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노산 실패의 책임
의학적으로는 산모의 연령이 출산 예정일을 기점으로 만 35세 이상인 경우를 노산(老産)이라 정의한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첫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평균 연령이 33세인 걸 고려하면, 이 기준이 지나치게 빡빡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결혼이 늦춰지는 만혼(晩婚) 경향으로 출산 역시 예년보다 뒤로 미뤄지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체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출산 시점을 쉬이 변경할 수 있는 문화적 구성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1978년 영국에서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Louise Brown)이 태어났다. 임신에 어려움을 겪던 브라운 부부가 이 담대한 시도에 동의한 덕분에 난임을 겪던 수많은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됐고, 현재도 시험관 아기(IVF) 방식이 난임 해결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루이스 브라운을 낳은 난임 산모 레슬리 브라운(Lesley Brown)이 아이를 낳을 당시의 나이가 31세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땐 초산(初産)을 평균 22.7세에 해서, 지금 기준으론 젊은 31세 산모조차 ‘난임’으로 분류되어 도전적인 난임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 IVF라는 기술의 도입이 지금과 같은 총체적 노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단 것이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소위 ‘난자 얼려두기’라 불리는 난자동결 시술의 출산 성공률이다. 2018년 스페인 연구팀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냉동 난자 5개를 시험관 아기 시술로 처리했을 때 실제로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15.8%에 불과했다. 냉동 난자 10개를 쓰면 42.8%, 20개를 써도 77.6%에 그친다. 그런데 난자동결 시점이 35세를 넘어가면, 얼려둔 난자 20개 사용하더라도 실제 아이를 가질 확률이 49.6%에 불과했다. 난자를 미리 얼려두고,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으면 임신에 큰 문제가 없다는 출처 불명의 주장이 별로 근거가 없는 것이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난임 시술을 받은 환자 수는 매년 3.8%씩 증가해 2022년엔 14만 명까지 늘었다. 2022년 출생아 수 25만 명의 절반을 부쩍 넘는 수다. 이런 많은 수의 부부들이 임신 시도 과정에서 지속적인 실패를 경험하며, 극도의 무력감과 우울을 경험한다. 기왕 출산을 늦출 것이라면, 난자동결이라도 35세 이전에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상식적인 의학 정보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다.
비혼과 비출산은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다. 그렇다고 출산 의지는 있되, 단지 시기를 늦추고자 하는 이들까지 방치한 게 양해되진 못한다.
현재의 노산 실패가 과연 산모만의 책임일까. 추락하는 출산율에 대한 호들갑과 문화 분석은 끝없이 늘고 있지만, 정작 출산 의지가 있는 노산 산모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되고 있는 지는 의문이 든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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