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스칼럼]역사를 평가해야 할 주체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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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까웠던 친구가 멀어지고, 멀어졌던 친구가 금세 가까워질 때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노태우 정부가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은 것을 놓고 평가가 엇갈렸다.
역사를 재평가한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낸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역사의 재평가는 정권과 정치권이 아닌 역사적인 관점에서 국민들이 평가할 때 건전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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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정부 주도 역사 재평가 국론 분열
살다 보면 가까웠던 친구가 멀어지고, 멀어졌던 친구가 금세 가까워질 때가 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대만과 중국이 그렇다. 우리는 대만(臺灣)을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중국을 중화민국공산당(中華民國共産黨)의 약칭인 중공(中共)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으로 선을 그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명칭과 평가는 달라졌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반공’을 정치 생명 연장의 도구로 활용해온 전 정권과 달리 ‘북방 정책’을 선언하면서 공산 국가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1990년 6월 미국 한복판에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직접 대면하고 같은해 9월에는 한국과 소련이 국교를 공식 수립했다. 1992년 8월에는 중국과도 수교를 맺으면서 중공이라는 단어를 없앴다. 다른 공산국가들과도 수교를 늘렸다. 1989년 2월 헝가리, 같은 해 11월 폴란드와 공식 수교했다.
부작용도 생겼다. 우리 정부와 '절친'이던 대만과는 사이가 멀어졌다. 상하이(上海)에서 윤봉길의 의거 당시 우리를 지지해준 것은 대만이었다. 중화민국의 전신인 국민정부 지도자 장제스(蔣介石)는 "4억 중국인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광복군의 군사 훈련도 도왔고, 우리나라가 독립하자 장제스는 귀국길에 오른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전용기도 내줬다. 1949년 1월 4일 중화민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대한민국을 국가로 승인하고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6·25전쟁 때는 중공군 포로 심문과 정보 수집을 위한 부대도 파병시켰다.
대만과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중국과 수교 때문이다. 대만인이 중국 민항기를 납치했는데, 강원도 춘천 미군 공군기지에 불시착한 적이 있다. 당시 대만은 납치범들을 ‘반공 의사’라 칭하며 즉각 송환을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거부했다. 대만인들은 한국대사관 앞에서 태극기를 찢으며 시위를 벌였다. 이어 1992년 8월24일 우리 정부는 대만과 단교를 공식 발표했다. 같은 날 대만의 한국대사관도 국기를 내렸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국적기 정기 항공편 운항이 재개하면서 화해는 했지만, 아직도 서먹서먹한 사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노태우 정부가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손잡은 것을 놓고 평가가 엇갈렸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보복 이후 경제적 압박을 위해 비자 발급과 통관 지연, 요소수 수출 중단 조치 등을 단행한 바 있다. 중국과 수교할 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보복인 탓에 박근헤 정부는 반중 행보를 보인반면, 문재인 정부에선 중국과 밀착했다.
정권마다 역사적 인물과 사실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내놨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개국 연도를 놓고 ‘건국절 논란’을 만들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민심은 갈라졌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6·25전쟁 수훈자인 백선엽 묘역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약산 김원봉의 서훈을 추진했다.
역사를 재평가한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낸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반면,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 역사를 뒤바꿔 놓으면서 국론 분열을 조장해 사회 통합 기능을 저해하기도 한다. 최근 육군사관학교 내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이전 문제와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 공원 조성을 놓고 시끄럽다. 역사의 재평가는 정권과 정치권이 아닌 역사적인 관점에서 국민들이 평가할 때 건전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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