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초파리 탈출기
초복, 중복, 말복을 거치는 동안 단 한 번도 삼계탕을 먹지 않았다. 고작 뚝배기에 담긴 닭 한 마리를 먹겠다고 삼계탕집 앞에 줄을 서는 일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간과했다.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닭 다리를 뜯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조들이 몸보신을 하라고 마련해 준 삼세 번의 기회를 모두 걷어찬 나는 올여름 삼복더위를 견뎌내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에어컨 바람에 살갗이 아려 산책을 나서면 찜통에 든 찐빵처럼 머리에서 김이 오르고, 땀을 식히려 카페에 들어가면 알몸으로 겨울 바다에 뛰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이가 덜덜 떨렸다. 그렇게 얼었다 녹기를 거듭한 결과, 얼굴이 황태처럼 누렇게 뜨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9월에 접어들어 더위는 한풀 꺾였건만 얼굴색은 물론이거니와 집 나간 정신 역시 돌아올 기미가 없다. 축축 처지는 육신을 억지로 일으켜 책상 앞에 앉혀 본다. 하지만 영혼 없는 빈껍데기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랴. 진득하니 집중을 해보려 해도 자꾸만 휴대폰에 손이 가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아도 ‘유튜브’라는 세 글자를 검색창에 입력하기를 반복한다. 할 일이 태산이라 조바심이 나 죽겠는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내일은 정말 열심히 일할 거야! 다짐하며 자리에 눕는다. 그런데 가만, 어제도 이런 결심을 하지 않았던가? “매앰매앰매앰, 찌르르르르!”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매미의 울음이 “용용 죽겠지! 엘렐렐렐레!” 약 올리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다음 날에도 거리를 걸으며 찐빵이 되기를 자처했다가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얼리던 나는 비쩍 마른 황태 눈깔로 얼음만 남은 빈 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초파리가 내 주변을 맴돌았다. 안 그래도 되는 일이 없어서 짜증이 나 죽겠는데 초파리까지 나를 열받게 하다니. 나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으로 초파리에게 박수 폭격을 퍼부었다. 초파리는 나의 매서운 공격을 피해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펼치다가 궁여지책으로 컵 안으로 뛰어들더니만 얼음 위에 불시착하고야 말았다. 허허, 거참 쌤통이었다.
초파리는 가느다란 다리로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초파리가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무릎을 꿇고 나에게 싹싹 빌며 구조를 요청하는 것. 그러나 평생을 살면서 용서 따위 구해본 적 없는 녀석은 거듭 헛발질만 해댔다. 생존을 위한 초파리의 고군분투를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는 것이 전혀 없는 모습이 요즘의 나와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나 역시 의미 없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 어리석은 미물처럼 보일까?
초파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이대로라면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어차피 파리 목숨을 타고났지만 그래도 이 컵에서 탈출한다면 몇 시간, 아니 며칠쯤은 아름다운 세상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초파리의 명복을 빌던 순간, 녀석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유리컵 벽을 향해 다가간 초파리는 물방울이 맺히지 않은 쪽을 골라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숨을 고르듯 가만히 멈춰 물에 젖은 날개를 말렸다. 비상을 꿈꾸며 차분히 때를 기다리는 모습이 제법 비장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녀석이 날개를 움찔거렸다. 그리고 결국,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초파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선보인 탈출극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앉는 대신 창문을 활짝 열고 벽에 기대앉았다. 해치워야 할 일들이 나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지만,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허우적대다 금방이라도 우울의 늪에 빠져버릴 것 같지만, 성급하게 서두르며 일을 그르치는 대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날아오를 때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숨 막히는 여름의 열기 사이로 서늘한 가을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어 간다. “매앰매앰매앰, 찌르르르르!” 창밖에서 매미의 열렬한 응원이 들려온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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