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 찾는 빈 살만… 사우디 또 이미지 세탁?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리비아 왕세자가 2019년 6월 24일(현지시간) 제다의 궁전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38) 왕세자가 불로장생 연구를 지원하고 나섰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현지시간) “사우디 헤볼루션재단이 향후 2∼4년 동안 연간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노화 치료 연구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지원금은 재단 자체 연구가 아닌 세계 각지의 연구진과 스타트업이 과학적 성과를 내고 의약품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이 재단은 사우디 왕명에 따라 2018년 비영리 단체로 설립된 뒤 2022년 7월부터 운영됐다. 헤볼루션은 건강을 뜻하는 ‘헬스’(health)와 진화를 의미하는 ‘에볼루션’(evolution)의 합성어로 양질의 삶을 연장한다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비전이 담겼다.

재단의 메흐무드 칸 최고경영자(CEO)는 선각자 의식을 지니고 비전통적인 접근법으로 노화 치료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그는 초기 지원금이 과학자들이 인간의 노화 과정을 늦추는 치료법을 개발 중인 미국의 대학과 스타트업에 투자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칸은 노화세포를 예전 상태로 돌리는 후생적 프로그래밍, 세포 내 고장 난 기관을 없애는 자가포식, 생체 기능이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퇴행하는 노화의 세 가지 분야 연구에 우선순위 없이 모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헤볼루션 재단의 이 활동을 통해 자신이 사실상 통치하는 사우디의 국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또 삶의 질을 높이고 석유 의존도가 낮은 새로운 산업을 제시하면서 사우디 국내에서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헤볼루션 재단의 활동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사우디에 대한 국제사회의 고정관념을 넘어야 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왕실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절대왕정의 지원을 꺼리고 있다.

최근 사우디가 국제 스포츠에 자금을 대는 것을 두고도 인권탄압 후진국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스포츠워싱 시도라는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다. 특히 사우디 왕실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한 배후로 지목되는 등 범죄집단으로 의심받기도 했다.

한편 노화 연구를 두고 사우디와의 관계를 껄끄럽게 여기던 과학자들은 지원금을 받자 태도가 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노화연구연맹(AFAR)은 거듭된 논의 끝에 지난해 18개 연구 사업에 자금을 받았고 그 뒤로 재정지원을 갱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스테파니 레더먼 AFAR 전무이사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며 “우리가 돈(헤볼루션 재단의 지원금)을 나눠주는 것을 보고 그런 부분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WSJ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변덕이나 중동의 정세 변화 때문에 노화 연구에 대한 자금지원이 갑자기 중단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고 전했다.

서혜원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