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일제 강제징용 판결 때 법원 신뢰도 가장 높아”
재판 지연 문제에 “기본적으로 법관 숫자 늘려야”
퇴임 후 계획 묻자 “변호사는 안할 것”
오는 24일 임기를 마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문제와 관련해 “여러 복합적 요인이 섞인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법관 숫자를 늘리는 ‘판사 정원법’이 통과돼야 실질적 재판지연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관 인사의 공정성 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편파적이었다는 말도 이해는 되지만 나름 공정의 측면에서 기준을 세우고 인사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또 “2018년 일제 강제징용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았다”고 강조하며 “재판에 관해서는 소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31일 서초구 대법원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퇴임을 앞둔 소회 및 향후 사법부의 과제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김명수 코트’에 대한 비판을 일부 반박하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 6년은 수평적 사법행정의 실현 등의 공도 있었지만 재판 지연 및 ‘코드 인사’ 논란 등이 임기 내내 따라붙었다. 김 대법원장은 전임 대법원장 때 우수한 평가를 받았던 판사들이 다수 사표를 냈던 것과 관련해 “소위 엘리트 법관들이 많이 사직한 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저로서도 아끼고 함께 한 후배 법관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 분들이 법원에 있게 만들 공간을 제대로 확보 못한 잘못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면서도 “전체적으로 사직은 그때그때 있어왔고 지금도 훌륭한 법관들이 있어서 일률적으로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가) 시각에 따라 공정하지 않았다, 편파적이었다는 말도 이해는 되지만 나름 공정의 측면에서 기준을 세우고 가능하면 다수 의견에 따라 인사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앞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을 맡은 김미리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만 4년을 근무했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맡은 윤종섭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6년을 근무해 ‘코드 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법관 인사 주기가 있지만 중요 사건을 맡거나 개인적 사정이 있으면 여러 사정을 감안해 늘리기도 줄이기도 하는 것”이라며 “4년과 6년도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일각에서 제기해온 대법원 구성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에 대해 “한쪽에서 보는 생각이 아닌 여러 쪽에서 보는 생각이 모여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 했기에 가능하면 대법원이 균형을 갖춘 구성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편향적 대법관을 제청하는 건 가급적이면 의도하지 않았다. 대법관을 복수로 제청할 때는 균형을 맞춰서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 문제에 대해서는 구조적으로 법관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여태까지 속도나 처리량에 너무 치중하지 않는지 되돌아보자고 했다”며 “충실한 재판을 위해 할 수 있는 역량을 다해 인적, 물적 지원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다만 법관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코로나19 사태가 2020년 2월부터 3년여에 걸쳐 발생해 재판 기능이 일부 정지되고 늦어졌다”며 “여러 복합적 요인이 섞여 재판 지연 어려움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법관을 늘리는 법관 정원법이 통과돼야 실질적 재판지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판사 정원은 3214명이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원이 단계적으로 늘어나 2027년 3584명이 된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 및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고등부장 제도 폐지가 재판 지연 원인이라는 것에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며 “법관이 승진 제도가 있을 때 성심을 다하고 없으면 그렇지 않는다는 건 법관 생활을 오래한 저로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여러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한다”며 “그 부분에 대해선 법관 스스로 자각하고 인식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서는 “추천을 통해 법원장이 됐으니 재판 독려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인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충분히 사법행정에 충고도 하고 조언을 할 수 있는 분들이 법원장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분들을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지방법원 법관이 고등 부장이 되지 못하면 사표를 많이 냈지만 지금은 수석 부장이나 법원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년 간의 소회에 대해 “하루하루 돌아봐도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한 발언을 후회한 적 없는지 묻는 질문에는 “그 무렵이 가장 힘든 시간이었고 불면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 자체로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일지 의문이 많았고 여러 의논을 한 결과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담화를 냈다”며 “당시 사상 초유로 대법정이 점거되는 사태가 있었고,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면 절박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제가 그 시점에 다시 있었어도 같은 결정을 했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여러 무죄 판결, 징계절차 회부와 관련해선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같이 드린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정치의 사법화 문제와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정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법 영역으로 넘어오는 일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사법부는 재판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며 “정치와 사법의 역할이 따로 있는데 정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법으로 넘어오니 정치의 사법화가 되고, 그것에 대해 법원이 판단하니 사법의 정치화가 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금까진 정치적 사건이 법원에 게류되면 법리에 따라 처리하고 존중하고 수습이 되는 순서로 지나갔지만 앞으로 더 심화되는 양극화 상황에서 그런 일이 있을지 걱정”이라며 “정치의 영역에서 많은 일들이 조화되고 해결돼 사법으로 오는 경우가 적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개별 법관들을 보수, 진보 성향으로 분류하는 세태와 관련해 “사회 현상이 법관에게도 투영된 게 아닌가 싶다”며 “진보와 보수 한쪽 성향을 고집하고 재판하는 법관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진보로 분류되지만 판결을 전수조사하면 친노동자 판결도 많았지만 친사용자 판결도 많이 했다”며 “보수적 판결을 했을 땐 진보 쪽에서, 진보적 판결을 했을 땐 보수쪽에서 공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뿐 더러 사법신뢰, 재판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특히 정치권에서 이런 부분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은 사법신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법관 스스로 조심하고 자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언급한 사법 신뢰와 재판권위 회복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라며 “후임 후보자 말씀처럼 그런 일들이 잘 진행돼 뜻한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 후보자와의 인연에 대해 “저하고 법원 생활을 오래 같이 했고 한 대법관을 모시는 전속연구관으로 함께 일을 해 서로 친했다고 할 수 있다”며 “지난 23일 이 후보자가 방문한 자리에서는 축하와 함께 건강을 유의해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관련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판결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 일제 강제징용 판결, ‘제사주재자가 반드시 아들이 아니어도 된다’고 판단한 판결 등을 꼽았다. 의미있었던 제도 개선으로는 형사전자소송 실시를 꼽았다. 김 대법원장은 “형사 재판 첫 번째 공판 기일이 되면 서류 복사를 못해 재판을 연기 해달라는 일이 많다”며 “그간 기관간 합의가 지지부진하다 2021년 비로소 법이 만들어지고 2022년부터 작업이 시작돼 2026년 개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민들과 소송 관계자에게 큰 편익으로 제공될 것 같아 제일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적인 부분의 아쉬운 점으로는 상고심 제도 개선을 마무리하지 못한 점을 꼽았다. 또 “제도적인 것도 그렇지만 제가 말과 몸가짐도 조심했어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를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 대한 소회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은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부분에 대해 “원론적으로는 수사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면 당연히 성실히 임할 것”이라며 “당시 여러 가지 불찰로 인해 많은 분들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여전히 송구하다는 마음을 말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퇴임 후 계획에 대해서는 “40년간 법관이라는 일만 했고 곁눈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다른 분들은 뭐에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해하는지…”라며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업이랄까, 일을 하기에는…”이라며 “변호사는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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