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무대 위로 가져온 정구호의 ‘그리멘토’

장지영 2023. 9. 2.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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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이자 브랜드·공간·전시 등의 비주얼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는 지난 10년간 국내 무용계에서 가장 핫한 존재다.

정구호가 연출을 비롯해 무대·의상·조명·소품 등에 관여한 한국무용이 현대적 감성과 세련미로 관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정구호는 1990년대 초반 뉴욕 유학 시절부터 안은미·안성수 등 현대무용 안무가들의 의상을 맡으면서 무용계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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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실 배경, 6가지 에피소드
안무가 김성훈 협업 제안해 성사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시즌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의 마지막 작품 ‘그리멘토’는 안무가 김성훈(왼쪽)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협업한 작품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패션 디자이너이자 브랜드·공간·전시 등의 비주얼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는 지난 10년간 국내 무용계에서 가장 핫한 존재다. 정구호가 연출을 비롯해 무대·의상·조명·소품 등에 관여한 한국무용이 현대적 감성과 세련미로 관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용계에서 ‘정구호 스타일’이라는 명칭까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나선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최근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소위 ‘정구호 스타일’은 전통무용을 통해 대중에 각인됐지만, 그 시작은 현대무용이었다. 정구호는 1990년대 초반 뉴욕 유학 시절부터 안은미·안성수 등 현대무용 안무가들의 의상을 맡으면서 무용계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귀국 이후엔 의상 외에 현대무용 연출까지 맡는 등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그가 오랜만에 현대무용 안무가와 손잡은 신작이 관객을 찾아온다. 9월 7∼1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이는 안무가 김성훈과 협업한 ‘그리멘토’(GRIMENTO). 제목은 ‘회색’을 뜻하는 프랑스어와 ‘기억, 순간’을 의미하는 라틴어를 합친 것으로 ‘회색의 순간들’을 의미한다.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시즌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의 마지막 작품인 ‘그리멘토’는 김성훈이 정구호에게 협업을 제안해 성사됐다. 김성훈은 세계적인 무용단인 아크람 칸 댄스 컴퍼니(영국)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는 한편 안무가로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가 202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에서 선보인 ‘조동’은 2022 춤비평가상 베스트6에 선정된 바 있다. 그는 지난 2020년 ‘김주원의 사군자-생의 계절’과 2022년 서울시무용단 ‘일무’에서 정구호와 협업한 적 있다.

두 사람은 신작의 주제로 최근 각 분야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떠올렸다. ‘그리멘토’는 평범한 고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가해자의 주도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과 이를 지켜보는 방관자들의 이야기가 6가지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폭력 장면이 등장하고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의 위기에 처하는 등 교실의 긴장감이 1시간 동안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 연습동에서 열린 그리멘토 리허설 공개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 연습동에서 열린 리허설 공개 행사에서 잠깐 엿본 ‘그리멘토’는 16개의 회색 책걸상과 회색 교복을 입은 무용수 16명이 등장했다. 고등학생의 습관과 버릇을 본떠 만들어진 안무는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자세나 의자를 뒤로 젖혔다가 돌아오는 동작 등으로 구성됐다. 또한, 무용수들이 책상을 규칙적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연습실에 울리며 청각적인 자극을 만들어내는 점도 흥미롭다.

정구호 연출가는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리멘토’는 학교폭력에 맞서는 방관자의 이야기다. 방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맞서 싸우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성훈 안무가는 “책상과 의자를 활용한 안무를 하다 보니 움직임의 제한도 생기지만 새로운 공간에 따른 움직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면서 “무용수 16명이 모두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 표정과 걸음걸이 등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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