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쓰'로 키운 꽃 보셨나요, 얼마나 예쁘게요? [소설가 신이현의 양조장에서 만난 사람]
프랑스 파리에서 와인을 홀짝이던 소설가 신이현이 충북 충주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와인만큼이나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그가 달콤하게 와인 익어가는 냄새가 나는 양조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편집자말>
[신이현(작가)]
▲ 10년 전 유기농 펑크의 첫사랑 텃밭. |
ⓒ 유기농펑크 |
유기농에 펑크라는 이름이 들어가니까 유기농이란 말이 참 사랑스럽다. 유기농이라는 단어는 왠지 사람을 긴장시킨다. 유기농 농사를 짓지 않거나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은 괜히 환경과 몸에 죄를 짓는 느낌인데 유기농에 펑크를 붙이니 가벼워졌다. 유기농은 그냥 선택이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유기농펑크는 무슨 일을 하는 건데?" 물었더니 유기농의 연결과 순환이라고 대답한다. "아, 무엇을 연결하고 순환하겠다는 건지, 무슨 말인지 확 와닿지는 않네." 했더니 유펑답게 이히히 웃는다. "그런데 올해 농사는 어떻게 수확을 좀 했니?" 라고 물으니 한숨을 쉰다. "왕창 망했어요. 노린재가 덮쳐서 고추랑 토마토, 가지, 이런 것들은 다 망쳤어요. 허브 종류들은 잘 되었지만 이걸로 자급자족은 안 되잖아요." 아롬은 10여 년 전부터 빌라 옥상에서라도 텃밭을 해왔다. 지금 텃밭은 땅이 움푹 꺼지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고 남향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잘 되기 어려운 땅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집 앞 텃밭'은 절대 접을 수 없는 꿈이다.
▲ 펑크네 텃밭에 차린 식탁. |
ⓒ 유기농펑크 |
시간날 때마다 달려가서 쓰레기를 뽑아내고, 담을 치고, 탁자를 만들고, 틀을 만들고, 씨를 뿌렸다. 아, 어떤 꽃이 필까. 얼마나 잘 자랄까, 보고 또 보고, 작게라도 내가 심은 것에 열매 맺은 것을 수확해서 먹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은 내가 키운 것을 먹고, 거기서 나온 음식 쓰레기들은 다시 그것이 온 땅으로 보낸다는 것이에요!"
▲ 마르쉐에 나온 유기농 펑크. '퇴비클럽' 간판을 걸고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꽃을 선보였다. |
ⓒ 유기농펑크 |
▲ 퇴비클럽은 이런 걸 팝니다. |
ⓒ 유기농펑크 |
▲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해 만든 퇴비를 뿌려 가꾼 꽃밭. |
ⓒ 유기농펑크 |
"계속 하다 보니 음쓰 퇴비가 꽃만 키운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이것이 우리가 먹는 작물에게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먹는 것을 그것이 온 땅으로 다시 보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순환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시장에 나오게 된 거죠. 사실 소비자들은 소비만 하고 농업의 공동생산자로서 참여할 기회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음쓰를 퇴비화해서 가지고 와 농부님들에게 주면 작물의 공동생산자로 작게나마 참여를 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고요." 아, 그래. 이것이구나! 그 순간 유기농펑크가 지향하는 '연결과 순환'이라는 뜻을 이해하게 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땅을 사이에 두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면 그냥 좋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배울 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배울 일이 생긴다. 유평을 만날 때면 끝없는 쓰레기 생산자 인간인 나에 대해서 반성하고 분해자 인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포도밭에다 음쓰 퇴비간도 하나 더 만든다.
▲ 유기농 펑크 부부 |
ⓒ 신이현 |
"저 이제 귀농귀촌 수업 들으려고 해요." 며칠 전 우리 농장에 와서 이렇게 말한다. 오, 이제 본격적인 농부가 되어보려는 건가? "일단은 귀농귀촌 교육을 받고 두루 앞길을 물색해보려고요. 당장 시골에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제가 참 애매한 인간 같은 느낌이네요. 결국엔 나의 음쓰 퇴비를 내 밭에 돌리는 자급자족의 농업을 하는 것이 꿈인데, 아직은 어디로 갈지 잘 모르겠네요." 동글동글한 아기 돼지 두 마리 같은 사람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돼돼하게 좋다. 앞으로 무엇이 되든 지금 너무 잘 하고 있으니 무슨 걱정이랴 싶다.
▲ 텃밭에서 키운 래디시. |
ⓒ 신이현 |
"이것이 컴프리죠? 땅의 광부라고 부르는 식물이잖아요. 좀 주세요! 이 왕겨도 좀 얻을 수 있으면 너무 좋겠어요!" 컴프리와 이런 저런 식물들을 주말 농장에 심겠다고 삽으로 파서 트렁크에 싣는다. 흙더미 식물들과 왕겨포대기로 트렁크를 채우고 두 사람은 금은보화라도 실은 양 신이 나서 출발한다.
▲ 양조장에 농활온 사람들과 함께 한 유기농 펑크와 돼돼 부부. |
ⓒ 신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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