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저주파 소음 공해 ‘무정부 상태’
B씨는 서울 강남구의 다세대 빌라 2층에 산다. 매일 오전 9시 30분이면 신경을 자극하는 소음과 진동이 집안 전체를 울린다. 아래층 중식당에서 사용하는 덕트(공조설비)의 모터 소리 때문이다. 다른 세대와 함께 강남구청 환경과·위생과 등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동일 건물 거주자여서 ‘소음·진동 관리법’을 적용할 수 없다거나 아래층이 일반음식점이고 B씨 집은 일반 거주지여서 법률상 조정이나 중재 대상이 아니라고 한단다. B씨는 이 상황을 층간소음의 사각지대라 부른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밀집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유사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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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 주변 송풍·공조기 소리
불쾌감·수면장애 부르는 주범
환경부 지침에 구제조항 없어
」
이 글은 공사장이나 주택가 식당 등의 주변 사업장에서 나오는 저주파 소음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호소할 데가 없어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쓴다. 인터넷에서 환경부가 2018년 7월 작성한 ‘저주파 소음 관리 가이드라인’(지침)을 찾아냈다. 이 지침을 읽고 필자에게 심한 불쾌감과 수면 장애를 주는 주범이 저주파 소음임을 알았다. 그렇게 가해자가 뚜렷하게 보여도 이 지침에 규제 조항과 구제책이 없다. 저주파 소음 공해에 관한 한 한국은 무정부 상태다.
이 지침은 저주파수 소음원으로 공사장과 사업장에 설치된 송풍기·공조기·발전기·변전기·집진기·펌프 등의 기계 및 풍력발전소를 가리키고 있다. 저주파 소음은 소형보다는 대형 기계에서, 그리고 일정한 속력으로 회전하는 모터를 장착한 장비에서 잘 발생한다고 한다.
사람 목소리의 주파수, 즉 음높이는 성별과 연령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100∼150㎐, 여성은 200∼250㎐ 정도의 기본 주파수를 가진다. 남성의 경우 90∼100㎐ 정도면 중저음인데, 이는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왜 100㎐나 그 이하 주파수의 송풍기나 공조기는 고통을 줄까. 온몸의 불쾌한 떨림과 그 폭력성 때문이다. 공사 현장의 대형 송풍기가 내는 소음은 주파수는 낮아도 진동 값이 커서 문을 닫아도 집안으로 강하게 침투해온다.
필자의 고통은 경기도 과천지식정보타운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도시개발사업과 직접 관련이 있다. S건설사 현장에서 큰 장비가 작동하면 지척에 있는 필자의 집 전체와 몸은 바르르 떨리고 ‘웅’하며 귀가 먹먹해지고, 어지러워져 글 한 줄 쓸 수 없다. 이제 어디서 자든 불면증·불안·우울증을 고려한 정신신경용제를 취침 전에 복용한다. 과천시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소용없어서 임시 거주할 곳을 마련했다.
‘소음·진동 관리법’은 귀에 민감한 대역, 즉 500㎐ 이상의 중·고주파수 대역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환경부 지침은 주로 100㎐ 이하 저주파 소음에 대한 판단 방법과 관리 절차를 적고 있다. 지침에는 앞으로 한국도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55세 이상의 중·장년층에서 저주파 소음에 대한 불만이 증가한다고 하므로 곧 고령화 시대에 들어서는 우리로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지침에는 또 ‘지자체 담당자는 저주파 소음의 영향으로 판단되는 경우 측정 결과와 원인 및 처리 결과를 소음·진동 관리법 제52조에 따른 연차보고서에 포함하여 환경부 장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있다. 그리고 민원 발생 시에 따라야 할 관리 절차와 저주파 소음원별 저감 대책도 담겨 있다. 지침에 ‘저주파 소음 영향의 판단을 위한 상담지’도 붙어 있지만, 필자는 상담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 서울시장과 과천시장은 이런 지침의 존재를 알고는 있을까.
층간소음 갈등은 폭력과 살인을 부르기도 했다. 이에 소음·진동 관리법과 공동주택 관리법에 따라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이 올해 나왔다. 쿵쿵거리는 발소리도 규제 대상이 된 것이다. 이윤 추구에 눈멀어 사람의 고통에 눈감는 건설사와 개인 사업주의 횡포를 막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공동 책임이다.
환경부 지침에는 ‘저주파 소음 관리 지도 사례’도 일본의 것만 들어 있다. 많이 늦었지만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2018년 이래 전국 지자체에서 올라온 연차보고서에 포함된 피해 사례를 취합·분석해 한시바삐 ‘저주파 소음 관리 규제법령’을 제정하길 촉구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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