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매달린 절벽 신 하나님의 큐사인을 기도하며 기다렸다
해리슨 포드가 낡은 삼륜차에 가까스로 매달린 채 모로코 탕헤르 거리에서 광란의 추격전을 펼치고,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탄 채 노르웨이의 천 길 낭떠러지로 점프한다. 올여름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들을 열광하게 했던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의 장면들이다. 등골에 땀을 흐르게 하는 상황들은 역대급 스케일이란 수식어와 함께 관객의 걸음을 스크린으로 끌어모은다. 객석에서 환호하던 이들은 종료를 알리는 크레딧을 바라보며 떠올린다. ‘대체 저런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OOO O가 찍으면 레전드(전설)가 된다.” 전 세계 영화 제작 관계자들이 입을 모으는 이 문장의 주인공은 할리우드 1호 항공촬영감독, 스티븐 오(49·XM2 대표) 감독이다. 그는 세계 각지를 누비며 관객의 뇌리에 새겨질 영상을 촬영하고, 극한의 상황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영상을 담아내는 장비를 제작한다.
최근 방한한 그를 단성사 서울극장 피카디리극장 등 우리나라 영화의 역사가 어려있는 서울 종로에서 만났다. 영화계 거장들과 함께해 온 필모그래피로 대화의 운을 뗀 기자에게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며 미소지었다.
그의 아버지는 호주 경찰의 무술 교육을 위해 초청받아 호주 이민 1세대가 된 오영열 전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이다. 호주 태권도 산증인의 아들로 멜버른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도복을 입은 오 감독에게 태권도 사범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인생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라 생각했던 사범의 꿈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어렸을 때부터 익스트림스포츠를 좋아했습니다. 대학 입학 때 이미 태권도 6단이었죠. 그런데 2학년 시절 스키를 타다 오른쪽 발목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네 차례 수술대에 오르며 곳곳에 철심을 박은 저를 두고 의사 선생님은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두려웠고 미래가 암흑같이 느껴졌어요.”
8개월 동안 깁스를 하고 2년여 재활을 거치는 동안 무너졌던 그의 몸과 마음을 일으킨 건 부모님의 신앙과 ‘여기서 인생의 꿈을 꺾을 순 없다’는 의지였다. 아는 선배의 권유로 하게 된 관광 가이드는 그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한번은 한국의 유명 광고 촬영팀의 가이드를 맡았는데 한 식물원에서 촬영 허가를 두고 난관에 빠졌다. 오 감독은 승인해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던 식물원 관계자를 찾아가 문화적 영향력과 양국 관계를 언급하며 허가를 요청했다. 진심을 담은 그의 호소에 관계자는 결국 촬영을 승인했고 이를 계기로 오 감독은 촬영 코디네이터 제안을 받게 됐다.
오 감독은 “익스트림에 가까웠던 육체를 잃었지만 익스트림한 정신력과 익스트림을 향한 관심은 그대로였다”고 회상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무선조종 헬리콥터와의 만남이 운명적으로 다가온 이유다. 먹고 자는 시간을 빼놓곤 헬리콥터를 조립하고 더 빨리 비행하며, 헬리콥터에 장착한 카메라로 역동적인 영상을 담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함께 조종기를 쥐었던 인연이 모여 글로벌 항공촬영 기업 XM2의 마중물이 됐다.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캐리비안의 해적 5: 죽은 자는 말이 없다’(2017)는 영화계 드론 촬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꼽힌다. 이전까지 촬영용으로 사용하던 20㎏짜리 드론의 두 배에 달하는 40㎏짜리 로메오 드론이 작품을 위해 처음 개발됐기 때문이다. “3주 안에 결과물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해냈죠. XM2가 할리우드에 도장을 찍게 된 날이었어요.”
러브콜이 쏟아졌다. ‘007 노 타임 투다이’ ‘분노의 질주 9’ ‘스타워즈 9’ ‘블랙팬서 2’ ‘덩케르크’ 등에 잇따라 참여하며 생동감 넘치고 창의적인 영상을 스크린에 담았다. 스케일이 큰 작품일수록 촬영의 난이도는 높아진다. 위험도가 높아지면 기회가 제한되는 게 촬영 현장의 생리다.
오 감독은 “상상 이상의 압박감이 짓누를 만한 상황이지만 총감독의 큐사인에 앞서 기다리는 게 있다”고 했다. 바로 하나님의 큐사인이다. “‘레디, 액션!’을 준비하며 눈을 감고 늘 같은 기도를 합니다. 간단하지만 깊은 기도죠. 하나님 사랑합니다(감사). 부탁드립니다(하나님 없이는 불가능). 맡기겠습니다(온전한 믿음). 그 후 눈을 뜨면 평온함과 담대함이 새겨집니다.”
최근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배우 톰 크루즈와 작업한 미션 임파서블에선 기억에 남을 신앙적 체험을 하기도 했다. 개봉 전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스턴트신으로 알려지며, 영화 속 30초를 위해 100억여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오토바이 절벽 추락 장면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촬영지였던 노르웨이 시민들과의 격리를 위해 대형 크루즈에 스태프들이 머물며 매일 헬리콥터로 촬영장 출퇴근을 해야 했다. 배우를 태운 오토바이의 속도와 점프할 때의 각도, 촬영용 헬기와 드론의 배치 등 수많은 변수를 연구하고 시뮬레이션하며 수십 개의 GPS를 마련했지만 기상 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한 장면을 위해 수개월을 준비했는데 촬영이 멈춰버렸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로 촬영을 준비했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8일째를 지날 무렵엔 악몽을 꾸고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아내와 영상 통화를 하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아내는 교회 식구들에게, 성도들은 또 다른 성도와 교역자들에게 기도 제목을 전했지요. 13일째 되던 날, 기적처럼 날이 갰고 또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장면이 남겨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로는 불가능한 것도 서너 겹줄의 기도가 모이면 가능해진다는 것을요.”
오 감독은 올여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청소년 빔 캠프’ ‘2023 코스타 월드 인 부산’에 강사로 참여하며 다음세대 크리스천들 앞에 섰다. 그는 “청년들이 ‘오징어 게임’ ‘수리남’에 등장하는 반기독교적인 내용에 담대하다는 걸 봤다”며 “앞으로 크리스천 청년들이 보여 줄 문화와 정서가 기독교의 진리를 사회에 다시금 아로새겨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객에게 펼쳐지는 스크린의 비율은 16:9다. 영상 전문가로 살아가는 오 감독은 “직업병처럼 세상의 모든 장면이 16:9 비율로 보인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에게 16:9는 비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돼주는 성경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촬영장으로 나선다며 다음 촬영지인 루마니아로 향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9절이 모든 촬영 현장에 임하는 저의 길잡이가 돼 줍니다. 저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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