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시민 1600명 도쿄에서 '대학살 자행 일본 사죄하라'

이태준 2023. 9. 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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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 희생자 추도대회' 열려

[이태준 기자]

 
▲ 간토대지진 대학살 100년 추도 대회 간토대지진 대학살 100년 추도 대회 중 한국의 개막공연 무대
ⓒ 이태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간토(관동) 지역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200만 간토 주민을 집어삼켰고, 10만 명의 사망자와 45만의 가옥을 불태웠다. 피난민들은 지진으로 무너진 폐허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재난으로 인한 사회적 대혼란을 수습하는 데 앞장서야 했던 일본 정부는 2일 계엄령을 발표했고, 다음날 3일 내무성 경보국장은 아래와 같은 내용을 각 지방 정부에 발송한다.
 
"도쿄 부근의 재해를 이용하여 조선인이 각 지역에서 방화하고 불령의 목적을 수행"
 
불길과 함께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간토를 휩쓸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불을 지르고', '재산을 약탈한다'라는.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불안은 한순간에 '불령선인'의 책임으로 뒤바뀌었다.

일본 관헌의 재난 수습이 조선인을 향한 단속과 탄압이 되면서, 질서 유지를 위해 결성된 자경단은 관헌과 결합하여 조선인 색출 작업에 나선다. 자경단은 생김새, 언어 등 자의적 판단 아래 조선인을 색출하여 무참히 학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으로 오해받아 중국인과 일본인 또한 살해당했다. 저주의 대상자로 낙인 찍혀 학살당한 조선인은 6천여 명, 중국인은 750여 명에 달한다.

하늘과 강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청빛 조화를 이룬 도쿄의 아라카와 강변에는 수 십 구의 조선인 시체가 쌓였다. 일본 정부는 강변 조성을 위해 조선인을 동원했지만, 재난으로부터 조선인의 안전을 지켜주지는 않았다. 재난의 불길을 피해 강변까지 도망쳤던 조선인은 민족 차별과 혐오로 얽혀진 '조센징 사냥'을 피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간토 전역에서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면서 조선인은 강물 속 수초에 몸을 숨기거나 어둠 속에서 얼굴을 가린 채 숨 쉴 수밖에 없었다.
  
역사 개악과 계속되는 차별과 혐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일본 내 이민족을 향한 사상 최대의 학살 사건인 1923년 간토 대학살은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애도의 자장 안에 머물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으로 인한 희생만을 추모할 뿐 조선인과 소수자를 겨냥했던 대학살에 대해서는 무책임과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2016년 도쿄도지사로 취임한 고이케 유리코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올해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기존에 기술되었던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한 내용이 삭제되었다. 한국 정부 또한 자국민이 겪었던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비극을 빚어낸 차별과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 불안의 책임은 너무나도 쉽게 재일조선인을 향한 노골적인 적대로 뒤바뀐다. 지난해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발생하자 인터넷상에는 재일조선인 책임론이 떠돌았다.

냉전과 분단 체제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끊임없이 재일조선인을 '친북', '빨갱이'로 몰아세운다. 이민진의 소설<파친코>에 나오는 문장처럼 한국과 일본 두 국가 모두 자신들의 '역사'에서 재일조선인의 상처와 삶을 철저하게 내동댕이쳤다.

유언비어로 국민을 통제하려는 권력은 비단 100년 전 일본만이 아니다. 2023년 한국의 대통령은 연일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며 결사의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1923년 조선인들이 몸 안에 폭탄을 소지하지 않았듯이, 2023년 '반국가세력' 또한 대통령의 환상 속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1923년 일본에서 조선인이 학살되고, 1950년 한국전쟁에서 민간인이 빨갱이로 학살되었던 역사는 '적'과 '아'로 국민을 통제하며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국가의 적대의 정치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분열이 만들어 낸 허구가 '반국가세력'이라면, 우리가 극복해야할 것은 바로 분열과 적대의 정치여야 한다.
  
진실을 추적한 사람들과 맞이한 100년
 

진실은 은폐의 두꺼운 장벽을 뚫고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간토 대지진 50년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기림비 옆편에도 '당시 정부의 잘못으로 6000명의 조선인이 학살되었다'라는 문구가 기입되어 있다. 선의의 일본인들은 피해자 및 유족의 증언을 수집해 유해 발굴에 나섰고, 아라카와 강변 옆에 조선인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를 세웠다.
  
▲ 아라카와 강변 옆에 세워진 간토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1980년대부터 간토 조선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한 일본인들이 기억의 의지를 모아 세운 기림비이다. 아라카와 강변 옆에 세워져 있다.
ⓒ 이태준
 
2023년 8월 31일 오후 6시 도쿄 분쿄 시빅 홀에서 1600여 명의 한·중·일 시민들이 모여 관동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 희생자 추도대회를 열었다. 과거의 넋을 위로하는 추도대회에 한·중·일 시민사회는 간토대지진 및 대학살의 역사를 기억하고,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촉구했다.
100년이 지나서도 반성은커녕 진실을 은폐하는데 앞장섰던 국가의 반대편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폭력의 역사를 반성하며 진상 규명에 헌신적으로 나섰던 정의로운 일본인이 있었다. 간토대학살 100년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만큼 국경을 초월하여 역사적 상처를 함께 애도했던 일본인들을 기억할 몫 또한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진실을 지켜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세계에 지우는 일이자, 한일 시민사회의 화해와 연대를 구성할 길일 테다. 
 
 간토대지진 대학살 100년 추도 대회 행사장
ⓒ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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