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15억까지 예산 증액…잇단 흉악 범죄에 '이것' 다시 뜬다
지난 7월 21일 일어난 ‘신림동 흉기난동’과 지난달 3일과 17일 일어난 ‘서현역 흉기난동’, ‘신림동 강간 살인’ 사건 등 잇따른 흉악 범죄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서 공간 디자인으로 범죄를 예방하는 셉테드(CPTED, 범죄예방환경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림동 강간·살인 사건 이튿날인 지난달 18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범행 장소인 관악산 인근 공원을 찾아 “공원·등산로에 폐쇄회로(CC)TV를 확대 설치하고, 셉테드를 둘레길·산책길 등에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 자치구별로 CCTV 설치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있고, 셉테드의 경우 올해 약 6억원이었던 셉테드 관련 예산을 내년엔 약 15억원까지 증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엔 4월 새로 설치된 셉테드 관련 조형물이 곳곳에서 보였다. 골목 귀퉁이엔 보행자가 뒤쪽을 살펴볼 수 있는 반사판이 달려 있었고, 인근 산책로와 이어지지 않은 곳에는 막다른 길임을 표시하는 안내판도 새롭게 설치됐다. 같은 동작구 사당동과 노량진동에도 지난 1월과 4월 골목 곳곳에 휴게공간과 안전펜스 등을 설치하고, 낡아서 벗겨진 담장을 새로 도색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호응이 좋은 건 중간중간 화단과 벤치를 설치한 ‘틈새만남부스’였다. 동네 주민과 골목을 거닐다 이 만남부스 벤치에 앉은 배모(78)씨는 “쉬어가는 실질적인 목적도 있겠지만 누군가 지역을 신경 쓰고 관리해준다는 기분이 들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셉테드가 한국에 도입되기 시작한 건 2005년 경이다. 경찰청은 경기도 부천·광교·판교 등 신도시 아파트에 CCTV 설치 등 비교적 간단한 범죄 예방 디자인을 시범도입했다. 2009년 서울 은평뉴타운에는 단지 설계 단계부터 셉테드 개념이 적용됐다. 도입 초기에는 신도시나 아파트처럼 관리 주체가 명확하고 외부와의 영역 구분이 확실한 장소가 주를 이뤘다.
이후 셉테드는 범죄에 취약한 재개발 지역 등으로 확장 적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이다. 10여년 전인 2012년 가파르고 후미졌던 염리동 소금길에 CCTV와 가로등을 노란색으로 칠하거나 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등 개방된 마을에 셉테드를 도입했다. 2014년에는 부산시 금정구 가마실 마을을 비롯해 셉테드가 적용된 ‘행복마을’ 16곳이 개촌하기도 했다. 이후 지자체가 중심이 돼 마을 단위에 셉테드를 적용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전문가들 “셉테드, 만병통치약 아냐”
다만 둘레길 등에 셉테드를 일괄 적용하는데 대해선 회의론도 적지 않다. 서울의 한 구청 공공 디자인 담당자는 “셉테드는 LED 안내판 등 전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최근 논란이 된 공원·산책로 등 한적한 장소에 전기 설비를 설치하려면 너무 많은 예산이 든다”고 말했다.
범죄의 성격에 따라 셉테드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므로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시민들이 갖는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는 것도 셉테드의 중요한 효과이기 때문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면서도 “뚜렷한 범죄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범죄의 경우엔 억제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강석진 경상대 교수(한국셉테드학회 연구부회장)는 “범죄자들에게 이 지역이 관리된다는 이미지를 줘야 한다”며 “가령 등산로처럼 모든 장소에 CCTV를 설치할 수 없는 경우엔 CCTV가 설치돼있다고 알리는 안내문을 곳곳에 배치하는 등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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