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동성애 건전한 비판 교육 재갈 물려 ‘문제’

임보혁 2023. 9. 2. 03: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어떻게 볼 것인가
국민일보DB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해병대 출신 체육 교사로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1990년대 말 당시만 해도 남자 중학교에서는 흔히 영화 속에서 볼 법한 체벌이 만연했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로 무뚝뚝하셨던 담임선생님은 필요 이상의 체벌을 가하시진 않았지만, 잘못에는 매서운 회초리를 드셨기에 친구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분은 내 기억 속 몇 안 되는 참된 스승으로 남아 있다.

사연은 이렇다. 학교 담장 너머 소위 구멍가게에서 군것질하겠다며 친구와 학교 담장을 넘던 난 그만 미끄러져 무릎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어린 맘에 겁이 나 양호실에서 울던 내게 담임선생님은 잘못에 대한 호통 대신 별말 없이 자신의 등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선생님은 더운 여름날 20여분 가까이 언덕을 내려가야만 닿을 수 있는 근처 병원까지 날 업고 가셨다. 중간쯤 갔을까 힘에 부치셨던지 잠시 가게 앞에서 쉬었다 가자 하시며 땀을 닦으시던 선생님의 뒷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요즘 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교권과 학생 인권이 대립하는 양상이다. 사실 이 둘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고 같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이자 권리이지만, 지금 세상은 하나만 우선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하다.

언론사에 들어왔을 때 받은 신입 교육 중 한 가지가 이번 사건을 보며 다시 떠올랐다. 그건 하나의 사건에 담긴 사실과 진실의 차이점이었다. 만약 어떤 기사에서 앞선 담임선생님의 체벌만 부각해 ‘해병대 출신 체육 교사의 체벌’이란 제목으로 사건의 단편만 전해졌다고 치자. 해병대와 체육 교사가 주는 편견에서 비롯된 부정적 이미지는 체벌이란 단어와 만나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정당성을 부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무뚝뚝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제자를 향한 말 없는 사랑을 지녔던 선생님의 본심은 호도될 것이다. 현재 벌어진 일련의 사건 역시 그 이면에 담긴 진실을 밝혀내고 소모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을 그쳐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학생인권조례 문제도 부각했다. 그동안 교계는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이유로 학생을 차별할 수 없다는 학생인권조례 속 일부 문구를 반대해왔다. 단순히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는 내용이 아니라 동성애 문제에 대한 건전한 비판 교육조차 차별과 혐오로 규정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독단적으로 막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동성애 옹호를 넘어 동성애를 조장할 우려도 크다고 봤다.

한국교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의 독소 조항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를 마치 교권 붕괴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건 지양해야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독소적 측면을 다시 돌아보고 지나친 부분에 대해선 지적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비판하면 학생 인권을 억압하는 것이고 동성애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몰아간다. 하지만 어느 그리스도인이 학생 인권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겠으며, 어느 누가 학생을 상대로 한 지나친 체벌을 정당화하겠는가. 다음세대의 선택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돕고 장려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다음세대가 스스로 분별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양쪽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동성애 같은 특정 쟁점에 있어서 무작정 학생 인권과 자유 존중이란 핑계로 덮어놓고 장려하는 ‘학생인권지상주의’보다는 동성애의 폐해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교수권 차원에서도 교사는 학생들이 편견을 갖지 않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에는 편향된 정보나 인식이 심어지지 않도록 비판적 정보를 제공할 자유 보장도 포함된다고 본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는 교사가 과연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까. 진정한 인권은 아이들의 선택을 무조건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스스로 사고하도록 돕는 것에서 시작된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