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100주기 양분된 日…"기록 없다" VS "역사 직시해야"
진보언론·시민단체는 "역사 직시해야" 비판
1일 관동대지진 100주기를 맞은 일본 사회가 1923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두고 양분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조선인 학살 기록이 없다고 밝히는 등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반면, 일본 진보 언론과 시민단체는 이러한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차별 방지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지진 100주기를 맞아 일본 도심 곳곳에서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추모제와 시위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日 정부 "기록 없다"…극우 집회도 예고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와 요코하마 등 관동지방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지진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당시 대지진으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등 인명 피해가 10만5000명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당시 인명 피해의 5.8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진 발생 당시 관동지방 일대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불을 질렀다" 등 유언비어가 퍼졌다. 소문의 여파로 재일 조선인은 무차별 학살당했다. 약 6000명 정도가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숫자는 여전히 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관동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진상을 규명하거나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만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며 언급을 피했다. 그가 "사실관계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여기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행보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역대 도쿄도지사들은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9월 1일이 되면 매해 도내 공원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희생자를 위로하는 추도문을 보냈다. 그러나 고이케 지사는 취임 첫해인 2016년에만 추도사를 보냈고, 이후 이를 보내지 않으며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에 지난달 9일 재일조선인총연합회는 고이케 도지사에게 희생된 조선인 추모문 발송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정부 기조에 발을 맞춰 극우파의 혐한 시위도 예정돼있다. 극우 단체 '소요카제'는 이날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혐한 시위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에 도쿄도 건설국 공원녹지부가 시위를 열 수 있도록 점유를 허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진보 단체들은 도청에 항의 전화를 독려하는 등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日 정부 비판나선 언론…시민단체도 나서일본 정부와 극우 단체가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모습을 두고 일본의 진보 언론과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고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진보 성향 언론 도쿄신문은 재일조선인 연구를 진행하는 노토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언론들이 왜 조선인 학살을 언급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다.
노토무라 교수는 "당시 일제 강점기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일본인들의 충돌이 계속되는 한편, 또 도쿄 등 일본 도심에는 일자리를 찾는 조선인이 들어오고 있었다"며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생활권에 위험한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대중심리가 확산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토무라 교수는 당시 9월 3일부터 5일까지 넓은 지역에서 학살이 벌어졌으나, 학살 사실은 한 달이 지난 10월 21일에야 게재됐던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의 보도 통제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학살 사실 자체는 증언과 자료로 뒷받침된다. 역사 왜곡이 끊이지 않는 지금, 사실을 사실로 계승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본 신문노련(노조)도 전날 성명을 내고 "신문 보도가 헛소문을 확산시키고 외국인을 배척하도록 부추겼다"며 "차별을 없애고 재해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달 21일 일본인 대학생과 재일 교포가 함께 주최한 집회에 대해 보도했다. 이날 약 150명의 대학생과 재일교포들은 함께 행진하며 고이케 지사에 항의했다.
이번 100주기를 맞아 당시 학살을 비판하는 영화가 개봉하고 증언 자료를 담은 전시회도 연이어 열렸다. 이날 개봉하는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은 시코쿠 지역 사투리를 쓰는 일본인을 조선인으로 오인해 집단학살한 사건을 담았다. 당시 조선인 학살과 맞물려 오키나와 등 사투리를 쓰는 일본인들도 "말투가 이상하다"며 무차별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편 일본 곳곳에서는 이날 극우 단체의 혐한 시위와 함께 조선인 추모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도쿄에서는 이날 오전 10시 희생 조선인을 위로하는 위령 대법요, 오전 11시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 오후 6시 30분에는 희생자 추모와 책임 추궁을 위한 집회 등이 열린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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