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위험권총 도입에 현장 경찰관 “무력 사용 규정 정비해야”
저위험탄도 생명 위협 가능
물리력 행사 규정 정비 검토 중
정부가 일선 경찰관 '1인 1총기' 보급을 위해 저위험 권총 도입 확대에 나선 가운데 무력 사용 규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일선 경찰관 목소리가 나온다. 저위험 권총도 경찰의 현행 진압장비 분류상 엄연한 총기이므로 범행 진압 현장에서 사용 시 기존 권총과 똑같은 부담과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관련 규정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부터 발표한 것이다.
1일 서울의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장 A씨는 “솔직히 현장 경찰 중에서 실제 권총을 써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며 “저위험 권총 역시 사용 시에 민·형사 소송 등 제도적 보완이 먼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장 B씨는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범죄자 제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저위험 권총이 살상력을 줄였기 때문에 사용에 부담은 일반 권총보다는 낮아질 수 있겠지만 사용 규정, 사후 책임 등에 따라 사용 빈도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현장에 2인 1조로 출동하는 경찰은 현재 1명이 권총, 1명이 전자충격기(테이저건)를 휴대한다.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대상자가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위해를 가하려 할 때 테이저건을 쓸 수 있다. 총기나 흉기로 경찰관이나 시민을 해칠 가능성이 높은 '치명적 공격' 상황에서는 경찰봉과 방패로 범인의 급소 가격은 물론 테이저건, 권총 실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권총은 어디까지나 권총 이외의 수단으로는 제압이 어려운 최후의 상황에서 사용하고, 가급적 대퇴부 아래를 겨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물리력 기준에도 현장 경찰관들 권총이나 테이저건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인명피해라도 발생할 경우 내부 감찰은 물론 민형사상 소송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6년 법원은 심야에 칼을 든 남성이 계속된 경고에도 경찰관과 신고자를 향해 다가오자 실탄을 발사해 사망케 한 경찰관에게 1억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9년에도 양손에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여성에게 경찰관이 테이저건을 사용하고 뒷수갑을 채웠다가 이 여성이 의식을 잃고 5개월 후 숨지는 일이 벌어졌는데, 법원은 유족에게 국가가 3억20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저위험 권총이 보급되더라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우려다. 저위험 권총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특수 탄환의 살상력은 권총 실탄의 10분의 1 수준이다. 허벅지를 기준으로 뼈까지 도달하지 않도록 최대 6㎝ 정도에 박히도록 개발됐다. 그러나 저위험탄이라고 해도 주요 장기에 적중한다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또 저위험 권총 도입 발표만 됐을 뿐 당장 어떤 상황에서 쓸 수 있는지 기본 규정도 마련되지 않았다. 경사 D씨는 “현장에서 테이저건도 쉽게 쓰지 못하는데 저위험 권총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경위 E씨도 "규정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총기만 준다고 지금과 같이 무기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관의 적극적인 총기 사용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송 지원을 강화하고, 저위험 권총의 물리력 사용 기준을 낮추는 방안 등이 고려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흉기 난동 사건이 늘고 있지만, 피의자가 경찰관 개인을 고소하는 경우가 있어 현장 경찰들에게 총기 사용은 위험부담이 크다"며 "경찰청이나 시도경찰청 단위에서 변호사 선임부터 소송까지 전적으로 지원하는 등 민·형사 소송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저위험 권총을 테이저건보다도 쉽게 쓸 수 있도록 더 낮은 기준으로 설정하면 보다 적극적인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현장 경찰들이 각자 사후 책임을 지라고 돼 있는 것이 바뀌지 않고 장비만 지급하면 의미가 없다"면서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경찰청장 등을 책임자로 규정해 기관 차원에서 소송의 책임 등을 지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저위험 권총에 대한 위험성 평가와 함께 현장 경찰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도입 과정에서 관련 규정 정비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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