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원희룡 앞에서 오세훈에 줄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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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을 시작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건설사들이 우르르 서울시의 건설현장 동영상 기록 관리에 적극 동참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건설사들은 일반적인 보도자료 배포 시간(오전)이 아닌 오후가 돼서야 판에 박힌 자료를 예고도 없이 쏟아낸 데다 회사 간 배포 시차도 꽤 벌어져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날 밤 서울시는 "24개 건설사가 동참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며 오 시장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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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을 시작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건설사들이 우르르 서울시의 건설현장 동영상 기록 관리에 적극 동참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메일로 발송된 자료들은 오후 내내 들이닥치듯 수신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날 서울 동대문의 재개발 현장을 방문해 “모든 건설사가 공사현장 동영상 기록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이었다. 오 시장 한마디에 너도나도 열외되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줄을 선 모양새였다.
흥미로운 건 자료 발송 시점과 간격이었다. 건설사들은 일반적인 보도자료 배포 시간(오전)이 아닌 오후가 돼서야 판에 박힌 자료를 예고도 없이 쏟아낸 데다 회사 간 배포 시차도 꽤 벌어져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현산이 점심시간인 낮 12시20분쯤 가장 먼저 자료를 낸 뒤 오후 4시쯤 A건설이 두 번째 타자로 나섰고 B건설(4시41분) C건설(5시17분) D건설(5시30분) E건설(5시53분) F건설(6시2분)이 뒤따라 배포했다. ‘오세훈 앞으로 헤쳐 모여’나 다름없는 이 행렬은 다음 날까지 이어져 G건설이 오전 8시34분에, H건설이 오전 10시13분에 자료를 냈다.
보도자료는 기사화가 목적이라 언론사가 하루치 기삿거리를 궁리하는 이른 아침에 보내는 게 관례다. 중요한 내용은 전화로든 카톡으로든 따로 연락해 한 번 더 어필한다. 하지만 그날은 자료를 보냈다는 안내도 거의 없었다. 오후 늦게 이메일함을 열었더니 찍어낸 듯한 자료들이 스팸메일처럼 쌓여 있었다. 큰일이라도 터진 줄 알았다.
이 호들갑스러운 상황은 현산이 자료를 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소위 10대 건설사는 수주전에 뛰어들면 박 터지게 경쟁하더라도 평소에는 이런저런 사정을 공유하며 서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움직인다. 그렇게 단합이 잘되는 편인데 이날은 한 회사가 돌발행동을 하면서 일순 사분오열돼 각자도생을 도모하게 된 것이었다. 누구 하나가 “저는 서울시 말 잘 듣겠습니다” 하고 손을 든 순간 건설사들 앞에는 ‘동참자’와 ‘불참자’를 가르는 선이 그어지고 말았다. 첫 자료가 나오자 업계는 술렁거렸다. “그럼 우리도 내야 하느냐” “너희는 어떻게 할 거냐” 같은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안다. 각자 이 문제를 놓고 내외부적으로 설왕설래하는 동안 어디는 서둘러 자료를 내고, 어디는 좀 더 고민하다 그 뒤에 내고, 어디는 끝까지 보류하는 식이었다.
건설사 직원들은 “우리도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스스로도 황당해했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말도 나왔다. 꼭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누가 또 자료를 낼지 모르니(다른 곳이 더 낼 거 같으니) 우리도 그냥 하자, 하면서 결국 모두가 연병장 한복판에 헤쳐 모인 꼴이 됐다는 얘기다. 이들이 복잡한 셈법에 빠져 허둥지둥댄 건 주무 부처장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앞에서 보란 듯 오 시장에게 줄을 서는 양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불확실하게나마 여권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미리부터 어느 한쪽에 붙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을 텐데 오 시장이 “내 뒤를 따르라” 하고는 계속 뒤를 살피니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날 서울시는 관내 주요 건설사에 일일이 연락해 등을 떠밀었다. “회사마다 협조 공문을 보냈고 공무원들이 일일이 전화로도 재차 요청해 안 따르기 어려웠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그날 밤 서울시는 “24개 건설사가 동참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며 오 시장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이번 일은 원 장관에 비해 주목도가 낮은 오 시장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카드라는 해석이 많다. 요즘은 건설사가 제일 만만한가 보다.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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