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하면 손에 물 안 묻혀, 어려서 그 말에 홀랑 넘어가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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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유영인]
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은영이 엄마한테 만나자는 전화가 간단명료하게 왔다. 다음날 늦여름 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데 아침 일찍 또 전화가 왔다.
″오늘 진도로 물질을 가사쓴께 아침 먹고 바로 만납시다″
″감기로 병원에 왔어요, 김병곤 의원으로 오씨요.″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완도읍내에선 '은영이 엄마'로 더 잘 알려진 고정임 해녀를 만나러 나섰다. 피부가 좋은 해녀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유난히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고정임 해녀를 남편분과 함께 만났다.
″올해 70인디.″
″에이 거짓말...″
″참말이랑께, 우리 아저씨는 80이고.″
제주도 구좌읍이 고향이라는 고정임 해녀는 70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피부가 건강하고 고왔다.
″아니 감기에 목소리도 쉬었는데 이렇게 날씨가 안 좋은데 물질을 가세요?″
″그랑께 목이 아파서 우리 유 선생도 안 만날라고 했는디 오늘 아니먼 원고를 못 쓴다고 하도 사정 했잔애? 새복(새벽)에 진도에서 전화가 왔는디 진도는 날이 좋다고 안 하요? 그래서 다섯이서 진도 접도로 물질을 가기로 했어요.″
고 해녀는 열 다섯 살에 엄마와 함께 완도에 왔다고 한다.
″나는 형제가 자매인데 아버지가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30대 후반에 나와 동생을 데리고 완도로 이사를 왔어요. 완도는 해녀도 많지 않고 물질 할 바다가 많애서 당시에는 제주보다는 살기가 훨씬 좋았어요.
물질은 완도에 와서 열 다섯 살에 엄마를 따라 다니면서 배웠어요, 제주에서 물질을 배우지 않았는데 완도와서 물질을 조금씩 배운 겁니다. 그때는 대부분의 제주 해녀들이 애릴 때부터 바닷가에서 헤엄을 쳐요.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엄마를 보고 물질을 배웠어요. 약간 도제식이었죠. 엄마가 해녀면 딸들도 거의 물질을 안 배울 수가 없어요. 바닷가 마을 출신이 물질을 못한다고 하면 물질도 못하냐고 흉도 잽히기도 허고.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물질을 배우다 열 여덟살 때 해녀에 정식 입문했어요. 그래서 엄마랑 같이 서로 의지하면서 물질도 많이 하고, 또 동생은 물질을 배우지 않았는데 동생하고는 내가 나이 차이가 여덟살이나 나서 엄마가 동생은 공부를 시켰어요.″
결혼은 스무살에 중매 반 연애 반으로 했다고 한다.
결혼하고서 애들은 세명을 두었는데 엄마와 동생이 돌봐줬다고 한다.
″엄마는 손주들이 이뻐서 당연히 돌봐줬겠지만 동생도 우리 애들을 많이 돌봐줬어요. 물질을 부담없이 다닌 것은 모두 엄마와 동생 덕분입니다.″
해녀로서 난바르를 다니진 안 했지만 전문적으로 키조개를 오랫동안 캤다고 한다.
″저는 키조개를 많이 캤어요. 충청도 오천(충남 보령시)에서 5~6년, 녹동에서 3년, 득량만에서 8년 정도 일했어요. 주로 일주일씩 일을 하고 돌아오고 일이 있으면 또 가고 하는 구조였는데 한마디로 돈이 됐어요. 오천에서는 나눠먹기고 녹동이나 득량만은 일당제였는데 수입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마을 어장을 사면서 해녀 사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키조개를 캐면서도 마을 어장 여기저기를 사서 물질을 했어요. 어장이 넓어지니 키조개 채취는 접고 물질에 전념하게 된 겁니다.″
요즘은 일기변화가 심해 물질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달에 20일 정도를 물질했어요. 사리때가 아니면 물질이 가능했는데 그런데 갈수록 날씨가 고르지 않아요. 올해도 봄부터 초 여름까지 50일 정도 바다를 들어가지 못했어요.″
바다 날씨를 걱정하는 고 해녀의 눈빛에서 우리 주변의 환경문제가 오버랩 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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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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