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비과학적 과학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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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철학을 전공하며 오래 고민했으나 원자력이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원이라는 데 동의하기는 힘들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위험에 대한 평가 역시 한시적이고 오류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 결론이다.
그런데 대중이 그 위험에 유독 민감한 이유는 그들이 1+1=100이라 하는 바보여서가 아니라 일본과 한국 정부가 그동안 취해 온 비과학적 태도 때문이다.
또 양국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일본 원전 오염수가 환경이나 건강에 해가 없다는 과학적 결론을 강조하면서 다른 의견을 '괴담' '선동' '가짜뉴스'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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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철학을 전공하며 오래 고민했으나 원자력이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원이라는 데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이번에 배출을 시작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위험을 크게 걱정하지도 않는다. 플라스틱, 자동차 배기가스 등 당장 환경을 위협하는 걱정거리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원전 오염수 자체보다 더 위험한 일이 매일 일어난다. 그중 하나가 ‘과학적’이란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비과학적인 행태다.
과학에서 결론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과학은 이전 이론의 오류나 미처 몰랐던 사실을 고치거나 새로 발견하면서 발전해 왔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이전의 과학적 결론이 거짓이고, 오늘의 결론도 내일의 시점에서 보면 틀릴 수 있다. 지금의 과학적 결론은 한시적으로만 진리인 셈이다.
과학적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학적 태도다. 과학적 태도란 편견을 최대한 배제한 관찰과 추론, 지금의 결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 그리고 정보를 공유해 보편적인 설득력을 담보하려는 노력 등을 가리킨다. 과학적 태도를 견지하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지금 이론의 오류도 발견하고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적 결론이 한시적임에도 과학과 과학자가 존중받는다. 과학적 결론의 권위는 절대 진리가 아닌 과학적 태도에서 나온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위험에 대한 평가 역시 한시적이고 오류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 결론이다. 그런데 대중이 그 위험에 유독 민감한 이유는 그들이 1+1=100이라 하는 바보여서가 아니라 일본과 한국 정부가 그동안 취해 온 비과학적 태도 때문이다. 방류 전 우리나라 사찰단이 후쿠시마 현지에 갔으나 원전 오염수의 시료를 직접 채취하지 못했다. 오염수를 방류할 때 우리나라 전문가가 후쿠시마 원전에 상주하며 실시간 데이터를 얻게 해달라는 요구도 거절당했다. 이는 객관적 관찰과 투명한 정보 공개라는 과학적 태도에 정면으로 반한다.
또 양국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일본 원전 오염수가 환경이나 건강에 해가 없다는 과학적 결론을 강조하면서 다른 의견을 ‘괴담’ ‘선동’ ‘가짜뉴스’라 부른다. 그러나 원전 오염수의 안전은 대기오염처럼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장기적 문제다. 불명확한 미래에 대한 비관적 예측은 괴담이 아니라 여러 가능한 과학적 태도 중 불확실성에 더 무게를 두는 경우다. 반면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정답이라 우기면서 다른 생각을 억압하고 저주하는 것은 과학보다 주술에 더 가깝다.
과학적 결론에만 집착하는 비과학적 태도는 자유의 억압으로 이어진다. 일본 원전 오염수 때문에 수산물 소비가 줄자 정부는 대형 급식 업체에 수산물 메뉴를 늘리라는 협조 요청을 했다. 다수의 국민이 수산물 소비를 기피하는 것은 정부의 비과학적 대처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을 이끌어낼 궁리는 하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급식 메뉴를 조정하라는 것은 자유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망동이다. 우매한 백성에게는 먹기 싫다는 음식을 억지로 먹여도 되는가.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환영을 못 받는 이유도 비슷하다. 하나님은 불변의 진리이시나 그를 믿는 인간은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하는데, 자신이 진리의 화신인 양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니 반발을 산다. 과학적 태도는 과학적 결론의 설득력을 높이지만 그 결론만 우기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처럼, 신앙인다운 태도는 복음의 신빙성을 높이지만 신자의 오만한 태도는 그 자체로 비기독교적이다. 가장 과학적인 태도와 성도의 겸손함이 상통하고, 설득을 방기하는 비과학적 아집과 비기독교적 오만이 겹친다. 정부와 일부 언론의 비과학적 과학 타령에서 타락한 종교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이유다.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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