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컨트롤타워]계열사 직보 받는 회장, 달라진 기조실 역할

최대열 2023. 9. 1. 09: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③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
중복투자 방지 등 계열사간 조정
리스크관리 탓 보수적 기류
회장 측근 권한·위상 상당했으나
수평적 조직문화로 달라져

현대차그룹은 겉으로 드러나는 컨트롤타워는 없다.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데다 계열사 대부분이 자동차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얽혀있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영향이 크다. 각 계열사에 대한 그룹 총수의 장악력이 그만큼 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LG·SK처럼 지주사 이사회를 활용하거나 따로 조직을 갖추는 건 아니지만 업무상 비슷한 곳을 하는 곳은 현대차 기획조정실이다. 김걸 기획조정실장이 2018년 부임 후 5년 가까이 이끌고 있다. 주요 업무는 계열사 간 중복투자를 막는 등 역할을 조정하거나 혼선이 생길 때 교통정리를 한다.

현대차 인도공장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인도 전략 차종 생산 품질을 점검하고 있는 정의선 회장<사진제공:현대차그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적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거나 각 계열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저마다의 사정을 듣고 효율적인 결정을 돕는 지원부서 역할에 충실하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미국 로봇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때처럼 주요 계열사가 일정 비율로 지분을 나눠 투자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각 계열사 사정을 감안해 적절한 판단이 나올 수 있도록 백업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 성격도 있어 주요 현안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기류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 각자가 엄연한 주식회사인 만큼 회사마다 최적의 결정을 내리겠지만 그룹 입장에서 보면 효율적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며 "가령 돈 되는 사업, 앞으로 유망한 사업은 서로 하겠다고 나설 텐데 그럴 때 조정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기조실이 항상 이랬던 건 아니다. 전·현직 임원의 말을 들어보면, 김걸 사장 직전 기조실장을 지낸 김용환 전 현대제철 부회장은 계열사 사업 전반을 두루 살피며 그룹 내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측근으로 평가받는 김 전 부회장은 2009년부터 계열사로 적을 옮긴 2018년까지 10여년간 기조실을 이끌었다. 중요한 결정이야 정 명예회장이 했지만 회장실을 향한 크고 작은 모든 보고가 김 전 부회장을 거쳐야 했다. 선이 굵은 정 명예회장의 사업 스타일과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기업인들이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용환 당시 현대차그룹 부회장(왼쪽부터), 박용만 두산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걸 현대차 기획조정실장(오른쪽)이 지난 5월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 본부에서 지안니 인판티노 회장과 만나 월드컵 후원연장계약을 맺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그룹>

기조실 위상이 바뀐 건 정의선 현 회장이 그룹 내 주요 결정을 진두지휘하면서다. 수석부회장에 오른 2018년 전후다. 계열사마다 책임경영을 강조하며 각 사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정 명예회장이 한창 경영일선에 있을 당시 완성차 계열사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위계가 강조됐다면, 정 회장은 이를 수평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일찌감치 주요 계열사를 돌며 경영 감각을 익힌 데다, 꼼꼼하고 섬세한 정 회장 개인 성향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0세기 후반 이후 얼마 전까진 수직계열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갖추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게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성공 공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전동화·소프트웨어 등 업의 본질 자체가 바뀌면서 보다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도 있다. 자연스레 기조실의 역할과 그룹 내 위상도 달라졌다.

과거 기조실에서 담당하던 신사업 발굴이나 외부 투자 업무는 지난해 조직개편에서 글로벌 전략책임자(GSO) 직책이 생기면서 떨어져 나갔다. GSO는 직전 기조실에 있던 김흥수 부사장이 맡았다. 그는 완성차 제작사가 당면한 최대 과제인 전동화 전환업무도 맡고 있다.

지난 7월 아일랜드 레익슬립에 위치한 '인텔 아일랜드 캠퍼스' 팹24에서 김흥수 현대차 부사장(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앤 마리 홈즈 인텔 반도체 제조그룹 공동 총괄 부사장, 닐 필립 인텔 팹24 운영 총괄 부사장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그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현대차그룹 기조실은 과거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기 전 기아자동차(현 기아)를 인수하면서 만들었다. 완성차 계열사가 두 곳으로 늘면서 연구개발이나 구매, 각종 지원부서 역할에서 함께 할 업무를 구분하는 등 조정자 역할이 필요했다. 현대그룹 출신 이계안 전 국회의원이 자동차부문 기획조정실을 처음 맡았다. 이후 정순원·채양기·박정인 전 부회장 등 정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자 옛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들이 이 자리를 거쳐 갔다.

과거와 지금이나 비슷한 건 책사형 참모가 기조실을 이끈다는 점이다. 김걸 사장은 1965년생으로 1988년 현대차 입사 후 수출, 해외영업 등의 업무를 맡았다. 2000년 초반 기아가 유럽 곳곳에 해외 법인을 설립할 당시 이를 진두지휘한 점을 인정받아 정부 훈장까지 받았다. 당시는 정의선 회장이 기아 사장으로 있으면서 해외업무를 담당할 때로 이 시기를 전후로 가까워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본다.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정의선 회장으로의 지분 승계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당분간 적을 옮길 가능성은 작다는 평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