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부 힘빠진 '마스크걸', 고현정에 대한 아쉬움
[김종성 기자]
▲ 드라마 <마스크걸> 속 김모미의 모습 |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이 결국 해냈다. 공개 3일 만에 2위에 오르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더니,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했다. 지난 8월 30일, <마스크걸>은 740만 뷰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캐나다, 프랑스, 이집트 등 72개 국가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전세계가 <마스크걸>의 매력에 푹 빠진 듯하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이한별/나나/고현정)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김모미는 주오남(안재홍)을 살해하고, 그의 엄마 김경자(염혜란)에게 쫓기게 된다. <마스크걸>은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고 있다.
<마스크걸>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고현정의 말마따나 "한 인물을 세 명의 배우가 각각 맡아" 연기한다는 점이다. 신인 배우 이한별은 인터넷방송 BJ 시절의 김모미를 연기하고, 나나는 성형을 통해 페이스오프에 성공한 후 쇼걸 '아름'으로 살아가는 김모미를 맡았다. 그리고 고현정은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혀 '죄수번호 1047'로 불리는 40대 김모미를 연기한다.
하나의 역할을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설정은 그 자체로 굉장히 파격적이다. 특수분장을 통해 배역의 변화를 보여주는 게 일반적인데, 김용훈 감독은 과감하게 세 명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쪽을 선택했다.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가 특수분장 때문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 신선한 도전의 관건은 결국 시청자들이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달려 있었다.
웹툰과 싱크로율 100%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이한별은 무려 1000대 1 경쟁률의 오디션을 뚫고 발탁됐다. 김용훈 감독은 "이한별 프로필을 보고 운명적으로 느꼈다. 강렬한 인상을 줬다"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이한별은 신인 배우답지 않게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쳤는데,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김모미의 위태로운 감정을 그려내 공감을 자아냈다.
▲ <마스크걸> 스틸컷 |
ⓒ 넷플릭스 |
"(...) 그게 훨씬 더 사실적인 구성이고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도 오히려 특수분장을 하는 것보다 억지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조금 더 현실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좋았다." (고현정)
문제는 고현정이다. '3인 1역'이라는 선택은 전략적으로도 작품적으로도 좋았다. 김모미가 나나에서 고현정으로 전환되는 장면의 연출도 자연스러웠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별다른 이질감은 없었으리라. 고현정은 역시 베테랑 배우답게 '마스크걸'이나 '죄수번호 1047'로 불리는 삶에 익숙해져 초연한 얼굴을 잘 표현해 냈다. 덕분에 김모미라는 캐릭터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마스크걸>은 염혜란이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이끌고 나가는 중반부 이후 조금씩 힘에 부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건 고현정이 시청자가 기대했던 특별한 무언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후반부에서 신파로 흘러가면서 연기의 폭이 제한된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염혜란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 균형이 무너진 게 사실이다.
고현정의 역할은 이한별과 나나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김모미 캐릭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싱크로율 100%로 웹툰을 재현한 이한별이나 광기 어린 연기를 뽐낸 나나에 비해 고현정의 김모미는 미약하다. 아무래도 존재감이 떨어진다. 섬세한 감정 표현이 장점인 그의 연기 호흡과 거세게 휘몰아치는 후반부의 분위기가 불협화음을 내기 때문이다.
3시간의 특수분장을 극복한 안재홍의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는 찬사를 받았다. "아이시떼루"를 외치는 주오남은 안재홍의 인생 캐릭터가 됐다. 나나도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 역시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들의 복수에 나선 경자를 연기한 염혜란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며 드라마를 휘젓는다. 여우주연상으로 언급될 정도이다.
반면, 고현정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충격을 받았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들만 걸려 있을 뿐이다. 이 낯선 '공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살벌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염혜란에 밀리지 않는 김모미가 완성됐다면 <마스크걸>이 어떤 드라마가 됐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건, 다른 배우들과 달리 인생 캐릭터를 쓰지 못한 고현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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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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