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람 잡은 '만취 킥보드'…면허취소 5년새 239배 늘었다
지난해 8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PM·Personal Mobility, 최고속도 시속 25㎞, 중량 30㎏ 미만)을 운전하던 50대 남성이 왕복 2차로 중앙선을 침범하다 마주 오던 승용차를 발견하고 스스로 넘어졌다. 경찰의 음주 측정 결과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헬멧을 착용하지 않아 머리를 다친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진료를 거부하고 귀가했다가 다음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21년 11월엔 전직 프로야구 선수인 봉중근씨가 PM을 타다가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턱 부위가 5㎝가량 찢어져 병원 치료를 받은 그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05%. 경찰은 그의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만취 PM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PM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건수는 최근 5년 사이 무려 239배 증가했다. 2018년엔 19건에 그쳤지만, 2019년 46건→2020년 115건→2021년 1503건→2022년 4542건 등 해마다 큰 폭으로 늘었다.
PM은 2020년 12월 10일 전까지 도로교통법상 별도 규정이 없어 원동기장치자전거로 취급됐다. 음주운전에 대한 형사처벌 역시 원동기장치자전거에 대한 규제를 따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PM 음주운전 단속이 활발하지 않아 실제 운전면허가 취소된 경우가 많지 않았다. 2020년 12월 10일부터는 만 13세 이상이면 PM 무면허 운전을 허용하는 등 규제가 대폭 완화된 도로교통법(2020년 6월 개정)이 시행됐다. PM이 ‘자동차등’에 포함돼 음주운전이 금지됐으나, 처벌 수준은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로 낮아졌다. 운전면허 취소·정지 처분 대상에서도 PM은 제외됐다.
그러나 PM 관련 교통사고가 빈번해지자 국회는 PM 규제 강화로 선회했다. PM 규제를 완화한 지 한 달도 안 된 2021년 1월 도로교통법을 또 바꿨다. 여기엔 PM 운전자에 대해 원동기 이상 운전면허 취득과 헬멧 등 보호장구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운전면허 취소·정지 처분 대상에도 다시 포함됐다. 다만, PM 음주운전에 대해선 범칙금 10만원만 부과하기로 했다.
이처럼 법이 오락가락하고 관련 규정이 복잡하다보니 불복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PM 음주운전으로 자동차 운전면허를 잃은 이들이 면허 취소 또는 정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결은 최근까지 엇갈리고 있다.
춘천지법 행정1부(부장 김선희)는 지난 6월 20일 A씨가 강원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면허정지 처분 취소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자동차나 PM 외의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음주운전한 경우 징역형의 형사처벌까지 규정하는 것에 비해 PM을 음주운전한 경우 경미한 범죄로 취급해 범칙금만 부과하고 있다”며 “둘 사이에 아무런 차등을 두지 않고 일률적으로 모든 운전면허를 취소 또는 정지하는 건 위반행위에 비해 과도한 행정제재”라고 판시했다.
대구지법 행정단독 허이훈 판사도 지난 7월 19일 B씨가 경북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면허취소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PM은 크기와 속도, 무게 면에서 자동차나 다른 원동기장치자전거보다는 사고시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 재물에 피해를 줄 위험성이 현저히 낮다. (중략) 음주운전으로 인한 위험성이 현저히 다른 경우라면 면허 취소·정지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PM 음주운전으로 범칙금을 부과받아 납부한 경우에는 벌금 미만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 해당해 곧바로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돼 결격기간을 통한 면허취소의 실익이 없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청주지법 행정1부(부장 이성기)는 지난 4월 6일 역시 면허가 취소된 C씨가 충북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상 면허 취소·정지 처분 기준을 충족하고 ▶이 기준이 헌법 또는 법률에 어긋나거나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이상 따라야 하며 ▶음주운전에 따른 교통사고를 방지하겠다는 뚜렷한 공익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았다고 설시했다.
이 때문에 PM 전용면허를 도입해 기존 운전면허와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스스로도 지난해 11월 ‘PM 전용면허 신설 관련 세부 추진방안’ 문건에 “원동기 면허를 요함에 따라 PM 음주운전 적발 시 위반자의 모든 운전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등 과도한 행정처분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경찰청이 지난해 1~8월에 일어난 PM 교통사고를 면허종별로 분석한 결과, 1·2종 보통면허 소지자(42.9%)와 무면허 운전자(44.6%)가 차지하는 비율이 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PM은 자동차나 다른 원동기와 비교해 가속·감속·조향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는 탓이다. 같은 기간 사망사고의 경우 1·2종 보통면허 소지자(60.0%)가 무면허 운전자(30.0%)보다 오히려 많았다.
경찰청은 2020년 12월 PM 규제 강화를 논의할 때부터 PM 전용면허를 신설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이후 3년이 가까워지도록 아직 관련 연구용역도 끝마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천준호 의원은 “PM 규제강화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약 3년이 지났지만 경찰이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지금이라도 면밀한 사고 분석과 예측을 통해 국민의 불편과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조처에 신속히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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