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권위, 강제북송 사건 인권침해 인정해놓고 각하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6월 ‘북한선원 강제북송 사건’ 진정을 각하했으면서도, 해당 사건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인정한 것으로 1일 뒤늦게 나타났다.
북한선원 강제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월남한 북한 선원 2명이 귀순의사를 표했으나, 정부가 판문점을 통해 닷새만에 강제로 북송한 사건이다. 2019년 당시에도 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됐지만, 인권위는 자료 불충분 등을 이유로 이를 각하했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3월 “인권위가 충분히 자료수집을 했다”며 인권위의 각하 결정에 취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6월 전원위를 열어 강제북송 사건에 대해 다시 논의했다.
인권위가 지난달 29일 완성한 결정문에 따르면, 인권위는 ▶피해자들이 귀순 의사에 반해 송환됐고 ▶당시 정부가 북한 이탈주민의 국적 회복 권리를 박탈했으며 ▶고문방지 협약 제3조를 위배하는 등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6월 12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송두환 위원장은 “여기에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또 통일부에 북한 주민 송환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에는 월선한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뉴얼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인권위는 이번에도 진정 자체는 각하하기로 결정했다. 사법 기관이 아니어서 조사 권한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다.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각하 사유로 들었다. ‘진정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이후라도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고 있거나 종결된 경우라면 각하할 수 있다’는 인권위법 32조가 근거다. 이 사건의 피진정인인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은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각하 결정을 두고 인권위 내부에선 반발이 작지 않았다. 결정문에 따르면 이충상·한석훈·한수웅 위원은 반대의견, 김용원 위원은 별개의견을 냈다. 반대의견을 제시한 3인은 “본안판단을 하지 않고 진정을 각하하는 것은 인권위가 패소한 확정판결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다수의견이 위법한 각하를 동일한 사건에서 반복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밝혔다. “본안 판단에 나아가기에 충분한 정도의 자료 수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 행정법원 판결을 다시 상기시킨 것이다.
반대위원들은 수사와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각하한 결정도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인권위법 32조 3항의 입법 취지는 인권위의 조사와 수사기관 및 법원의 재판 사이 절차의 중복 및 결론의 모순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인권위 조사가 이미 끝나 수사와 재판에서 절차가 중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의 결론과 모순될 우려에 대해선 “인권위가 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 정책 권고를 하는 것과 법원이 법리를 따져 유무죄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서로 기능이 다르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반박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여당 의원들은 북한선원 강제북송 사건을 거론하며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과 공방을 벌였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수사나 재판과 별도로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인권위 업무인데 왜 회피하느냐”고 말했다. 이에 송 위원장은 “회피한 것이 아니다. 자료가 부족해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각하 사유를 재차 밝혔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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