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살인자'로 지목된 단짝 이야기에 빠져든 10대들

김지은 2023. 9. 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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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를 읽고 든 생각... 나는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믿어주는 사람인가

[김지은 기자]

<죽이고 싶은 아이>란 제목만 봐도 내용이 궁금한데 책 표지에 두른 띠지 문구마저 매혹적이다. 간만에 책 좀 볼까 하고 서점에 나왔다면, 게다가 10대라면 이 청소년 소설을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책을 펼치기만 하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다. 집중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6학년 우리 아이도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내 아이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2021년 출간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10만 부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니 말이다. 지난 6월엔 한정판 썸머에디션으로 리커버 에디션이 출간되기도 했다. 

단짝이 죽고 난 뒤  
  
 합정 교보문고 청소년소설 매대에서.
ⓒ 우리학교
 
<죽이고 싶은 아이>는 추리 소설이다. 한 고등학교에서 죽은 여학생(서은)이 발견되고, 범인으로 그 여학생의 단짝(주연)이 지목된다. 모든 증거는 주연을 범인이라고 가리키는데 주연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한다.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 자체도 몰입도를 높이는데 형식 또한 최상의 몰입을 유지하게 한다. 모든 챕터는 주인공인 서은과 주연의 주변 인물들 또는 수사 진행에 필요한 변호사, 정신과 의사, 프로파일러 등의 인터뷰로 되어 있다. 한 챕터가 길어도 두 세장을 넘지 않는다. 느슨해질 틈이 없다.

독자는 사건을 파악하고 인터뷰를 보며 자신이 꼭 탐정이 된 것만 같다. 모호했던 주연과 서은이의 관계를 계속 수정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유추한다.

'왕따인 서은이를 주연이가 챙겨줬네. 아니네, 주연이가 서은이를 자기 소유물처럼 이용했네. 근데 주연이도 엄마에게 상처가 있었네.'

처음에 단정지었던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이 자꾸 바뀐다. 처음에는 큰 덩어리 같았던 주인공들이 인터뷰와 증언들을 통해 점차 섬세하게 다듬어진다. 한 인물을 조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 거의 마지막에 의외의 범인이 밝혀진다. 그러니, 재미없을 수가 있나.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진실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진실이 사실 그대로의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고 이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주인공 주연은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진실로 믿지 않는다. 경찰도 변호사도 부모조차도. 심지어 주연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서은은 이 세상에 없다.

나도 아주 조금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에서 모금할 일이 있었고 당시 난 반장이어서 선생님은 나에게 모금한 돈을 지폐로 바꿔오라고 하셨다. 모금한 돈은 딱 5만 원이었다. 모금한 돈을 가지고 집에 온 건 금요일이었고 월요일날 바꿔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일요일 오후. 시골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월요일에 지폐로 바꾼 돈만 선생님께 드리고는 바로 장례식장으로 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할아버지 장례식을 다 치르고 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모금한 돈 가져왔어?"
"모금한 돈? 나 그 돈 선생님께 드렸어."
"선생님이 그 돈 못 받으셨다고 했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신 후,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하셨고 난 조금 전과 똑같이 돈을 드렸다고 말씀드렸다. 흰 봉투에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넣어 드렸다고.

선생님께서는 책상에 앉아 계셨고 나에게 그 봉투를 받아 수첩 사이에 끼우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다시 그때처럼 똑같이 해보라고 하셨다. 난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데서 그날처럼 재연을 했다. 아무래도 처음처럼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았다.

"봉투를 신발 주머니에 넣어왔다고 했지? 다시 신발 주머니를 살펴 볼래?"

앗. 신발 주머니를 다시 보라는 건 내 말을, 재연까지 한 내 행동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신발 주머니를 봤지만 당연히 봉투는 없었다.

"집에 다시 다녀올래? 집에 있을 수도 있지."

집? 집에야말로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난 집에 갈 수밖에 없었고 집에 왜 왔냐는 엄마의 말에 어영부영 대답했고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고 엄만 선생님과 똑같이 나에게 물었다. 정말 선생님께 그 돈을 드렸냐고. 어떻게 드렸냐고. 난 같은 말을 되풀이 하다 급기야 내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선생님께 봉투를 가져다 드렸나?'

그 뒤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날 '도둑년'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무척 놀랐고 슬펐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그 일로 내 초등학교 4학년이 슬픔 덩어리가 되지 않은 이유는 내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뭐라하던 날 믿고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어른인가
 
 죽이고 싶은 아이 (한정판 썸머 에디션), 이꽃님(지은이)
ⓒ 우리학교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날 존재 자체로 사랑해주는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진실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전에, 비뚤어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주연이가 어릴 때 주연의 엄마는 주연이가 입기 싫어하는 옷을 입히고,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에 데리고 다녔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정작 주연은 그걸 좋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엄마가 필요 없어진 물건을 버리듯 자신을 버릴까 봐 내내 불안해했다.

엄마의 비뚤어진 사랑은 주연의 왜곡된 사랑으로 나타났다. 주연은 서은이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사랑했다. 항상 자신의 말대로 하던 서은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로 자기 맘대로 되지 않자 주연은 초조해졌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악의적인 소문을 냈다. 왜곡된 사랑은 가해자가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해 폭력보다 더 무섭다.

서은은 죽고 주연은 살인자가 된 상황에서 시간을 돌려 사건의 첫 단추를 생각한다. 주연의 엄마가 여행가기 싫다고 하는 주연에게 '그러니?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 하고 물었더라면. 엄마가 준 옷을 입기 싫다고 하는 주연에게 '그럼 오늘은 네가 골라 봐'라고 했더다면. 그랬다면 주연은 사랑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거라는 걸 알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어떤 부모인지, 어떤 어른인지 생각한다. 내 욕심으로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닌지,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어른인지. 사랑과 욕심을 분간 못하고 키우다간 그 끝은 상상할 수도 없이 엇나갈 수도 있다는 걸 마음에 새긴다.

《 group 》 시민기자 북클럽 3기 : https://omn.kr/group/bookclub_0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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