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라이프톡]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E. H. 카)
역사는 과거에 묻혀있지 않고, 현재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재해석된다. 과거를 발굴하는 것은 역사학이지만, 그 결과를 현재에 활용하는 것은 정치인이다. 역사는 정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이데올로기가 된다. 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 논란이 바로 그렇다. 그의 삶은 현대인으로서 상상불가능한 곡절의 연속이다. 조선말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을미사변에 함경도 포수들을 규합해 의병을 일으켰다. 일제 식민탄압을 피해 만주로 무대를 옮겼다. 일제의 만주침략에 밀려 러시아 연해주로 들어갔다. 공산당에 가입했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홍범도의 투쟁은 세계사의 격동 현장을 관통하기에 복잡하고 까다롭다. 특히 러시아에서의 행적은 모호한 대목이 많아 정치적으로 활용되기 쉽다.
본지(31일자 12면)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국군의 뿌리를 '한미동맹'에서 '항일무장투쟁'으로 바꾸기위해 홍범도라는 역사에 주목했다. 정치적 의도 탓인지 홍범도 띄우기는 성급하고 지나쳤다.
왁자지끌했던 유해봉환 9개월만에 정권이 바뀌었다. 윤석열 정권은 미국·일본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외교안보철학을 펼쳤다.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우파 역사해석이 정치적 힘을 얻었다. 이번엔 홍범도 지우기다. 공산당원 홍범도에 주목한다면 육사 교정에서 흉상을 제거하자는 주장은 논리적이다.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담론을 장악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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