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정의에 근거해 세상을 보고 임무를 다하자”
성경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 말처럼 쉽지 않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복을 빌어 잘되면 그만이라는 무속과 샤머니즘, 권위에 충성하고 의리를 지키라는 유교적 세계관이 강력한 한국 사회에선 이들과 확연하게 다른 성경적 세계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손봉호(85) 서울대 명예교수는 성경적 세계관을 지키며 사는 일을 강조해 왔다. 명절 때만 어쩌다 입는 한복 같은 존재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즉 주일 예배당 안에서만 만나는 기독교가 아니라 일상복처럼 입는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성경 말씀에 따라 이웃 가운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등 약자를 위한 정의를 먼저 생각하고(신 10:18) 거짓과 억울함과 부패가 없거나 줄어든 세상(말 3:5)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이를 실천해 왔다.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은 그는 공명선거시민협의회를 조직해 군부재자 부정투표 등을 막고 TV토론을 도입하는 등 선거법 개혁을 이끌었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발족해 30여년간 정직 운동을 펼쳐왔다.
손 교수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네덜란드 개혁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 등 기독교 세계관을 소개한 1세대 철학자다. 한국외대 총신대 등을 거쳐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에서 철학과 윤리학을 가르친 그는 현재 서울영동교회 한영교회 다니엘새시대교회 등지에서 협동 설교자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에서 손 교수를 만나 최근 저술한 ‘쉽게 풀어쓴 세계관 특강’(CUP)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무신론과 유신론, 진화론과 역사관, 서양 철학 등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책을 쓴 배경부터 말하고 싶다. 옛날부터 동양이나 서양이나 세계를 보는 눈은 비슷했다. 조금 더 잘 보고 덜 보고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 근본적으로 보는 방법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로 서양에서 자기들이 좀 더 발달했으니까 더 정확하게 보고, 아시아는 좀 뒤떨어졌으니 부정확하게 보고, 아프리카는 더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리스 문명부터 그런 시각이 존재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만 문명인이고 나머지는 바바리안이라고 그랬다. 중국도 나머지는 오랑캐로 불렀다. 이게 19세기 들어와 비로소 ‘아, 문화가 다른 거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성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 이런 생각도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철학자가 전형적이고, 자기가 속해있는 문화에 근거해 세계를 본다 이런 생각을 한다. 네덜란드에는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신학자이자 정치가가 등장해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한다.”
-기독교도 기독교 관점에서 세상을 보자는 건가.
“그뿐 아니라 카이퍼는 다른 세계관보다 우리 기독교 세계관이 더 옳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성경에 따라 세계를 본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실제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온갖 종교와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어서 우리가 정확하게 성경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세계를 보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는 운동이 생겨난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다. 다른 세계관은 그냥 주어진 것이기에 운동이란 말을 붙이지 않는데, 기독교 세계관을 운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고 그것에 근거해 세상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임무를 다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이익을 준다. 이렇게 생각하기에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카이퍼의 영역주권론 등을 극우정치에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원칙을 오해해서 그렇다. 성경은 공의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을 말한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의’는 정의와 같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호하라는 정의다. 존 롤스 미국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는 성경에 근거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지금 인터뷰하는 밀알학교가 세워질 때 제가 이사장을 했는데, 저는 장애인이 불쌍하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정심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고 기독교 세계관 가운데 정의론에 입각해서 보니까 우리 사회에서 제일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게 정의이기 때문에 1970년대부터 장애인 운동을 해온 것이다.”
-책의 맨 뒤에선 ‘선지자적 비관주의’를 언급한다.
“1990년대 공명선거 운동을 할 때 전단지를 나눠주면 눈앞에서 바닥에 내팽개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이런 시민의식 수준에서 달걀로 바위 치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물론 들었다. 성경이 요구하는 사회개혁은 쉽지 않다. 구약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비관주의와 같다. 사역을 시작할 때 이미 그들은 실패할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해야 했다. 선지자들은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명선거 운동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저는 그것이 우리 운동 때문이라고 자부하지 않는다. 우리 노력 때문이 아니지만, 우리는 선거가 공명해진 것에 감사한다. 무엇이 성취되면 그건 하나님의 은혜일뿐이다. 우리는 그저 순종할 뿐이고,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샘터사)와 ‘고통받는 인간’(서울대출판부) 책도 주목받았다.
“‘나는 누구인가’는 사실 전도용이다. 철학의 근본 질문을 던져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고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연결하는 책이다. ‘고통받는 인간’은 고통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다룬 책이다. 철학자들이 행복론은 많이 다루는데, 고통에 대해선 거의 책을 쓰지 않아서 출판하게 됐다.”
-건강 비결이 궁금하다.
“서울대 교수 시절 20년간 총신대 앞 자택에서 낙성대역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에 사는데 매일 아내와 30분 이상 평지를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게 굉장히 생산적이다. 몸에도 좋고 정신적으로 좋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기에 걷기를 권장하고 있다.”
-국민일보 역시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회 현안을 보도하려 노력한다.
“기독 언론의 성숙한 판단은 아주 중요하다. 국민일보가 그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데, 단순히 보도뿐만 아니라 교육과 계몽의 임무도 있다고 본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모두 성숙한 것은 아니기에 그러하다. 특별히 전 지구적 재앙인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 가뭄 홍수 등으로 매일 수백 명씩 죽어 나가는 세상이다. 너무 거대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개인들이 책임의식을 느끼기 힘들다.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본다. 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태양광을 먼저 설치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캠페인에도 앞장섰으면 좋겠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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