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하원선거의 대반전... 3등은 어떻게 1등이 됐나
대결을 넘어 전쟁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는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요? <오마이뉴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국민투표로 선거제도를 바꾼 뉴질랜드, 선호투표제로 사표를 막는 호주 두 '정치신대륙' 탐방에 나섰습니다. <편집자말>
[박소희, 박현광, 유성호 기자]
▲ 라리사 워터스 호주 녹색당 상원 원내대표. 호주 녹색당은 거대 양당 어디도 단독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원에서 11석을 가진 제3당으로서 '균형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워터스 원내대표는 소수정당의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하는 '선호투표제'가 다양한 정당의 협치를 꾀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 유성호 |
이 드라마는 '선호투표제(Preferential voting)'라는 호주의 독특한 선거제도에서 기인했다. 호주 하원선거는 한국처럼 하나의 지역구에서 1명의 대표를 뽑는 소선거구제이지만 딱 한 사람만 찍지 않는다. 예를 들어 후보가 5명이면,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긴다. 만약 개표 결과 '50%+1표' 이상을 얻는 후보가 없다면 가장 낮은 후보의 표는 그를 1위로 택한 유권자들이 누구를 '차선'으로 택했느냐에 따라 분산된다. 베이츠는 이 과정 덕분에 승리했다.
'단기이양제'로도 불리는 상원선거의 방식은 하원과 약간 다르지만, 기본 골격은 선호투표제다. 호주 유권자들은 정당에 투표하거나(선 상단 투표 above the line), 후보에 투표(선 하단 투표 below the line)할 수 있는데 정당에만 투표할 경우 최소 6위까지, 후보만 찍으면 최소 12위까지 표시해야 한다. 당선자는 해당 지역구의 유효표와 선거 대상 의석 수 등에 따라 정해진 할당량보다 1표 이상 더 받아야 하는데, 하원처럼 1위가 나올 때까지 선호도가 배분된다.
그 결과 녹색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상원 76석 가운데 무려 11석을 차지하는 쾌거를 올렸다. 아직 4명이긴 하지만, 하원 당선자 수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하원에서 78석(총 151석)을 차지해 집권했지만 상원에선 26석을 얻어 단독 과반에 실패한 노동당은 주요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녹색당 등과 연대하고 있다. 녹색당이 힘을 보탠 덕분에 지난해 상원에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 2억5000만 톤(2005년 대비 43%)을 감축하는 법이 찬성 37대 반대 30으로 통과될 수 있었다.
라리사 워터스(Larissa Waters) 호주 녹색당 상원 원내대표는 호주 녹색당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선호투표제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7월 10일 호주 브리즈번 지역사무실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A후보가 가장 마음에 들지만, 그 사람이 아니라면 B후보가, 세번째로는 C후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라며 "선호투표제는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표현하게끔 함으로써 민주주의와 다원성에 기여하는 좋은 제도"라고 했다.
▲ 호주의 선호투표제는 개표 과정이 복잡해 최종 당선자를 가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자신이 지지한 1순위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유권자의 표가 사표 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점이 있다. |
ⓒ 호주 선거관리위원회(AEC) 제공 |
▲ 라리사 워터스 호주 녹색당 상원 원내대표가 말하는 선호투표제 ⓒ 유성호 |
- 한국은 단순다수대표제로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한 개의 정당 혹은 한 명의 후보만 선택할 수 있다. 반면 호주는 선호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선호투표제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선택만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정당 혹은 한 명의 후보만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A후보가 가장 마음에 들지만, 그 사람이 아니라면 B후보가, 세번째로는 C후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더 민주적이다. 그래야 그 결과가 공동체의 의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고 소수정당도 어느 정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작은 정당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가장 잘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도 있다. 설령 당선가능성이 낮더라도, 그들은 자신이 해당 정당의 가치를 지지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싶어한다. 즉 선호투표제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사를 표현하게끔 함으로써 정치적 논쟁의 범주를 넓힌다. 민주주의와 다원성에 기여하는 좋은 제도다."
- 하지만 나라별 선거제도를 비교한 선거지식네트워크(The Electoral Knowledge Network)에 따르면, 234개 국가 가운데 선호투표제 또는 단기이양식 투표제를 실시 중인 곳은 8개국에 불과하다. 양원제에서 상원은 단기이양식, 하원은 선호투표제인 호주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 아닐까.
"국민이 자신들을 대표할 사람을 어떻게 선택할지는 모든 국가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호주가 다른 나라에 '이렇게 뽑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사회 구성원들이 의회 운영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도 국민들이 결정해야 한다. 만약 한국 국민들이 '이런 선거제도가 우리의 가치를 더욱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면, 의회에 그 선거제도를 요구해야 한다."
- 한국은 아직 상당수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하향식(top down)으로 이뤄진다.
"호주 역시 상향식(bottom up) 의사결정과 하향식 의사결정 모두 존재한다. 녹색당은 상향식 접근 방식이 더 필요하다고 보긴 하는데, 어쨌든 호주는 다른 나라보다 잘하는 편이다. 선호투표제뿐 아니라 상원은 비례대표제라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의사가 선거 결과에 더 많이 반영되고 있다."
▲ 호주 수도인 캔버라에 위치한 국회의사당.호주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와 준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을 선출해 상원을 구성하고, 인구에 따라 획정한 선거구별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하원의원을 선출해 하원을 구성한다. |
ⓒ 유성호 |
▲ 관광객들이 호주 수도인 캔버라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상원 의원들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호주 상원은 현재 76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12명의 상원의원이 6개 주를 대표하며 임기는 6년이다. |
ⓒ 유성호 |
- 선호투표제의 단점은 없을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거나 너무 많은 정당의 난립으로 불필요한 잡음이 생긴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던데.
"(정당이 많으면) 시끄럽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또는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골드코스트 하원의원 선거에 16명이 출마했다고 치자. 이 가운데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소수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A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낮지만 나는 이 사람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선호투표제는 이처럼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게끔 한다.
시간의 문제는 충분한 교육이 이뤄진다면 상관없다. 그래서 호주는 선관위가 연방 단위, 주단 위로 설치됐고 이들의 임무는 투표와 개표 방법 교육이다. 실제로 호주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잘못 표기하는 경우는 5%미만이다. 오류가 발생할 여지는 있지만 매우 작고, 전반적으로는 선관위의 교육을 통해 잘 관리되고 있다."
- 하지만 현실을 보면, 노동당과 자유-국민당 연합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거대 정당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없나.
"선거운영 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연방 차원에서 투표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는 없다. 선거제도가 가장 최근에 바뀐 것은 2015년(2016년 총선에 반영)인데, 우리 당도 지지한 좋은 변화였다. 이제는 상원선거에서 자신이 선택한 정당은 물론 정당별 후보에도 선호도를 매긴다. 유권자는 (정당의 경우) 1번부터 6번까지 선택해야 한다. 정당 간의 '투표 거래'를 막고, 정말로 나를 대표할 사람에 대한 선호도를 표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선호투표제 자체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현재 선거제도 개선과 관련해 검토되는 사안은 선거자금 정도다. 투표 방식은 거의 정착됐다(과거에는 유권자가 정당 선호도만 표시하면 정당 명부순으로 의석이 배정되거나 모든 후보의 선호도를 표시해야 했는데, 1순위 정당만 표기해도 해당 정당의 모든 후보에게 선호도가 배분됐다. 이 방식이 왜곡된 선거 결과를 가져온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현재는 정당 투표만 하면 1~6위까지, 후보 투표는 1~12위까지 표시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 기자 주)."
▲ 라리사 워터스 호주 녹색당 상원 원내대표가 7월 10일 호주 브리즈번 자신의 지역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호주의 선호투표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유성호 |
- 선호투표제는 결국 다당제를 구현하는 힘이 되는 듯하다. 왜 '더 다양하면 더 민주적'일까.
"공동체 구성원마다 가치관이 다르지 않나. 그 차이를 의회에서 표현할 수 있어야 의회가 공동체를 제대로 대표한다. 30%만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의견을 (의회에서) 낼 수 없다면 덜 민주적이다. 호주 상원을 예로 들자면, 상원에는 단독 과반 정당이 없기 때문에 제3당인 녹색당이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다른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협상을 해야 한다. 녹색당 지지자들이나 다른 야당 지지자들도 여전히 발언권이 있고,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의견들'은 존중받고 있다. 그것은 의회 내 협상으로 이어져 더 많은 각도에서 생각하고, 더 다양한 의견을 대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 선거제도가 이처럼 민주적이지 않다면 유감이다."
- 한국은 단순다수대표제로 지역구 의원을 뽑고 비례대표 또한 득표율의 절반만 반영해 의석을 배분하는 준연동형 비례제라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이 쉽지 않다. 녹색당도 아직 원외정당이다.
"한국 녹색당 동료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한다. 지역사회를 대표해서 열심히 활동해달라. 지난 선거 당시 주요 정당들은 지지층과 여론조사에만 귀를 기울였으나 우리는 실제로 어떤 문제가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집중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풀뿌리 캠페인을 벌였다. 호주 녹색당의 성공은 전 세계 어디서든 재현될 수 있다. 하루 아침에 이룰 수는 없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가능하다. 또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장려하는 선거제도가 있다면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지만 좀처럼 동력이 생기지 않고 있다.
▲ 관광객들이 호주 수도인 캔버라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하원 회의장을 둘러보고 있다. 호주 하원은 현재 151명의 의원이 있으며 임기는 3년이다. |
ⓒ 유성호 |
▲ 관광객들이 호주 수도인 캔버라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상원 회의장을 둘러보고 있다. 호주 상원은 현재 76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12명의 상원의원이 6개 주를 대표하며 임기는 6년이다. |
ⓒ 유성호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동훈 장관의 말 바꾸기... 이건 수사가 필요하다
- '단식 19일' 이재명, 병원 이송... 검찰은 영장 청구
- 펄펄 끓는 솥에 손을... 11시간 노동에 몸에선 썩은 내가 났다
- '오세훈표' 월 6만 5천 원 만능카드? 실체는 이렇습니다
- 이거 때문에... 오산 공군기지는 송탄에 생겼다
- "괴로워서 곁에 두고 싶지 않은" 그림, 결국 이렇게 됐다
- "말벌 좀 없어졌으면" 이 말이 위험한 이유
- 김건희 여사와 친분 없다던 김행, 댓글엔 "가슴 설렙니다"
- [10분 뉴스정복] 김태우 빈자리 도전하는 김태우
- [속보] 검찰,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