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글돈글]충치 때우러 국경넘어…치과 성지된 멕시코

이지은 2023. 9.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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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치과를 무서워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충치를 치료하기 위해 진료 의자에 앉을 때마다 땀으로 등이 흥건하게 젖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치과가 무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아픔보다 진료비를 걱정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의료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미권 국가의 사정은 어떨까요? 이곳에 사는 국민들도 수천달러가 드는 진료비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이 택한 대안은 동네 치과가 아닌 멕시코행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인들은 어째서 충치를 치료하려 국경을 넘게 됐을까요?

美, 크라운 치료에만 1000달러…값싼 치료비에 300만명 멕시코행

최근 블룸버그에는 매년 300만명에 달하는 북미권 국민이 치과 치료를 위해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향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미국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주에 있는 마을 몰라(Molar) 시티가 치과 치료의 성지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죠. 몰라 시티는 인구가 50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소도시입니다. 하지만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무려 350개의 치과가 군집해있습니다.

몰라 시티 내에 늘어서있는 치과들 [이미지출처=몰라 시티홈페이지 화면 캡처]

몰라 시티의 치과들의 치료비는 저렴하기로 유명합니다. 충치가 생긴 부분을 제거하고 레진을 때우는 충전 치료는 치아 한 개랑 250달러, 한화로 33만원을 받습니다. 크라운 치료는 500달러를 호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진료비와 비슷하거나 조금 비싼 수준으로 보입니다.

다만 치과 치료를 한번 하려면 수천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미국과 캐나다인들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블룸버그는 캐나다의 서스캐처원주에서 트럭을 타고 국경을 넘어 몰라 시티를 방문한 한 남성의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가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로 교체하는 데 총 4600캐나다달러를 썼다고 전했습니다. 그가 몰라 티까지 오는 데 쓴 교통비는 200달러 정도인데요. 같은 치료를 캐나다에서 받았다면 9000캐나다달러의 치료비가 들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밝혔습니다.

교통비를 생각해도 멕시코로 향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치과 치료를 한번 하는데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65세 이상의 고령자들과 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인 메디케어는 치과 치료 비용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치료하려면 개인적으로 치아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약 6900만명이 치과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뱅크]

보험에 가입해도 큰 보장 혜택을 누리기 힘듭니다. 미국 최대 치과 보험회사인 델타 덴탈의 치아보험 가운데 보장 범위 넓은 '델타 덴탈 프리미엄 보험'의 경우 연간 최대 보장금액이 2000달러입니다. 치과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크라운 치료를 하는데, 치아 한개당 평균 1288달러가 든다고 합니다. 높은 치료비에 비하면 보장 액수가 턱없이 적은 셈이죠.

캐나다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캐나다의 메디케어도 치과 치료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멕시코, 의료관광 수익만 연간 30억여달러

멕시코는 북미에서 온 의료관광족 덕에 큰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멕시코 관광부는 2021년 의료관광과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로 연간 80억~99억달러의 수익을 얻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중 의료관광이 차지하는 규모는 27억~35억달러에 달합니다.

몰라 시티를 세계 치과 수도라고 소개하는 홈페이지 [이미지출처=몰라 시티 홈페이지 화면캡처]

바하칼리포르니아주의 경우 치과 치료를 위해 방문한 북미인들로 인해 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겨나며 연간 13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뒀다고 합니다.

환자들을 붙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치과의 의료 장비 수준도 대폭 향상됐습니다. 몰라 시티 내의 치과들은 소규모 병원이라 할지라도 CT 장비와 연구실을 갖추게 됐습니다. 도심에도 크라운과 임플란트 생산 시설을 세워 효율성을 높였죠. 멕시코 정부는 앞으로도 의료관광족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고 바하칼포르니아주 일부 도시를 중심으로 의료진을 육성해 이곳을 의료관광 특구로 키워낼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과를 가러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비싼 의료비와 부실한 건강보험제도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힙니다. 공적 보험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시민들의 대다수는 사보험으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에 조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케어'의 근간인 전국민건강보험법(ACA) 강화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에 나섰는데요. 바이든 정부의 노력으로 치료를 위해 국경을 넘는 미국인이 차차 줄어들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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