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고법부장 폐지로 재판 지연, 동의 어려워"… "상고제도 개선 아쉬워"
"퇴임 후 나를 위한 일 찾아볼 것… 변호사는 안 해"
"정당한 절차 따른 검찰 수사엔 성실히 임할 것"
오는 24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가 재판 지연을 초래했다는 지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기 중 가장 아쉬움이 남는 건 '상고제도 개선' 문제라고 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전날 출입기자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언론에서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들고 있다'는 질문에 "고등부장 제도 폐지가 원인이 돼서 재판이 지연됐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라며 "법관이라는 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승진 제도가 있을 때는 성심을 다하고, 없으면 그렇지 않는다는 건 법관 생활을 오래한 저로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재판 지연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 있을 순 있겠지만, 추천을 통해 (법원장이) 됐으니 재판 독려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법원장에 추천되는 분들이 충분히 사법행정에 관해 충고도 하고, 조언도 줄 수 있는 그런 분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분들을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엔 지방법원 법관이 고등부장이 되지 않으면 대부분 사표를 내지 않았느냐"며 "지방 법관이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니까 역량있고 훌륭한 분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그동안 (재판의) 속도나 처리 양에 너무 치중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자고, 물론 신속과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충실한 심리를 통해 재판하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재판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족한 법관의 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판 정지 등을 재판 지연이 심화된 원인으로 꼽았다.
임기 중 가장 아쉬운 점을 묻는 질문에 김 대법원장은 "제도적으로 제일 아쉬운 건 상고제도 개선에 관한 부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제가 취임사에서도 '상고제도 개선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대법관 증원, 심사상고제, 상고허가제 이원화 등 다양한 이론이 있고 하나하나 장단점이 뚜렷하다"라며 "논의를 거치고 사법행정자문회의 산하에 있는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가 출범해서 2년여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검토하고, 공청회를 열었지만 사실 하나로 모으기가 참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그래서 올해 1월에야 대법관을 증원하고 상고심사제 채택하는 안을 낼 수 있었다"라며 "일각에선 좀 늦었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런 부분이 쉽게 결정돼서 마쳐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년을 사자성어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첩첩산중'을 꼽았다.
그는 "지난 6년이 정말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얼핏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첩첩산중'이다"라며 "산을 넘어도 산이 있고, 산을 넘어도 산이 있고"라고 답했다.
이어 "그래도 '오리무중'은 아니었던 것 같다"라며 "갈 방향은 갖고 갔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과제가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넘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 과정에서 정말 쉬지 못했고, '노심초사', '불면불휴',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휴식이 없었던 6년 같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퇴임 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 "40년 동안 법관이라는 하나의 일만 했고, 또 이렇게 곁눈질도 제대로 해본 일이 없었다"라며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제가 뭘 좋아하는지 찾고싶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뭘 할 건지 찾아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변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23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최근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 권위를 회복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제가 있던 기간에 공과가 있기 떄문에, 과가 있다면 극복하고 잘한 게 있다면 그걸 채워넣는 건 후임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며 "조금 더 나은 법원을 만드는데 일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기 초반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조사와 검찰 수사가 이뤄졌던 시기를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했다.
김 대법원장은 "그 무렵이 제겐 가장 힘든 시간이었고, 그야말로 불면의 시간이었다"라며 "추가 조사가 여러번 있었고, 나중에 결과가 나왔을 때 결과에 수긍할 부분도 있었지만, 우리 자체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지 의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가지 생각도 하고, 다른 분들하고 의논도 한 결과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담화를 내고 시행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법원의) 무죄 판결, 징계절차 회부와 관련해선 결코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는 걸 말씀 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임성근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연루된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한 것에 대해서는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민주당의 국회 탄핵소추가 추진됐던 당시 임 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한 과정에 대한 거짓 해명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질문에 김 대법원장은 "수사 진행 중인 내용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라면서도 "원론적으로는 수사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면 당연히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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