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특정 발음 못 하면 "조센징이다" 살해…집단 증오의 시발점, 관동대지진
민생고에 조선인 혐오까지 겹쳐
자경단 주도 6000여명 사상
군·경 당국도 민심 부추긴 공범
"십오엔 오십전(十五円 五十錢)이라고 해봐!"
1923년 9월5일 도쿄 북쪽에 위치한 다바타역에 선 기차 안에선 대검을 꽂은 총을 든 군인들이 수색을 벌이고 있다. 목적은 조선인을 찾아내는 것. ‘쥬우고엔 고쥬센(십오엔 오십전)’을 ‘추우코엔 코츄센’이라 발음한 조선인들이 끌어내려졌다. 천황을 향한 충성맹세문인 ‘교육칙어(敎育勅語)’를 외우지 못한 이들도 같은 신세. 대부분은 자경단(自警團)에 끌려가 시냇가에 처박혀 죽음을 맞이했다. 제거 대상으로 지목된 사회주의자를 포함해 부정확한 발음 탓에 조선인으로 오인돼 살해당한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
위 내용은 1948년 4월 일본 시인 쓰보이 시게지(1898~1975)가 발표한 장시(長時) ‘15엔 50전’의 내용이다.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진도 7.9의 대지진이 일본 관동 지방을 관통하면서 도쿄 인근에서 19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재민은 340만명, 행방불명자는 4만명에 달했다.
이 책의 저자는 문학작품을 토대로 관동대지진 당시 상황을 고찰한다. 대지진 직후 참사 현장에서는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 "무리를 지어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다" 등의 유언비어가 돌면서 조선인들이 학살당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집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1923년 12월5일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피살자를 6661명으로 추정했다.
대형 재난으로 사회가 극심한 혼돈에 빠졌다 해도 어떻게 그런 민간인 학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저자는 당시 일본 내 조선인 혐오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일본 언론이 대지진 4년 전 있었던 3·1운동을 폭동으로 보도하면서 조선인을 적으로 인식하는 인종주의가 일본 사회에 넓게 퍼졌다는 것. 또 1919년대 토지 조사 사업으로 농경지를 잃은 조선 농민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와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면서 불만이 쌓였다고 설명한다.
학살은 자경단이 주도했다. 자경단은 1918년 담합에 따른 쌀값 폭등에 불만을 품고 쌀가게를 습격하는 ‘쌀 소요’가 벌어진 이후 ‘민중의 경찰화’를 목적으로 세워진 일종의 향토예비군 단체였다. 지역 지주와 경찰이 지원하면서, 당시 도쿄에만 3600여개의 자경단이 존재했다. 당시 퇴역군인은 주로 저임금 노동직에 종사해 조선인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군·경 당국이 조선인 학살을 묵인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지만 주도했느냐를 두고는 관련자마다 주장에 차이가 있다. 대개 ‘유언비어에 따른 우발적 폭동’으로 간주하지만, 저자는 유언비어의 근원지로 민심을 자극하는 벽보를 붙인 군·경을 지목한다. "폭도가 있어 방화 약탈을 범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당국에 협조해 이것을 진압하도록 힘쓰라."
실제 군인들이 조선인 색출에 나섰다는 증언도 존재한다. 저자는 강덕상 교수의 책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을 인용해 대지진 당시 도쿄 인근 지바 현의 나라시노에서 15연대 기병으로 근무했던 에추우야 리이치의 증언을 전한다. "어느 열차나 초만원이어서 기관차에 쌓여 있는 석탄 위까지 파리처럼 떼지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섞여 있던 조선인을 모두 끌어내렸다. 그리고 바로 칼날과 총검 아래 차례차례 고꾸라졌다. (중략) ‘피의 잔치’를 시작으로 하여 그날 저녁부터 밤중까지 본격적인 조선인 사냥을 했다."
저자는 문학작품에 담긴 당시 상황을 분석하면서 점차 현대로 초점을 옮겨 시야를 확대한다. 극우 세력이 조선인 희생자 6000여명을 부정하고, 그에 동조해 현 도쿄도지사 등이 정확한 현황 파악을 이유로 추도문 발표를 거부하는 상황을 조명하는 한편 진실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행보를 동시에 조명한다. 대표적 인물은 일본의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1880~1953)다. 1926년 일왕 암살 미수사건을 일으킨 박열의 변호를 맡았던 그는 대지진 당시 위험에 빠진 조선인을 자기 집에 숨겨주기도 했다. 이후 ‘자유법조단’을 구성해 일본 당국에 공개 질의했고, 조선인 희생자를 6000명으로 간주한 ‘관동대진재 백색 테러의 진상’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인으로서 조선인 학살에 사죄한다는 내용의 사죄문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보내기도 했다. ‘자유법조단’은 지금도 일본 평화헌법 9조 개정과 교과서 왜곡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의 주인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 관해서는 기존 해석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자경단에 몸담으며 유언비어를 신뢰했던 것으로 해석된 그의 글이 사실은 ‘풍자’라고 주장한다. 아쿠타가와는 ‘대진잡기(大震雜記)’라는 글에서 유언비어를 거짓으로 치부하는 친구 기쿠치를 향해 "선량한 시민이 됨과 동시에 용감한 자경단의 일원인 나는 기쿠치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이 글만 읽으면 아쿠타가와가 아주 나쁜 자경단원처럼 보이지만, 에세이 전체를 읽으면 그가 얼마나 검열 사회를 조롱하고 풍자하는지 알 수 있다"며 선량한 시민이란 국가가 강요하는 대로 믿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미친 사회’를 풍자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1일 별세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 역시 생전에 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2000년부터 매년 9월 첫 주 와세다대학 학생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머무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일본이 외면하는 역사를 알리는 데 힘썼다. 당시 동행했던 저자는 그가 충격을 받아 말을 잃은 학생들에게 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한다.
"쉽게 한국에 사과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정치가처럼 혀로 사과한다고 하지 말고, 그 시간이 있으면 한국을 공부하세요. 한국을 공부하는 것이 사과하는 태도입니다."
백년 동안의 증언 |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80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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