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데이비드' 약속대로...한미일 한날 동시 대북제재 때렸다
한·미·일이 사실상 동시에 대북 제재에 나섰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며 공동 대응을 약속한 뒤 실질적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1일 오전 북한의 무인기(드론) 등 무인무장장비 개발과 정보기술(IT) 인력 송출에 관여해온 ‘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와 관계자 5명(사장 류경철, 중국 선양 주재 대표 김학철, 진저우 주재 대표 장원철, 단둥 주재 대표 리철민 및 부대표 김주원)을 대북 독자제재 대상에 올렸다. 정부의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면 한국 국민 및 기관과 금융거래가 금지된다.
이번 독자 제재는 윤석열 정부 들어 11번째다. 그간 정부가 취한 독자 제재가 총 16차례인데, 이번 정부에서 3분의2 이상 이뤄진 것이다.
몇 시간 차이 두고 각기 제재 발표
일본은 한국보다 약 3시간 뒤인 1일 오전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등에 관여한 단체 3곳과 개인 4명을 대북 제재 명단에 추가로 올렸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의한 잇단 도발 행위는 안보에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이며 지역·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해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도 한·일보다 반나절 가량 앞선 지난달 31일 오후(현지시간, 한국시간으로는 1일 새벽) 북한 국적자 전진영(42), 러시아 국적자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코즐로프(63), 인텔렉트 LLC(INTELLEKT LLC)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전진영은 코즐로프의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러시아에서 북한 건설 노동자의 외화벌이 활동에 관여했다. 러시아에서 북한의 정보기술(IT) 근로자 팀을 감독하며 이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신원 도용 작업도 이끌었다.
한날 이뤄진 3국의 제재는 지난달 24일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한 발사체를 또 발사한 데 따른 것이다. 발사 실패 직후 한·미·일 외교장관은 통화에서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한 뒤 “북한의 불법적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독자제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약 1주일만에 실제 조치가 이뤄졌다. 3국은 이번에 각기 다른 대상을 지목해 제재의 범위는 넓히고, 제재 발표일을 맞춤으로써 효과 극대화도 꾀했다.
앞서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도 3국 정상은 “다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전례 없는 횟수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재래식 군사 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실체 드러난 ‘류경프로그램개발사’
특히 이번에 정부가 제재한 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는 북한의 감시정찰자산 개발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외교부는 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를 제재 대상에 올리며 “북한의 위성·무인기 등 개발, 대북제재 회피 및 핵·미사일 자금 조달 활동 차단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선도해 나간다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북한의 무인기 개발을 겨냥해 제재 조치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앞서 지난 7월 27일 소위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 기념 열병식에서 전략무인정찰기 ‘샛별-4형’과 공격형 무인기 ‘샛별-9형’ 등 신형 무인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북한판 글로벌 호크’, ‘북한판 리퍼’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미 무인기와 흡사한 외형으로, 궂은 날씨에도 낮은 고도로 비행하며 기술 수준을 과시했다.
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는 한국이 처음으로 ‘발굴’해 제재하는 단체다. 즉, 정부의 이번 독자제재를 통해 실체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셈이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북한이 정찰위성으로 주장하는 발사체 개발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자금과 필요 부품 조달 등의 불법 루트를 역추적해 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를 밝혀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열병식을 계기로 무인기 실물을 공개한 게 단서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중첩적 ‘독자 제재 연합체’ 기능
외교 소식통은 “우리나라가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해서 즉자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따라 제재 대상에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정보 공유 등을 통해 연쇄적인 제재 조치가 이뤄질 개연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한국이 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를 제재 대상에 올림으로써 한·미·일 3국의 제재 레이더망 안에 들어온 셈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 호주나 유럽연합(EU) 등 입장유사국들도 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를 주목해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추가 제재가 중·러의 거부권 행사로 막힌 가운데 이처럼 각국이 협력해 사실상의 ‘독자 제재 연합체’처럼 움직인다면, 안보리 기능 부재를 상쇄할 만한 중첩적 제재망 구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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