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편한 것도 좋지만…원작 콘텐츠 훼손은 걱정” [패스트 콘텐츠 시대③]

박정선 2023. 9. 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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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는 '패스트 무비' 업로더 철퇴 수순
국내서는 여전히 '결말 포함' 요약 영상 인기
"창작물 가치 보호, 유튜브 활동도 보장하는 방법 고민해야"

지난 2021년 11월, 일본 법원은 ‘패스트 무비’라고 불리는 영화 요약 영상 유튜버들에게 민형사 책임을 모두 지게 했다. 일본 센다이지방재판소가 패스트 무비를 만들어 저작권을 침해한 혐의로 3명의 남성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다. 이듬해인 2022년 11월에는 도쿄지법이 패스트 무비를 제작한 20대 남녀 2명에게 5억엔(약 48억 60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원고가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이 모두 인용된 것인데, 이들은 50여편의 영화를 축약한 영상을 게재해 저작권을 위반해 10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올렸다.

패스트 무비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다룬 법정 드라마도 나왔다. 일본 방송사 TBS에서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방영된 ‘이시코와 하네오-그런 일로 고소합니까?’라는 드라마에서는 패스트 무비 업로더가 처벌받는 에피소드가 다뤄졌다.

국내에서도 영화를 비롯한 드라마, 예능, 도서, 뉴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요약본이 콘텐츠화되고 있다. 굳이 본편을 보지 않아도 전반적인 내용을 다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영상으로도 불리는 요약 영상은, 쉽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각에선 콘텐츠 시장을 망가뜨린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요약 영상의 시청이 실제 시청으로 이어지는 홍보의 경로가 될 수도 있지만 주요 장면과 핵심 스토리, 결말까지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요약 영상 시청에만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들도 마련되어 있긴 하다. 유튜브에 따르면 이들은 저작권 보호 시스템을 활용해 침해 사례를 제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상반기, 전 세계 기준으로 약 7억여 건 이상의 저작권 침해 사례를 발견했고, 160만건 이상의 삭제 요청이 이뤄졌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 사례를 찾도록 도와주는 시스템, 저작권 침해 사례에 대한 신고 양식 등을 제공할 뿐, 선제적인 조치는 없다. 업로드되는 영상이 너무 많은 데다가 프로그램 제목을 언급하지 않는 등 여러 방법으로 단속을 피해 나가는 일도 빈번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작권 침해 영상이 오히려 인기를 얻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결말 포함’ 리뷰가 대표적이다.

리뷰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18분 가량으로 축약해 결말까지 공개한 영상 ⓒ유튜브

콘텐츠 제작사에서 근무 중인 A씨는 “드라마, 영화 업계도 요약 영상에 대한 저작권 침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신고를 한 사례들도 많고, 유튜버가 채널에 저작권 침해도 영상을 삭제했다고 명시하면서 조금씩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면서 “최근에는 오히려 제작사 측에서 결말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영상을 허용해주면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시장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운 이유는 저작권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요약본에 익숙해지다 보면, 드라마의 서사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유 중 하나다. 한 드라마 작가는 “본편을 본 이후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요약본을 재시청하거나, 작품의 이해를 위해 요약본을 추가로 시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빠르고 쉽게’ 보기 위한 방법으로의 요약본 소비는 올바르지 못한 시청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창작자가 만들어낸 영상은 대사는 물론, 배우들의 표정, 심지어 소품 하나에도 의미가 부여된다. 영상을 본래의 속도대로 진지하게 감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영상을 짧게 편집하는 과정에서 전후 맥락을 모두 담지 못하면서 콘텐츠 오독에 대한 우려도 높다. 원저작자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극적이고 무분별한 편집이 영상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통해 교권 문제가 화두에 오르자, ‘육아 전문가’로 통하는 오은영 박사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전후 사정 설명 없이 자극적으로 전달이 되는 짧은 영상이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 박사 역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금쪽같은 내 새끼’ 한 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면 금쪽이 부모의 진정성부터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대해 의논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까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유튜브 같은 짧은 콘텐츠 형식으로 편집되다 보면 원래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콘텐츠 요약 영상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는 이들은 모두 콘텐츠 제공자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튜버는 “결말을 포함하는 요약 영상이나, 자극적인 편집으로 본래 의도를 훼손하는 요약 영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요약 영상 채널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은 이해하기 어렵다. 콘텐츠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영상, 정보 제공 등 마중물로서의 역할을 하는 채널과 앞서 언급한 부적절한 영상 채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저작권과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보호하면서 유튜버의 2차 창작 활동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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