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봉의 봉고냐, 봉고의 가봉이냐"…'무한도전' 나온 독재자 말로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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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의 봉고냐, 봉고의 가봉이냐”
아프리카 대륙 서쪽 대서양 연안의 나라, 가봉에 대한 얘기다. 반세기가 넘게 대를 이어 집권한 봉고 부자(父子) 탓에 가봉의 봉고 가문인지, 봉고 가문의 가봉인지 헷갈린다는 정도라는 말이다.
봉고 가문의 장기 집권은 이제야 막을 내릴 조짐이다. 지난 2015년 국내 지상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한국인에게도 낯익은 알리 봉고 온딤바(64) 가봉 대통령은 현재 가택연금 상태다.
최근 그의 친척으로 알려진 은구마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쿠데타 직후 알리 봉고 대통령은 금빛 장식품이 가득한 방에서 “전 세계 친구들에게 목소리를 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라며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꺼져가는 56년 ‘봉고 부자’ 시대의 3분의 2 이상은 아버지 오마르 봉고 온딤바 대통령의 집권기다. 대통령 재임 기간이 42년(1967~2009년)에 이르는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각각 만난 적 있다.
장기 집권한 독재자가 꽤 많은 아프리카 역사에서도 그보다 오래 집권한 인물은 적도 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현직·재임 44년)밖에 없다. 오마르가 2009년 사망 당시 그는 피델 카스트로(쿠바)・장제스(중국)・김일성(북한)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오래 집권한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숨진 뒤 바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14년째 가봉을 통치하던 알리 봉고도 사실 집권 기간을 5년 더 늘릴 예정이었다. 가봉 대통령의 임기는 지난 4월 헌법 개정으로 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됐는데, 지난 26일(현지시간) 치러진 가봉 대선에서 알리의 세 번째 당선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몇 시간 만에 쿠데타로 판이 뒤집혔고 이젠 ‘가봉의 봉고냐, 봉고의 가봉이냐’는 옛말이 될 듯한 상황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독재자는 국왕·군주를 제외하면 최소 30명이다. 형식적인 선거는 치르지만 권위주의 독재자 수까지 포함하면 86명이란 통계도 있다.
‘가봉의 봉고’처럼 장기집권한 독재자는 대체로 전쟁·쿠데타로 권력을 잃곤 한다. 그런데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요즘 독재자들은 강한 회복력을 보인다”며 ‘독재 청산’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봤다.
WSJ에 따르면 요즘 독재자에겐 새로운 ‘정권 생존 플레이북(A regime survival Playbook)’이 생겼다. 가짜뉴스 유포와 인터넷 차단, 측근 관리·우상화 등을 통해 권력을 연장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방식은 정당·군대·왕실을 중심으로 한 ‘제도화된 독재(institutional autocracy)’보다 한층 무너지기 어려운 ‘개인화된 독재(personalized autocracy)’를 구축할 수 있게 한다.
가짜뉴스 유포, 인터넷 셧다운도
알리 봉고 대통령도 플레이북에 따라 행동했다. 대선 전 두 야당 인사의 통화가 SNS에 유포되자 정부는 이 인사들을 ‘반역죄’로 고발했다. 통화 내용이 외세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장악한다는 취지라면서다. 물론 야당인 '대안 2023'은 대통령 측의 조작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대선 당일 선거가 끝나자 가봉 전역의 인터넷이 차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가봉 정부는 앞서 지난 2016년 치른 대선에도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인터넷을 차단했다. 이런 독재자들의 행태는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BBC는 “우간다·짐바브웨·가봉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페이스북·왓츠앱 등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차단하는 일이 보편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재 정권이 인터넷을 차단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에 가입자의 접속을 제한하도록 명령하는 식이다. 명령을 받은 ISP는 개별 사이트의 인터넷 주소 (URL)를 ‘금지된 사이트 목록’으로 넣거나 트래픽을 제한해 인터넷 속도를 느리게 한다. 이들 국가의 ISP로선 정부의 불법적인 명령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따르지 않았다간 거액의 벌금을 물거나 사업권 자체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훈센, 38년 집권 뒤 '대물림'
장남이 차기 총리로 선출됨에 따라 훈센의 권력 대물림 작업이 사실상 완료됐다. 훈센의 총리 재임 기간은 38년 7개월에 이른다. 아시아에서 훈센보다 더 오랜 기간 집권한 독재자는 장제스와 김일성 단 2명뿐이다. 훈센이 처음 총리가 됐을 때 한국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시기다.
물론 그렇다고 훈센이 권좌에서 완전히 내려온 건 아니다.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면서도 "집권당 대표·국회의원직은 유지하고 퇴임 후 국왕 최고 자문위원장을 맡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훈센은 집권 연장에 자녀들을 활용했다. 맏딸 훈 마나는 주요 방송사인 바욘TV와 신문사 캄보디아 트메이 데일리를 소유하고 있다. 총리직을 승계할 장남 훈 마넷은 전직 캄보디아군 부사령관이자 육군 대장이었다. 삼남 훈 마니는 캄보디아국민당(CPP) 내 고위직이다. 미디어와 군, 당을 자녀에게 물려준 거다.
“신과 같다”…우상화 몰두하는 독재자들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는 앞서 언급한 적도기니의 제2대 대통령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다. 오비앙 대통령은 1979년에 집권해 44년째 대통령직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군주를 제외하곤 세계 최장기 현직 독재자다. 지난해 대통령에 다시 당선돼 7년 연임이 확정됐으니 반세기(50년) 집권도 가능한 상황이다. 적도기니가 대통령을 선거로 선출하는 국가지만 ‘오비앙의 왕국’이라 불리는 이유다.
오비앙 대통령은 자신을 신·보스란 의미의 '엘 제페(El Jefe)'라 부르며 우상화에 열중하고 있다. 국영 라디오 방송은 그를 “하느님과 같다”라고 표현했고, 다른 매체는 “누구도 죽일 수 있는 적도 기니의 신”이라고 묘사했다. 적도기니의 모든 도시에 그의 삼촌이자 1대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를 축출한 쿠데타를 기념하는 거리가 있을 정도다. 추종자들은 오비앙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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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푸틴 다음엔 또 푸틴뿐”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는 “독재자들이 권력을 오래 유지할수록, 그들이 구축하는 후원 네트워크가 커질수록, 그들을 내쫓기란 점점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에서 독재 청산이 어려운 건 독재가 또 다른 독재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기니·수단·말리의 독재자들도 모두 군부에 의해 축출됐지만 다른 독재자가 들어섰다. 이를 두고 WSJ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20년 넘게 러시아를 통치하는) 푸틴 이후에도 푸틴은 있을 것이며, 어떤 유형의 푸틴이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고 전했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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