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6년 전 육사를 떠올렸다
30일 낮 서울 노원구의 육군사관학교 앞에 갔다. 정문까지 수백 미터의 가로수길에 20여 개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예상대로 극언이었다.
‘친일잔당 국방부, 국가보훈부를 철거하라’ ‘간도특설대 백선엽이 국군의 뿌리냐!’ ‘육군사관학교가 일본자위대 양성소냐!’ ‘이완용 국방부 장관 이종섭을 탄핵하라’.
육사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공개된 이후 나온 반발이다. 대통령실에선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 당원으로서 자유시 참변 이후의 삶이 육사 생도들이 매일 경례하면서 롤 모델로 삼는다는 기준으로 봤을 때 잘 맞겠느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고 설명하지만, 반향이 크지 않다. 다수는 현 정권의 역사의식을 개탄한다. 이해한다.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나 싶다. 피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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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전 대통령, 독립군 편입 지시 후
육사서 항일투쟁 강조…갈등 씨앗
위국헌신 생도들은 어떻게 볼까
」
하나 논란의 씨앗이 뿌려진 6년 전을 되새겨볼 필요는 있다. 그렇다. 전 정권,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2017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 때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각 군 사관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육사에선 이런 일이 벌어졌다. 국방경비대사관학교(1946년 5월)를 시점으로 보던 육사가 12월 독립군 학술대회를 열었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과 이종찬 전 국정원장(현 광복회장)이 참석했다. 이듬해 2월엔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특강했다. 육사 홈페이지에서 백선엽 장군 웹툰이 사라지고 육사 바로 옆에 있는 육사아파트의 외벽에서 육사 마크가 지워졌다.
또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이 제작됐고 생도들이 수시로 다니는 교수부 건물(충무관) 앞에 설치됐다. 사실상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밴 플리트 장군의 동상은 400여m 떨어진, 찾아가야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것과 대비됐다. 3월 1일 흉상 제막식이 있었고 5일 뒤 문 전 대통령 부부가 육사 졸업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으론 10년 만이었다. 이듬해엔 한국전쟁사·북한학·군사전략을 배우지 않더라도 졸업할 수 있게 했다.
당시부터 알게 모르게 “코드 맞추기”란 반발이 있었다. 군인의 아들이자 그 자신이 육사 67기 출신인 김세진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한국군의 복잡다단한 근원을 『한국군의 뿌리』에 담으며 이렇게 썼다. “‘한국군의 뿌리는 독립군이다’라는 슬로건이 난무하고 육사 교내에 독립운동가 5인의 동상이 세워지는 현상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중략) 항일투쟁만을 부각해 개인과 조직의 세계관을 편협하게 만들고 정체성이란 관념에 갇혀 코앞의 안보 위협을 혼동하게 하는 위험한 선동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민족의 군대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군대이자 국가의 군대다.” 그와 통화했다.
-논란이 더 커졌다.
“독립군이나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하는 건 OK지만 (당시 조치는) 한국전쟁사를 선택과목으로 축소하고 육사의 뿌리를 신흥무관학교로 확장하면서 지금 안보 위협을 혼동하게 하는, 노 저팬 운동과 연계해 종합적으로 이뤄진 작업이었다. 육사 이전을 말하며 ‘너희들 말 안 들으면 이전한다’는 압박도 있었다.”
-당시 육사 교장이 강행했다던데.
“나중에 ‘압박 때문에 중심 잡느라 힘들었다’는 개인적 고충을 토로하더라. 그러나 그간 행적을 보면 본인을 위해 그리했다는 얘기도 있다.”(※당시 교장에게 문자를 남겼으나 답을 하지 않았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분석을 빌자면 문 전 대통령은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자신이 민족의 지도자인지 대한민국 통수권자인지 분간을 못 했다. 사실상 민족 지도자로 행동했다. 거기에 일부 군인들이 올라탔다. 과한 결과를 낳았다. 현 정권은 그걸 참아낼 생각이 없다. 못지않게 과한 결과를 낳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더 안타까운 건 장차 ‘위국헌신(爲國獻身)’ 군인의 길을 걸어야 할 생도들이 목격하고 있는 국가의 수준이다.
고정애 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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