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文청와대 "홍범도 1평? 그림 안나와"...법 바꿔 8평 안장
문재인 정부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현충원에 안장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국립묘지법 위반 행위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 장군에 대한 중복 서훈 역시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강행했다.
청와대 주도…‘위법 우려’ 묵살
2021년 8월 홍 장군의 유해 봉환과 국민추모, 현충원 안장 등 전 과정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이 주도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3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을 4~5달 가량 앞두고 유해 봉환의 전 과정이 VIP(대통령) 행사로 정해지면서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주재한 회의가 이어졌다”며 “기존 행사처럼 국가보훈처가 행사 초안을 마련했지만, 초안은 토씨 빼고는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삭제된 뒤 청와대에서 모든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카자흐스탄 대통령 답방에 맞춘 전용기 수송 및 특사 파견 ▶서울공항 영접식 ▶현충원 안장식 ▶최고 등급 서훈 수여 ▶전 과정 생중계 등의 계획을 이미 확정해놓고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정해진 결론을 맞추려다 보니 위법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매번 ‘강행 후 대안 마련’을 요구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1평 묘지로는 ‘그림’ 안 나온다”
우선 홍 장군이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 묘지터 선정부터 문제였다.
국립묘지법(12조)은 대통령 외 유공자는 1평(3.3㎡)으로 묘지 크기가 정해져 있다. 예외적으로 심의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8평(26.4㎡) 묘지 조성이 가능하지만, 홍 장군처럼 이장(移葬)의 경우엔 예외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청와대는 “VIP가 전용기를 보내고 안장까지 직접 주재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장면을 연출해야 하는데 1평 묘지로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며 “무조건 8평 묘지를 확보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자 유해 송환을 열흘 앞둔 2021년 8월 5일 보훈처는 돌연 예외 조항을 만들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정부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묘역 운영지침’에 이장의 경우에도 “필요하면 8평으로 안장이 가능하다”는 예외를 추가했다. 홍 장군의 유해는 이 예외 조항에 따라 8평 묘지에 안장됐다.
시기적으로 청와대의 ‘8평 묘지 조성’ 지시가 먼저 나오고, 보훈처가 나중에 지침을 개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바꿔 말해 청와대가 지시를 내릴 당시에는 엄연한 법 위반 사항이었던 셈이다.
“VIP 부각 안 되니 중앙으로 옮기라”
청와대는 8평 묘지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위치를 문제삼았다. 관련 전례 업무편람 규정은 “안장 순서대로 묘지를 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현충원을 답사한 후 ‘(업무편람대로 하니)묘지가 구석에 있어 행사 때 VIP가 잘 부각되지 않는다’며 묘지 위치를 중앙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며 “이 과정에서 ‘생중계 카메라에 나무 가지가 걸리니 가지를 치든 뽑든 하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묘소는 안장 순서를 ‘새치기’해 대전현충원 제3묘역 중앙에 조성됐다. 여기에 ‘카메라 앵글’을 고려한 추가 위치 조정까지 거치며 홍 장군의 묘지는 묘역 사이가 1m가량인 다른 묘지와 달리 양옆 3~4m 공간을 둔 독립묘 형태가 됐다.
묘지석엔 현충원 최초의 ‘신영복체’
홍 장군의 묘비(墓碑) 글에는 현충원 다른 묘지들과 달리 고(故)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서체(신영복체)가 사용됐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여러차례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대전현충원에 신영복체로 묘지석을 만든 건 홍 장군이 처음이었는데, 이 역시 청와대 지시로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현충원 측은 “묘비의 서체는 유족 또는 기념사업회의 의견을 따라 결정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현충원 관계자는 “유권해석을 먼저 한 뒤 신영복체를 쓴 게 아니라 지시에 따라 묘지석에 신영복체를 쓰는 것으로 결정한 뒤 사후에 관련한 유권해석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서훈 주체’ 놓고 폭탄 돌리기도
윤석열 정부 들어 ‘부’로 격상된 국가보훈부는 홍 장군에 대한 ‘중복 서훈’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상훈법(4조)엔 '동일한 공적에 대해 훈장을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당시 홍 장군이 1962년 2등급에 해당하는 ‘대통령장’을 받았음에도 2021년 최고 등급의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이 과정에서 보훈처와 행안부 간의 ‘폭탄돌리기’가 벌어졌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여권 인사는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조선인민당 창당 전력이 있는 여운형 선생 서훈 때 주무 부처인 보훈처가 아니라 행정안전부에서 이를 처리하는 식으로 우회해 논란을 빚었다”며 “홍 장군 서훈도 보훈처 내부 검토 끝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고, 이번에도 행안부 우회 서훈을 고려했지만 행안부가 거부하면서 결국 보훈처가 총대를 멨다”고 설명했다.
당시 보훈처장은 2020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했다 낙마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홍 장군 유해 안장 및 이중 서훈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홍범도 장군 띄우기에 나섰던 것은 홍 장군을 내세워 국가의 정체성을 재설정하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제라도 홍 장군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홍범도 장군의 명예를 되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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