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장딴지는 ‘짝짝이’다…그 다리로 25년간 걷는 비결
발목장애 뒤에도 25년 걷는 비결
■ 호모 트레커스
「 ‘산악 영웅’ 엄홍길 대장의 장딴지는 ‘짝짝이’였습니다. 오른발이 정상이 아닙니다. 1998년 안나푸르나 등반 중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 장애등급까지 받았죠. 엄지발가락 일부를 동상으로 잘라내기도 했습니다. 오른발에 힘을 주지 못해 점점 근육이 쪼그라든 것이죠. 그래도 걷습니다. 평생 걸었으니까요. 걷기의 인생 철학을 들어봅니다. 마침 걷기 좋은 9월입니다.
」
엄홍길(63) 대장의 오른쪽 장딴지는 왼쪽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히말라야 고산 등반만 22년(1985~2007년)간 해 온 ‘산악 영웅’의 한쪽 다리는 홀쭉했다. 2007년 로체샤르(8382m) 원정을 동행 취재하던 때에 봤던 장딴지와는 딴판이다.
그의 오른발은 정상이 아니다. 1998년 안나푸르나(8091m) 등반 중 사고로 발목이 완전히 돌아갔고, 이후 장애 등급을 받았다. 앞서 92년 낭가파르바트(8025m) 등반 땐 동상에 걸려 엄지발가락 일부를 잘라내야만 했다. 걸을 때 발목이 굽혀지지 않는 데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엄지발가락이 짧은 탓에 걸을 때 오른발에 힘을 주지 못한다. 장딴지에 근육이 붙지 못하는 이유다.
경사가 있는 산을 오를 땐 그는 까치발이 된다. 의자에 오래 앉았다가 계단을 내려와야 할 땐 절름발을 하듯 뒤뚱뒤뚱 내려오기 일쑤다. 히말라야 8000m 16개 봉우리를 완등한 그의 발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열악하다. 그래도 1주일에 서너 번 산에 간다. 발목 수술을 한 주치의는 발목을 “아껴 쓰라”고 했다. 그러나 엄 대장은 수술이나 약물 대신 걷기를 치유법으로 택했다. 그는 “계속 걷지 않았으면 발목은 더 굳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음식 장사를 위해 엄 대장 나이 세 살 때 원도봉산(도봉산 북쪽, ‘원래 도봉산’이라는 뜻) 중턱에 자리를 잡은 이후 산은 그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1호선 망월사역에서 도봉산을 향해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망월사 입구’ 등산로가 나온다. 여기서 15분쯤 더 걸어가면 엄 대장이 마흔까지 살았던 옛집 터가 나온다. 7월 16일 이른 아침 엄 대장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원도봉 계곡은 물안개가 사르르 깔렸다.
“어머니가 김치를 아주 맛깔나게 담그셨다. 김치를 담그려면 배추를 지고 올라와야 하지 않나. 저 산 아래서부터 그걸 지고 날랐다. 그게 등산의 첫걸음”이라고 엄 대장은 말했다. ‘엄홍길 대장이 살던 곳’ 이정표가 있는 곳이 애초 집터인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본래 집터 30여m 아래엔 석축을 쌓은 터가 하나 더 있다. 기와를 얹은 제대로 된 집이었다. 아버지는 산꾼들을 위한 산장으로도 운영했다.
집터 위쪽으론 제법 경사진 길이었다. “너덜길을 오래 걷고 나면 발목이 지끈지끈하다. 장거리 산행을 하면 발목이 붓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태가 25년 됐다”고 엄 대장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등산로 입구에서 망월사까지 2㎞ 오르막 구간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올랐다.
엄 대장은 산에 오를 땐 스틱을 사용하고, 산에서 내려오면 매번 발 마사지를 한다. 아픈 발목은 이미 퇴행성 관절염이 진행 중이라 수술한다고 해도 통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한다. 1주일에 3~4회 정도 수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영은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면서 다리 근육을 유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수영 습관은 독특하다. UDT 출신답게 잠영이 주를 이룬다. 25m 풀에서 잠영한 후 맞은편 끝에서 나와 심호흡하며 호흡을 고른다. 왕복 열 바퀴(500m)를 잠영한다. 그리고 접영·배영·평영·자유형을 각각 50m 한다.
엄 대장은 급한 일이 아니면 오전 일정은 잡지 않는다. 핸드폰도 켜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산 진달래능선을 걸으며 복잡한 일은 잠시 잊고 명상을 한다. 오래전에 만난 풍수학자 최창조씨는 “야망이 있는 자, 권력을 좇는 자는 북한산처럼 우뚝 솟은 바위산을 좋아하고 성정이 부드러운 사람은 산의 안부(鞍部, 산등과 계곡이 만나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를 즐겨 찾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진달래능선은 산정을 바라보며 걷는 암릉길과 오솔길이 번갈아 나온다.
엄 대장은 8000m 이상 산에 오르기 위해 38번 도전했다. 산 정상에 서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 등반은 16년 전 로체샤르가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산정을 바라보는 능선을 산책로 삼아 명상을 위해 걷는다.
엄홍길 대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더중앙플러스 기사 전문(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6229)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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