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저건도 못 쏘는데 저위험 권총… “경찰 부담 커”
일선 경찰 홀로 부담 떠안는 구조
전문가들 “정당한 공무집행 지원 필요”
잇따른 흉악범죄로 국민 불안이 고조되자 경찰에 저위험 권총이 보급될 예정이지만, 테이저건도 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없을 거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든 현장 경찰에게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에게 저위험 권총이 보급된다. 경찰은 내년 저위험 권총 5700정 지급을 시작으로, 3년 동안 총 2만9000정을 보급해 1인1총기를 실현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도 내년도 예산안에 관련 예산 86억원을 포함했다.
저위험 권총(9㎜ 리볼버)은 기존 경찰의 주력 총기인 ‘38구경 리볼버’보다 살상력이 낮다. 플라스틱 탄두를 달아 살상력이 10분의 1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경찰은 38구경 리볼버를 10m 이내에서 성인 남성 허벅지에 쐈을 때 48㎝ 깊이로 관통하지만, 저위험 권총은 6㎝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저위험 권총 도입에 현장 경찰들은 “그동안 무기가 없어서 범인을 제압하지 못한 게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총기를 사용해도 모든 책임을 실무자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경찰관직무집행법 1조에 따라 경찰관의 물리력은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해야 한다. 2019년 제정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에 따라 구체적인 물리력 행사 기준도 정해져 있다.
최근 곳곳에서 벌어진 흉기난동 사건에서도 경찰이 테이저건(전자충격기)을 쓰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에서 경찰은 흉기난동 피의자와 2시간 넘게 대치하면서도 테이저건(전자충격기)을 쏘지 못해, 대처가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4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흉기난동 범죄에 대해서는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경찰관에 대한 면책 규정을 적극 적용해 현장의 법 집행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일선 경찰이 테이저건 등 물리력 사용에 소극적인 건 이유가 있다. 규칙과 절차에 맞춰 사용해도 그에 대한 책임은 홀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경찰의 지원 없는 ‘나 홀로 소송’의 시작이다. 현직 경찰 A씨는 “총기를 사용하게 되면 부담이 크다”라며 “총기 사용 후 문제가 생기면 혼자 모든 걸 다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기 문제는 민‧형사 책임뿐만 아니라 행정책임 그리고 징계 대상이 된다”며 “제도 개선 없이 저위험 권총만 도입하면 현장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정당한 공무집행 중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 조직이나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원 교수는 “현장에서 조직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더 적극적으로 공무집행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법과 제도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미국은 경찰이 공무집행 중 발생한 민‧형사 사건 소송의 비용과 자문 변호사 선임 등을 경찰 조직 차원에서 지원해 경찰 개인의 부담을 덜고 있다”며 “면책특권 강화와 함께 조직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역시 “현장 실무자가 책임을 떠안는 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여전히 각자도생하라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저위험 권총 살상력이 38구경 리볼버의 10분의 1 수준이라 해도 취약 부위를 타격하면 치명적 결과가 생길 수밖에 없어 일선 경찰로선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살상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38구경 리볼버 쓸 때보다 면책이 많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현장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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