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인>을 보면서 나라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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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기자]
남편이 변했다. 나이가 들어 변한 것이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자니 오래 전 읽었던 글 하나가 떠올랐다. '남편이 여자'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남편이 여자라니 동성 간에 결혼이라도 했나 싶어 호기심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글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글쓴이의 남편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병원 기록이 그가 여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성호르몬 수치로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나이가 들면 호르몬에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그 변화는 성격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쳐 여자는 다소 과격해지는 반면, 남자는 나약해지면서 의존성이 강해진단다.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남편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다.
▲ <연인> 스틸컷 |
ⓒ MBC |
최근에는 <연인>이란 드라마를 보며 웃었다 울었다 난리도 아니다. 평까지 남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이 떠오른다나 뭐라나. 그래? 난 <남한산성>이 떠오르던 걸. 그럼 뭐해 작가는 우리와 다른 생각으로 글을 썼을 텐데.
남편과 내가 <최종병기 활>이나 <남한산성>을 떠올린 건 드라마의 배경이 두 작품과 같기 때문이다. 드라마 <연인>의 배경,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한숨과 함께 생각이 깊어진다.
병자호란이 어떤 전쟁인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으로 남은 전쟁 중 하나가 아니던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나는 늘 선택의 문제에 짓눌린다. 올바른 선택의 엄중함 앞에서 경건해진다. <연인>을 보다 <남한산성>을 떠올린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임금은 선택을 해야 했다. 항전이냐, 항복이냐를 두고 다투는 척화와 주화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했다.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최종환)과 주화를 주장한 최명길(김태훈)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조선의 외교정책이었다. 조선의 외교정책은 사대교린이었다. 사대교린은 세력이 강하고 큰 나라는 섬겨야 한다는 사대와 대등한 입장에서 적절히 이용하며 사귀어야 한다는 교린이 합쳐져 생긴 말이다.
당시 사대의 대상은 명이었고, 교린의 대상은 청이었다. 김상헌은 교린의 대상으로 무시해 온 청에게는 항복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척화를 주장한 것이고, 청이 비록 교린의 대상이기는 하나 크고 강한 나라가 되었으니 항복을 하여 종묘사직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주화를 주장한 최명길의 입장이었다.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김상헌의 선택을 지지할 수 없지만, 그의 선택이 조선의 외교정책에 바탕을 둔 유학자의 신념이기에 무조건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의 선택에는 명분이 있었고, 신념이 있었다. 다만 시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조선은 병자호란 전에도 청(후금)의 침략을 받은 적이 있다. 정묘년의 일이다. 정묘호란에서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돌려보냈다. 조선이 큰 전쟁 없이 그들을 돌려보낼 수 있었던 데는 그들과 맺은 약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을 정벌의 대상이 아니라 명나라를 견재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으려 한 누루하치의 의중이 한몫 한 탓도 있다.
애초 누루하치는 정벌 같은 것에는 뜻이 없었고, 명나라에 대한 견제의 수단으로 조선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누루하치를 이은 홍타이지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입장은 강건했다. 노골적으로 청을 배척하고 명나라 편을 드는 조선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청은 달라졌지만 조선은 달라진 청을 알지 못했다. 그저 물러난 청(후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만 키웠을 뿐이다.
오랑캐인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은 것이 수치스럽다는 것이다. 조선의 신하들은 분노했다. 그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날이면 날마다 그들의 분노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분노는 커져갔지만 힘이 없었다. 부풀기만 했을 뿐 터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풍선처럼 무용했다.
▲ MBC <연인>의 한 장면. |
ⓒ MBC |
백성이 임금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면 임금은 그런 백성을 위해 오랑캐 왕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굴욕으로 여기며 뼛속 깊이 새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전쟁 이후 임금의 태도가 불만스런 이유다.
드라마를 보다 괜시리 시대를 고민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졌는데 시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있다. 국익이다. 국익은 오직 국민을 위한 실리 앞에서만 당당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보는 눈을 갖는 일이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곁에 두는 것조차 불편해 한다는 사실을. 그저 이용하려고 들 때만 손을 내민다는 사실을.
옆에 앉은 남편은 드라마에 빠져 애절한데, 나만 홀로 시대를 유감하며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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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글은 기자의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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