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 우드라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동시대의 불안을 초현실적인 그림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이시 우드(Issy Wood)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중세시대의 밀레니얼’로 불리는 이 젊은 작가는 지난 펜데믹 기간 동안 절망에 빠진 예술계를 구원할 잔다르크로 떠올랐다. 기묘한 동화의 한 장면처럼 초현실적인 그림으로 재현되는 동시대의 풍경과 고전 회화 양식의 절묘한 믹스매치, 그리고 작가의 스타성이 맞물린 결과다. 그림 뿐 아니라 그녀가 만든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유명 프로듀서 마크 론슨이 극찬을 하고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이시 우드는 이 요란한 법석엔 별 관심이 없다. 그녀는 일기를 쓰듯 매일 자신의 블로그에 짧은 글을 올리고,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부엌에 웅크린 채 곡을 만들며 조용히 하루 일과를 수행한다. 절망과 불안 속에서 피어난 미스테리한 펑키 코미디다. 9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는 이시 우드의 개인전(〈I like to watch〉)이 열린다. 첫 한국 방문을 앞두고 〈엘르〉와 단독으로 만난 그녀가 전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Q : 직접 소개를 부탁해요
A : 1993년 미국에서 태어난 영국 화가. 음악을 만들고 글도 씁니다.
Q : 당신의 모든 작품이 탄생하는 곳, 작업실 풍경이 궁금합니다
A : 제가 소속된 갤러리 ‘CARLOS/ISHIKAWA’ 바로 옆이에요. 혼잡한 메인 로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죠. 오래된 건물이 많고 과거 빈민가였던 화이트 채플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올드 런던’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던 런던’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작은 공간에서 셀 수 없이 다양한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서로 다른 인종과 계층이 향기를 공유해요. 여긴 계급도 없고, 질서를 강요하지도 않아요. 다만 밤엔 좀 무섭기 때문에 낮에만 여기서 작업하죠. 하지만 전 이곳이 마음에 듭니다.
Q : 음악 작업을 부엌에서 한다고 들었어요. 클래식 카툰 〈Little Audrey〉의 한 장면처럼 귀엽고 소란스러운 부엌이 떠오릅니다. 왜 부엌인가요
A : 2018년 말,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땐 작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장비를 둘 만한 유일한 장소가 식탁밖에 없었죠. 식탁은 집에서 제일 친숙한 장소이기도 했고요. 생각해 보면 할머니 집에선 항상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며 떠들거나 밥을 먹곤 했거든요. 친숙한 장소에서 친밀한 곡을 쓴다는 게 꽤 말이 되잖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이 소박한 환경에서 전곡을 작곡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게 버릇이 됐어요. 또 초기에 만든 노래 대다수가 전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인데, 그 음악을 만들 때 쓰던 식탁이 그의 것이었죠.
Q : 부엌 오케스트라는 요즘 무엇을 연주 중인가요
A : 하하. 반쯤 작업한 곡이 서너 개 되지만 끝내겠다는 의지가 없어 절망적인 상태? 팬데믹 기간에 작업한 수많은 곡은 몇 달 안에 릴리스될 겁니다. 아무래도 그때만큼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자책 중이에요. 오늘 저녁에도 전 노트북 앞에서 기타 루프를 녹음하는 대신 친구들을 만나러 가겠죠.
Q : 음악가이자 미술가로서 자신이 성장한 1990~2000년대의 런던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A : 무엇을 하든 모든 여자의 소녀시절은 ‘쿨의 결정체’예요. 전 여느 10대들처럼 스파이스 걸스에 열광했고, B*Witched, 올 세인츠 같은 소녀 밴드를 좋아했어요. 의사인 부모님은 당시 주 7일 근무를 해서 오빠랑 나는 보모와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우리 보모는 뭐랄까, 나를 ‘쿨’의 세계로 안내하는 한 줄기 빛이었어요.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데님 재킷에 데님 바지를 매치한 그녀의 스타일…. 보모는 내게 끝내주는 욕설을 알려줬고, 맛있는 요리를 해줬죠. 얼마나 추앙했는지 그녀가 일을 그만두자 전 한동안 식음을 전폐했어요. 그리고는 너바나, 머드허니 같은 어둠의 음악에 빠져들었죠.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할 땐 난 우리가 ‘픽시스(Pixies)’쯤 되는 위대한 밴드라고 생각했지만 곧 리드 싱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고, 음악 페스티벌에서 제 쇄골이 부러지면서 밴드 활동을 중단했어요. 다시 연주하기까진 그로부터 10년이 걸렸죠.
Q : 그런 시대적 · 문화적 유산들이 작업에서도 표출되고 있겠죠?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옷에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도 했고요
A : 옷이라기보다 할머니 ‘물건들’에 그림을 그렸죠. 제가 옷에 그림을 그리는 건 온라인 쇼핑으로 구입한 못난이 옷들의 반품 시기를 깜빡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걸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버렸어요. 내 생각에 화가들은 참 행운아이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해요. 저를 포함해 모든 화가는 ‘그림은 이미 죽었다’는 말을 백만 번도 넘게 들었고, 수공예 장인에 비교되며 논쟁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그런 반면 우리에겐 유서 깊은 미술사가 있고,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넘쳐나죠. 난 익숙한 고전명화 혹은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이미지를 작업에 갖고 오는 걸 좋아하지만, 둘 중 어느 한쪽을 선호하는 건 아니에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는 걸 알죠. 이런 진리는 한 시대에 특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선 이것이 동시대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Q : 그렇다면 그림과 음악에 배어 있는 특유의 유머 감각은 어디서 온 건가요? 그 유머들은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슬픕니다
A : 가족들! 우린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켜요. 지극히 ‘영국적’일 수도 있겠으나 영국이라 가능한 문화라고 보는 건 오만한 생각이겠죠. 작업실에 있는 동안 많은 코미디를 봐요. 최고의 코미디는 항상 우리를 깊은 어둠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웃게 만들죠. 아이폰을 사용하다 보면 눈물을 글썽이는 모양의 이모티콘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Q : 한국 첫 개인전 전시 포스터에도 눈물 짓는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있어요.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몇 개의 단어로 풀어본다면
A : 많은 친구가 그러더군요. 간단히 말해 한국은 ‘미래(The Future)’라고. 이 얼마나 모호한 말인가요! 대체 어떤 곳일지 멋대로 상상할 수 있어 좋아요. 아시아는 처음이라 기대도 되고요. 게다가 전 한국 음식을 사랑해요. 한국어도 배우고 있지만, 아마 너무 부끄러워 말도 꺼내지 못할 거예요. 문제는 제가 비행기 타는 걸 정말 싫어한다는 겁니다. 일단 한국에 도착하면 마음 푹 놓고 호기심이 발동하겠죠.
Q : 전시 제목 ‘I like to watch’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요? 유독 작품에 시계가 많이 등장하는데, ‘보는 것(Watching)’과 ‘시계(Watch/Clock)’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A : 세상에! 웃기지만 방금 ‘Watch’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했어요. 제겐 작품과 전시, 노래 제목으로 쓰려고 만든 단어와 문구들이 빼곡히 적힌 리스트가 있어요. 사실 ‘I like to watch’는 엄청 좋아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모습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상황을 떠올리며 만든 거예요. 변태 같지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변태.
Q : 이번 전시에서 특히 지켜봐야 할 작업이 있다면
A : 굳이 말하자면 작은 사이즈의 작품을 집중해서 봐줬으면 좋겠어요. 큰 작품에 가려 빛을 잃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 작은 작품들이야말로 실험적이고 자유로워요. 분명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Q : 마크 론슨과 작업한 슬픈 사랑 노래 ‘Debt’은 이번 전시에서 뮤직비디오로 소개됩니다. 기발하게도 모노폴리 게임을 통해 ‘감정적 독점(Emotional Monopoly)’을 얘기하죠. 모노폴리가 대공황 시기에 자본 독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만든 게임이란 걸 알면 더욱 흥미로워요
A : 집에서 가족과 자주 하던 보드게임이에요. 게임을 하다 보면 다들 엄청 심각해져서 가짜 돈이라는 걸 잊고 다투곤 하죠. 노래 ‘Debt’은 마음의 빚(Debt)을 갚는 얘기지만, 뮤직비디오엔 돈에 관한 유머러스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야 했고 바로 모노폴리를 떠올렸어요. 여기서 가사는 각 부동산의 이름을 대신합니다. 비디오를 만든 오토모 FX(Otomo FX)가 멋지게 해냈어요. 전 크래프트적인 부분을 아웃소싱하는 걸 잘 못하는데 좋은 협업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죠.
Q : 이 뮤직비디오의 컴퓨터 제작 이미지는 당신의 갤러리스트 카를로스의 언니가 맡았어요. ‘Carlos/Ishikawa’는 미술학교 재학시절부터 당신 작품을 소개해 왔는데, 인연이 궁금합니다
A : 친구가 바네사 카를로스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며 그녀에게 제 작품을 보여줬어요. 2016년 말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녀가 미술학교로 와 작업실에서 제 블로그를 읽었죠. 누군가 내 블로그를 검색해 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그걸 찾아냈다는 데 감동받았어요. 그리고 몇 시간 후 우리는 첫 번째 전시를 계획했고, 금세 친해졌죠. 바네사는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는 데 상당한 재능이 있어요. 대다수 갤러리스트와는 달리 인내심이 많고 관대하며, 제가 성장할 때까지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죠. 저보다 열 살이 많을 뿐이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충분히 보살핌을 받지 못한 내 마음의 분노를 치유해 줬어요. 가능하면 영원히 ‘카를로스/이시카와’와 함께하고 싶어요.
Q : 지난해 당신은 마크 론슨의 레이블 ‘젤리그 레코드(Zelig Records)’와 결별했어요. 가고시언 갤러리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도 봤습니다. 막강한 파워를 지닌 후원자들과 누구나 원하는 기회를 거절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A : 팬데믹은 유쾌하지 않지만 덕분에 생각할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이 주어졌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죠. 그 시간 동안 전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음악 레이블과 이미 함께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소통방식이나 상호협력 과정을 떠올려보면 공허했죠. 가고시언과 함께 전시하는 것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해 봤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어요.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브랜드나 일류라는 타이틀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죠. 예술가와 그의 작업을 돕는 사람들의 관계는 자존심이 아니라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해요.
Q : 그 후 당신에게 찾아온 변화가 있다면
A : 가끔 이런 메시지를 받아요. “개쩐다!!!” 제 결정에 대한 글을 본 사람들이 보내오는 기분 좋은 응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요. 달라진 건 없어요. 지금까지 늘 그래온 것처럼 전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여전히 그것들을 사랑하죠. 그리고 오래도록 이 일을 할 거예요.
Q : 요즘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 것’은
A : 최근 〈Mad Men〉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어요.
Q : 전시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초대해 줘서 기쁘고 감사해요. 제가 속한 세계와 멀리 떨어진 곳에 제 작업을 아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렇게 연결돼서 좋아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제가 누구인지 모르거나 관심을 갖지 않아도 나쁠 건 없겠죠. 그 역시 좋아요. 그건 저를 더 겸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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