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발견] 96년생 신현정은 왜 가파도로 갔나

2023. 9. 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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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신묘하다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절기인데 그중에서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전환점인 '처서'라는 것이 그야말로 기막힌 듯싶다.

바람에 옅게 그을린 피부가 더없이 건강해 보였고 얼굴엔 특유의 말간 웃음이 가득했다.

천천히 성실하고 꾸준히 섬에 스며들어가는 중인 현정에게 지난 3년은 눈물 나게 아름다운 섬의 풍경에서 시작한 시선이 사람들로 그리고 마을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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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살면서 신묘하다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절기인데 그중에서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전환점인 ‘처서’라는 것이 그야말로 기막힌 듯싶다. 서귀포에 우기가 들어앉은 게 틀림없어, 혀를 내두른 초여름과 이어진 뜨거운 8월의 끝자락. 문득 불어온 선득한 바람 한 줄기에 부랴부랴 달력을 넘겨보니 처서란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던데. 주워들은 실없는 이야기로 제주에서의 열두 번째 여름을 보낸다.

처서가 지난 첫 토요일. 가파도 가는 배에 올랐다. 가파도에 사는 현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와는 지난봄 본섬에서 처음 만났다. 가파도에서 두 해 넘게 살고 있다는 스물일곱 청년과 섬 생활의 낭만과 고됨 따위의 안부를 나눴다. 곧 가파도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내가 사는 서귀포 사계리에서 배로 10분 거리임에도 약속을 지키는 데 넉 달이나 걸리다니, 반성을. 현정은 선착장에 나와 있었다. 바람에 옅게 그을린 피부가 더없이 건강해 보였고 얼굴엔 특유의 말간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오래된 촌집이지만 부지런한 손길로 희고 단정하게 단장한 작은 집. 순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 그리고 제주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이곳에서 현정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우리는 전기스쿠터를 타고 그와 친한 동네 삼촌의 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민트색 바다가 창밖으로 펼쳐진 마을 찻집에도 들렀다. 얼마 전 배우 이준호와 윤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기 드라마를 촬영한 민박집도 들렀다. 현정은 걸으며 만난 동네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내게 소개해줬다. 그는 100명 남짓한 이 섬 대부분의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인 듯했다.

‘함께 꿈꿀 수 있는 땅을 찾아 이곳에 왔어요.’ 현정은 3년 전 겨울 처음 입도했을 때를 떠올렸다. 자유롭고 건강하게 일하며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가파도를 만났다. 현정과 세 명의 동료는 곧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석 달 만에 마을 창고 가득 쌓아놓은 청보리 500가마를 몽땅 팔아치웠고 청보리 도정공장을 맡았으며 보리 농부가, 의용소방대원이, 초등학교 선생이 됐다. 그러고는 폐기물로 가득했던 어업창고를 재생해 로컬 숍을 오픈했다. 양동이로 쏟아붓듯 거센 소나기가 내리던 날, 대부분의 섬 주민이 부러 찾아준 개업 날을 잊지 못한다. 천천히 성실하고 꾸준히 섬에 스며들어가는 중인 현정에게 지난 3년은 눈물 나게 아름다운 섬의 풍경에서 시작한 시선이 사람들로 그리고 마을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어떻게 살고 싶나요.” 본섬으로 돌아갈 마지막 배에 오르기 전 건넨 마지막 물음에 그는 수줍게 웃으며 덜 보통적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계속 모험하고 도전하면서 선택하며 살 거라고도 했다.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가장 먼 곳에서 행복을 찾은 청년을 무조건 응원하기로 다짐하며 배에 올랐다. 우리는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낮의 태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으며 바람이 꽤 시원했다. 그새 청년의 행복이 옮았는지 모든 게 좋은 그런 날이었다.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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