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인간이라는, 어떤 블랙홀
영화 ‘오펜하이머’의 키워드는 ‘파멸의 연쇄반응’이다. 이 연쇄반응은 다분히 중의적이다. 주인공인 미국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해낼 때 착안했던 개념인 동시에 그 자신의 일대기를 응축한 말이기도 하다.
오펜하이머는 천재적인 지능에 카리스마까지 지녔지만, 섬세한 만큼 나약한 면도 있다. 그런 양면성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발화된다.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의 추진력과 만났을 때는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견인차가 되지만, 다른 이들에겐 부정적인 인물로 비쳐진다.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의 눈에 그는 오만한 데다 제 몫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었고, 동료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입장에서는 자기 명예를 위해 수소폭탄 개발을 가로막는 이기주의자였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 안경 너머의 그는 “손에 피가 묻은 거 같다고 징징대는 애”였다. 이 모든 것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오펜하이머를 파멸로 이끈다.
그게 어디 오펜하이머만의 일이랴. 살다 보면 “무심코 돌을 들췄다가 뱀을 만나” 자신이 원치 않았던 결과에 직면하곤 한다. “똑똑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원한을 사게 되고, 히틀러는 죽었지만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이상 쓰지 않고 끝낼 수는 없고, “일본은 혼 좀 나겠지” 했는데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라는 고백을 내뱉게 되고, 공로 메달을 목에 걸지만 “그 메달은 내가 아니라 상을 주는 이들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인과의 수레바퀴에서 무엇보다 아찔한 것은 어느 한 순간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원자들이 부딪히고 깨지며 핵분열 하듯이 인생이란 것도 숨가쁘게 이어지는 연쇄반응 속에 명멸해간다. 마침내, 인간은 모든 것이 집어삼켜지는 블랙홀이 된다. 그렇다면 그 사이 문득 밝았다 스러지는 빛은 최대치를 다한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일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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