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세포들의 사회생활’이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3. 9. 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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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의 몸을 읽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인체는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한 사람당 대략 100 조개 정도다. 어떤 기준으로 세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 정확히 셀 수조차 없다. 또 이 순간에도 수가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우리 몸이 하루 평균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운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데 수많은 세포는 모두 독립된 존재다. 각 세포는 핵과 세포벽과 유전 정보를 지니고 각자의 역할을 한다. 이들이 기능별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 것이 장기다. 장기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고 연결되어 각자 일을 하면 하나의 인간이다.

수많은 세포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무수한 수의 세포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인간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두개골 안의 뇌세포와 발끝의 세포는 통일된 지시 체계에 따라서 일을 해야 한다. 우리 몸이 지시할 사항은 아주 많다. 일단 "저걸 쳐다봐"나 "저걸 가져와" 같이 직접적인 지시가 있다. 하지만 "팔다리를 늘리고 키를 키워", "당을 높여", "혈압을 낮춰", "열 손실을 막아", "땀을 흘려", "2차 성징이 필요해", "배란을 할 때가 됐어." 등도 생명을 유지하거나 후손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나 우리는 아무리 코어 근육에 힘을 주어도 2차 성징을 시작하거나 배란일을 지정할 수는 없다. 몸이 상황을 판단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체는 세포끼리 소통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꾸렸다.

일단 세포는 물리적으로 한 인간을 이루기 위해 붙어 있다. 그런데 세포는 화학적으로도 붙을 수가 있다. 다른 말로 직접 연결이라고 한다. 세포 사이에 다리를 놓아 구조적으로 연결해 물질을 즉시 교환하는 것이다. 이 구조를 간극 결합이라고 한다. 간극 결합된 세포들은 상시 빠른 소통을 할 수 있다. 심장, 신경, 안구 등의 세포는 이를 통해 효율적으로 심장을 뛰게 하거나 즉시 신호를 전달한다. 그러나 한 세포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건 주변 세포밖에 없다. 모든 세포를 직접 연결해서 유기적으로 같은 명령에 따르게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세포는 고유의 기능인 분비를 이용한다.

분비는 세포가 특정 목적을 가지고 세포 밖으로 무엇인가를 내보내는 행위다. 가령 사우나에 가서 땀을 흘릴 때 피부에 분포하는 땀샘 세포는 세포 내의 수분과 전해질을 짜서 내보낸다. 이것이 분비다. 하지만 땀은 외부로 분비되어 외분비라고 부른다. 피지샘, 이자샘, 눈물샘 등은 외분비를 맡은 주요 샘이다. 반대로 내분비는 인체 내부로 분비되어 세포끼리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세포에서 분비로 내보낸 물질이 다른 세포의 세포벽을 뚫고 들어가서 지시를 전달하는 것이 내분비의 개념이다. 직접 연결과는 반대로 간접 연결이라고도 한다. 이 지시 전달에는 주변 전달과 원격 전달이 있다. 세포가 주변에 화학 물질을 분비하면 주변 전달이다. 이때 사용되는 물질은 신경전달물질이다. 이름처럼 주로 신경계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분비물이 먼 곳까지 전달되면 원격 전달이다. 원격 전달에 사용되는 물질이 바로 호르몬이다.

호르몬은 멀리 떨어진 세포끼리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가 공문을 팩스나 이메일로 보내는 것처럼 인체 내의 내분비샘은 호르몬을 보내 의사소통을 한다. 팩스나 이메일에 전산망이 필요한 것처럼 호르몬은 혈관 속의 혈액으로 신호를 보낸다. 심장을 출발한 혈액은 일 분 후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내분비샘에서 호르몬을 보내면 일 분 뒤에는 모든 세포가 지시를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지시와 관계없는 세포는 본인의 업무에만 열중하면 된다. 하지만 지시에 특정된 표적 세포는 호르몬을 감지해서 혈압과 혈당 조정, 생식, 대사, 성장, 각성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호르몬의 존재를 인류가 발견한 것은 백 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밝혀진 호르몬은 약 팔십 종으로 아민, 펩티드, 스테로이드 세 종류로 나뉜다. 각각 질소 계열, 아미노산 계열, 지방 계열이다. 각자 호르몬은 고유의 기능이 있으며 몇 분에서 몇 시간 정도만 신호를 전달하고 작용이 불가능한 물질로 변한다. 또한 호르몬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일단 협동 효과로 두 개의 호르몬이 겹치면 둘의 산술적인 합보다 더 커다란 활동을 할 수 있다. 우리 몸이 극한 상황에서 각성할 때 주로 사용된다. 고환에서 정자를 만들거나 젖샘이 젖을 생성하고 분비하는 것은 아예 협동 작용으로 밖에 이루어지지 않다. 이중 보완이 걸린 스위치 같은 것이다. 한 호르몬이 다음으로 작용해야 할 호르몬을 억제하거나 촉진하기도 한다. 임신하면 나오는 에스트로겐은 젖이 나오는 프로락틴을 억제한다. 임신하면 젖이 나올 필요가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다. 당을 조절하는 글루카곤과 인슐린은 정반대의 역할로 서로를 견제하며 혈당을 조절한다.

이처럼 인체는 직접 연결과 간접 연결,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이용해서 100조 개의 세포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한다. 이를 위해 혈액과 순환계는 훌륭한 전산망이 되어준다. 인체의 컨트롤타워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호르몬을 적당한 시기에 적절하게 이용해서 100조 개의 세포를 한마음 한뜻으로 모은다. 각자가 생멸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하는 100조개의 세포가 모인 것이 우리 몸이다. 한 인간의 작동 체계가 행정적으로 완벽한 국가에 비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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