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킬하고도 변별력 확보할 묘수 찾을까

이도경 2023. 9. 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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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리허설’ 6일 모의평가 주목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접수가 시작된 24일 경기도 수원시 한 고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교사와 수능실시요강 등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 경향과 난이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주관 9월 모의평가가 오는 6일 치러진다. 이번 9월 모의평가는 여느 수능 대비 모의고사보다 주목도가 높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를 지시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출제기관 주관 시험이기 때문이다. 모의평가는 올해 고3 수험생뿐 아니라 새 대입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2027학년도 대입 수험생(현재 중3)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킬러문항 없이도 상위권 변별력 확보는 가능하다고 공언해 왔다. 준킬러문항도, 새 유형의 문항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입시 현장에선 ‘그게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팽배한 상태다. 출제 당국은 과연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입시 현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출제 당국이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것이다. 상위권을 변별하는 기능을 해온 킬러문항이 빠지면서 한 문항만 틀려도 등급이 하락하게 될 정도로 난도가 하락하는 상황이다. 수능 난이도 조절은 대단히 민감한 작업이다. 평가원은 매년 6월과 9월 치러지는 모의평가 및 교육청들이 주관하는 학력평가 결과 등을 분석해 매년 수험생의 학력 수준을 측정한다. 이를 토대로 수능 문항을 출제한다. 수험생 수준을 잘못 측정하거나 출제하는 문항의 난도를 잘못 판단해도 실패하는 작업이다. 출제 당국이 ‘불수능’ ‘물수능’을 오가며 지탄을 받아온 이유다. 올해는 킬러문항 배제와 상위권 변별력 확보라는 고난도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6월 모의평가 출제에 실패했다고 교육부 담당 국장이 교체되고 평가원장이 옷을 벗었다. 어느 때보다 출제진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9월 모의평가가 ‘수능 리허설’ 성격이긴 하지만 난도 조절에 실패해도 되는 시험은 아니다. 6월, 9월 모의평가 성적은 수시모집 지원 전략을 수립할 때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수시에서 지원할 대학들의 수능최저기준을 맞출 수 있을지, 정시에서 지원 가능한 대학은 어디인지 등을 판단할 때 쓰인다. 정시에서 지원 가능한 대학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어야 수시 지원 대학을 정할 수 있다. 수시모집은 9월 모의평가 직후인 오는 11일부터 시작된다.

올해 6월 모의평가는 킬러문항 배제 지침이 적용되지 않은 시험이었다. 수험생 입장에선 ‘반쪽짜리’ 자료인 셈이다. 9월 모의평가 성적은 수시모집 이후 나오기 때문에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활용해야 한다. 만약 9월 모의평가가 난도 조절에 실패하면 올해 수험생은 두 번의 모의평가 모두 수시 지원에서 활용하기 곤란해지는 ‘깜깜이’ 상황이 된다. 결과적으로 사교육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9월 모의평가 난도 조절 실패 시 교육부와 평가원은 대입 혼란에 대한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상위권 변별력 확보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지침은 지난 6월 중순 나왔다. 이후 교육부 담당 국장이 경질됐고, 평가원은 감사와 함께 평가원장 교체가 이뤄졌다. 이규민 평가원장이 사임하고, 오승걸 평가원장이 지난달 7일 취임했다. 수능 출제 시스템과 사교육과의 유착에 대해서는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킬러문항 없는 상위권 변별력 확보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이 때문에 출제 당국이 킬러문항과 유사한 문항을 내고도 킬러문항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일단 정부가 제시한 킬러문항의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예컨대 영어의 경우 기존 어휘보다 쉽게 내고, 문장 구조는 단순화하겠다고 했다. 또한 철학처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을 들어내 내용 파악도 어렵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 영어 변별력은 유지하겠다고 했다. 지난 6월 26일 공개된 킬러문항 예시 중에는 정답률이 30%를 넘는 문항들도 있었다. 입시 현장에선 “도대체 킬러문항은 뭘 말하는 것인가”란 볼멘소리도 나왔다.

교육부는 킬러문항보다는 조금 쉬운 준킬러문항을 늘리지도 않을 것이고, 새로운 유형의 문항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과정을 여러 개 조합하거나 비틀어 함정을 파는 ‘꼼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불거진 킬러문항 파문이 확산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공수표’를 날렸다는 분석도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일반인이 보기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눈에 띄게 어려운 문항은 출제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EBS 수능 교재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고난도 문항은 가능성 있다고 전망한다. EBS 수능 교재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라면 상위권 변별력을 갖출 정도로 어렵게 출제해도 책임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제 당국이 9월 모의평가에서 제시할 해법은 킬러문항 배제만 있는 게 아니다.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 도입 후 불거진 ‘문과 침공’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출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난해 수능과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국어와 수학의 점수 차가 상당했다. 국어는 어렵게, 수학은 쉽게 내야 점수 차가 줄어드는데, 국어의 경우 킬러문항 없는 상태로 까다롭게 출제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과학탐구Ⅱ 과목이 ‘로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대가 과탐Ⅱ 과목을 필수에서 제외한 뒤 나타난 풍선효과인데, 이과 상위권 수험생 중에 과탐Ⅱ 응시자가 줄어들자 국어와 수학에서 발생한 점수 차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표준점수가 치솟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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