한 교사 사망사건에 대한 명확한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외쳤다.

집회 말미 참가자들은 '꺾인 꽃의 행진'을 제창하며 노래 소리에 맞춰 "아동복지법 즉각개정", "악성민원인 강경대응"이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었다.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가 2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이날 오전부터 전국의 교사들이 집회 장소로 모여들었다. 사진은 오전 11시 50분께 대절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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