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과 이민기가 말하는 '힙'한 것

이마루 2023. 9. 1. 00: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웃음 버튼이 제대로 눌렸다. 드라마 <힙하게> 의 두 사람, 한지민과 이민기가 가꾸어낸 기묘하고 사랑스러운 세계.
이민기가 입은 블랙 레더 재킷은 Valentino. 아가일 패턴의 베스트는 Polo by Ralph Lauren. 팬츠는 Marni by 10 Corso Como Seoul. 한지민이 입은 카디건은 Weird Market. 러플 미니스커트는 Bmuet(te). 레드 백은 Alaïa. 귀고리는 Golden Dew.
「 한지민 」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은 Nancyboo.

Q : JTBC 드라마 〈힙하게〉 방영을 앞두고 만났습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수의사 봉예분 역할로 본격적인 코믹 연기를 펼칠 예정이죠. 지금 기분은

A : 너무 떨려요! 이번에는 유독 긴장되네요. 본격적인 코미디 장르가 처음이기도 하고, 코미디에 스릴러가 가미된 이 장르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해요. 예고편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촬영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저는 ‘움짤’ 생성기가 될지도 몰라요. 김석윤 감독님과 첫 방송 나가고 잠수 타자는 이야기도 했어요(웃음).

Q :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다는 배우들의 증언을 종종 듣고는 해요. 어땠나요

A : 항상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를 부러워했지만 그동안 직접 도전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어요. 코미디는 나뿐 아니라 상대역, 연출자까지 ‘감’이 있어야 하거든요. 이번에는 감독님과 함께하는 스태프들을 믿었죠.

이민기가 입은 데님 셔츠는 Recto. 화이트 탱크톱은 COS. 데님 팬츠는 Ami by 10 Corso Como Seoul. 한지민이 입은 데님 재킷은 Maje. 슬리브리스 톱은 Stu Office. 데님 오버올은 Portspure.

Q : 배우에게도 대중이 기대하는 모습이 있죠. 처음 만났을 때 봉예분은 어떤 캐릭터일 것 같았나요

A : ‘충청도에 사는 허당기 있는 수의사 역할’. 정말 이 문장에서 시작했어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과거를 읽을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을 가졌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지만, 우려되는 지점도 분명 있었죠. 주변 사람들은 제가 너무 망가진 모습으로 나올까 봐 걱정했고요. 그래도 저는 이런 제 모습도 새롭고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질 것 같은 기대가 있었어요. 사실 감사한 일이죠! 이런 대본을 받을 수 있는 여배우가 몇이나 있겠어요.

Q : 사람들의 기대에 반하는 인물을 연기할 때 배우로서 느끼는 기쁨도 있을 테고요

A : 그럼요. 특히 좋은 반응이 왔을 때 희열감이 크죠. 그래서 새로운 걸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기나 봐요. 예분은 이 시점에 할 수 있는 도전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여러 일을 겪다 보니 내가 배우로서 어떻게 보일까 하는 고민보다 작업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힙하게〉도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셨고, 실제로 행복했어요. 촬영장에서는 그 어떤 장면도 두렵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책임감도 나날이 커지겠죠 영화 〈미쓰백〉과 드라마 〈눈이 부시게〉 즈음부터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예전에는 나만 잘하면 됐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제가 현장 기운을 밝게 가져가려고 노력하면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해서 연기 외에 해야 할 일이 생긴 기분이에요. 남주혁(〈눈이 부시게〉〈조제〉), 정해인(〈봄밤〉), 김우빈(〈우리들의 블루스〉) 배우 등 계속 후배들과 만나기도 했고요.

Q : 이번에는 이민기, 수호와 함께했으니 부러워할 만한 조합입니다(웃음)

A : 제가 30대 초반일 때만 해도 남자 캐릭터가 연상이거나 리더십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대 흐름이 변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힘이 커졌죠. 수동적인 면모는 줄어들었고요. 대본을 받으면 연상연하 커플이 정말 많아요.

Q : 봉예분은 개나 고양이뿐 아니라 마을 가축도 살피고, 광어에게 백신을 놓기도 하죠. 촬영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A : 동물들도 다 살아 있잖아요. 촬영이 고생스럽지 않도록 모형을 똑같이 만들었어요. 대부분 첫 컷은 아이들이 편안한 상태에서 촬영하고 나중에 인형과 촬영하는 식으로 진행됐죠.

레드 셔츠와 미니 원피스는 모두 Valentino. 블랙 타이와 록 스터드 클러치백은 Valentino Garavani. 양말과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동물의 마음을 간절히 알고 싶어 해요. 다른 생명과 소통한다는 건 그 자체로 ‘찡’한 구석이 있죠

A : 첫 화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반려견이 밥을 먹지 않는다고 예분을 찾아오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자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고생하는 게 싫어서 일부러 밥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죠. 촬영장에서 보니 동물들도 촬영하다가 주인이 부르면 바라보고, 표정에서 감정이 느껴지더군요. 신기했어요.

Q : 다양한 장르의 인물을 통해 관객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내왔습니다. 특히 많은 공감을 받아 의미가 깊었던 역할은

A : 〈아는 와이프〉는 기혼자들로부터 ‘나도 연애할 때 저렇게 예뻤지’ 같은 공감을 많이 샀고, 〈미쓰백〉은 아동학대 근절이라는 영화 취지에 동감한 분들이 본인이 못 가더라도 극장 표를 예매하는 ‘영혼 보내기’까지 하며 응원해 주셨죠. 〈봄밤〉의 정인이도 많이 사랑받았어요. 여주인공이 이렇게 행동해도 되나 싶은 부분도 있는데, 저 또한 어떤 상황에도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 하는 정인이를 어느 순간부터 이해하고 정말 좋아하게 됐죠.

Q : 정인은 정말 일관성이 있었어요. 캐릭터가 가진 원칙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죠

A : 이렇게 작품에 관한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뻐요. “작품 잘 보고 있어요” “보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고민했던 연기가 잘 전달됐구나, 배우로서 제 역할을 했구나 싶거든요.

Q : 가끔은 전공인 사회복지학을 살려 배우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지도 상상할까요? 여러 사회 이슈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A : 배우 하기를 참 잘했죠(웃음). 저는 서울에 살면서도 수능 끝나고 나서 지하철을 처음 타봤을 정도로 동네를 벗어나지 않은,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그런데 배우 일을 하면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사람을 이해하면서 많이 성장했죠. 저는 지금의 제가 좋아요.

Q : 많은 것에 관대한 당신도 용납하기 어려운 게 있다면

A : 사람들이 제게는 잘해줘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저를 대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다를 때가 있어요. 신인이나 단역, 막내 스태프를 하대하는 분이 있으면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해요.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거든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지고요.

Q : 당신도 배우일 때 그런 보호를 받은 경험이 있었나요

A : 신인이었던 〈올인〉 때 혼나서 공포에 질렸던 적 있어요. 그때 송채환 선생님께서 제 손을 꼭 잡고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정말 감사했던 기억이에요. 그때는 작업 환경이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모두 밤을 새우다 보니 예민하기도 했고, 다그치고 몰아세우면 오기로라도 해낼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이제는 알죠. 연기는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한지민이 입은 미니 원피스는 Versace. 이민기가 입은 네이비 터틀넥은 Maison Margiela. 리넨 수트는 Kimseoryong.

Q : 오늘 촬영장에서도 스태프의 아이를 예뻐하더군요. 친밀한 어린이의 존재는 나와 동떨어진 세대와 가깝게 호흡하고, 다른 세대를 이해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A : 어린아이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아이들의 맑은 모습을 보면 ‘모두 맑고 순수한 시기가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주변에 어떤 어른이 있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나날이 느껴요. 좋은 어른의 역할은 뭘까, 어른으로서 어떤 방향성을 대화로 어떻게 제안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Q : 봉예분이 사람들에게 어떤 캐릭터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코믹한 캐릭터는 때로는 납작하게 설명되지만 배우로서 다른 걸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 같은데

A : 가장 도드라지는 지점은 정이 많다는 것, 일명 ‘오지라퍼’라는 거예요. 그래서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일인데 형사 장열(이민기)이 도와달라면 어쩔 수 없이 해줘요. 사이코메트리를 많이 하면 머리카락이 빠지는 데도요(웃음). 저는 사람을 잘 믿는 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서 생겨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분이가 사랑스럽고 정 많은 캐릭터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Q : 요즘은 ‘오지랖’을 부정적으로 많이 얘기하죠

A : 악, 정말요? 저도 오지랖 넓은데!

Q :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주변만 보지 않는 사람들

A : 전 그냥 신경이 쓰여요. 안테나를 잔뜩 달고 사는 기분이죠. 그런데 한번 발동이 걸린 마음은 그 문제에 관여하거나 해결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이번에도 제가 소를 타는 장면에서 대역이 세 분이나 오셨는데, 너무 마음이 쓰이는 거예요. 원래는 멋진 액션을 하는 분들일 텐데 기껏 와서 그냥 기다리다 가시면 어쩌나 싶고(웃음). 현장 스틸 컷도 일부러 그분들이 잘 나온 걸로 고르게 되고요.

Q : 우리에게는 왜 코미디가 필요할까요

A :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것처럼 어렵고 좋은 일은 없으니까요. 웃는 순간만큼은 어떤 근심걱정도 없잖아요. 그 순간 활짝 웃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기쁨이죠.

Q : 한지민이 최근 가장 크게 웃었던 순간은

A : 지난주에 민기 씨와 수호 씨의 뮤지컬 〈모차르트!〉를 보러 갔어요. 너무 잘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몇 분간 수호 씨가 무대 앞쪽에서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긴 거예요. 가까운 사람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나잖아요. 흘깃 옆을 보니 민기 씨도 이미 “쟤 1분 30초 전부터 저러고 있었어”라며 웃고 있더군요. 뒷좌석 분께는 죄송하지만 많이 웃었습니다.

Q : 한지민에게 ‘힙’이란

A : 자신이 추구하는 걸 눈치보지 않고 표현하는 것.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 그게 진짜 ‘힙’한 것 같아요.

「 이민기 」
수트는 Alexander McQueen.

Q : 들판과 잘 어울리는 남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전작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힙하게〉 또한 푸릇푸릇한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니까요

A :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뭐, 들판과 어울리는 남자, 아주 좋습니다(웃음).

Q : 하지만 〈나의 해방일지〉의 염창희와 〈힙하게〉의 문장열 모두 고즈넉한 풍경과는 상반되는, 자신의 처지로부터 탈출을 염원하는 ‘욕망캐’들이죠

A : 창희는 자신이 욕망으로 달리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주변과 회사 사람들이 달리는 방향에 휩쓸려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는 캐릭터였죠. 일이든 돈이든 ‘그 어디에든 꼭 깃발을 꽂아야 하나, 꼭 어딘가로 가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고 끝내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요. 장열이는 더 단순해요. 원래 자신이 있었던 수도권 광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꽂혀 앞뒤 재지 않는 친구죠. 코미디 장르라 과장된 면도, 막무가내인 면도 있고요. 그런 점이 다르겠죠.

Q : 이민기의 욕망은 이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A : 성공이나 성취욕, 심지어 승부욕도 별로 없어요. 다만 도전하는 건 좋아하니 일을 계속 의욕적으로 해나가고요. 새로운 역할을 맡아도 그걸로 뭔가 이뤄내겠다는 욕망은 없었는데 지난해 〈나의 해방일지〉를 끝내고 목표가 생겼어요. 깃발을 그쪽으로 꽂으니까 그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게 되더군요. 물론 저만의 목표이기 때문에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Q : 비밀이라니 더 캐묻고 싶어집니다(웃음). 상대방의 몸을 만지면 상대방의 과거가 보이는 극중 봉예분(한지민)의 능력이 탐날 정도로요

A : 그런 상상을 가끔 해요. 초능력이 생긴다든지 비현실적인 능력을 갖고 싶다는 갈망이 아직 있죠. 가까운 사람들의 과거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아요. 알면 스스로 불행해질 수도 있으니 능력이 있더라도 굳이 보지 않을 것 같고요. 스스로의 기억도 왜곡되는 경우가 많으니 일단 나부터 만져봐야 할 것 같은데요.

Q : 〈힙하게〉의 김석윤 감독과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춥니다. 전작에서 발휘된 ‘코믹력’과 예능 PD 출신 감독의 시너지가 제대로 폭발할 것 같습니다만

A : 사실 코미디적 호흡으로 얘기하자면 한지민 누나가 ‘액션’을, 저는 ‘리액션’을 담당해요. 장열이의 거친 성격이 관계를 리드하는 것처럼 보여도 진짜 포인트는 지민 누나 쪽에 있죠. 감독님도 전작은 드라마 장르니 인물과 환경의 흐름에 집중해 찍으셨다면, 이번에는 코미디 구조에 맞춰 어느 정도 판을 짜놓고 신을 만들어 찍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장르는 또 이렇게 촬영하시는구나, 새롭게 보게 된 부분도 있었죠.

한지민이 입은 리본 미니드레스는 Dew E Dew E. 진주 귀고리는 Golden Dew. 양말과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민기가 입은 베이지 니트는 Polo by Ralph Lauren. 화이트 셔츠는 Etro. 리넨 팬츠는 Kimseoryong. 슈즈는 Tod’s.

Q : 한지민 또한 김석윤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이니 타이 기록을 보유했네요. 진작 만나야 했을 사람들이 만난 것 같은, 어벤저스가 모인 듯한 현장이 그려지는데요

A : 감독님이 팀을 한번 꾸리면 거의 계속 함께하니까 대부분 다 아는 스태프였는데요. 지민 누나도 마찬가지죠. 그래서인지 서로 낯가림 같은 게 없었어요. 누나와 저도 처음부터 잘 섞일 수 있었고요.

Q : 한지민에게서 새롭게 발견한 매력이 있나요

A : 한지민이라는 사람 자체도 존경하지만, 배우로서도 참 멋있어요. 누나가 처음에는 코미디에 자신 없다고 했어요. 김석윤 감독이니까 믿고 한다며 함께 힘을 냈는데, 그럼에도 불편하거나 연기가 막힐 수 있잖아요. 그런데 누나는 한번 믿으면 정말 활짝 열고 믿더라고요. 감독님이 뭘 요구해도 ‘진짜 이렇게 해도 되는 거 맞아요?’ ‘저 못하겠어요’ 이런 태도는 없고 뭐든 해봅니다. 경력이 길수록 이게 쉽지 않거든요. 자기 안에 단단한 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문을 아주 쉽게 열고 받아들이더라고요.

Q : 엄청난 애정인데요! 무진마을의 수상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김선우를 연기한 수호의 뮤지컬 〈모차르트!〉를 함께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A : 둘이 관객석에 앉아 누나는 옆에서 ‘쟤 기특한 것 좀 봐’를 연발하고, 저는 흐뭇하게 웃었죠. 제 연기도 아닌데 괜히 뿌듯한 거 아시죠? 수호가 너무 잘해주니까 예쁘고, 멋지고, 현장과는 또 다른 모습도 발견했어요. ‘본업’이라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그간 쌓아온 가수로서의 자질과 연기가 하나로 접목된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Q : 당신의 배우생활 변곡점으로는 대부분 〈이번 생은 처음이라〉 혹은 〈나의 해방일지〉를 꼽을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스스로 변화를 준 작품이 있다면

A : 30대에 접어들고 처음 찍은 작품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인데, 그때부터 역할을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20대는 주로 흡수했던 시기였어요. 연기뿐 아니라 음악이든 사람이든, 뭐든 내 것으로 받아들였죠. 30대 때는 뭐든 분리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신과 일치시키는 게 서른이 지나고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역할은 그저 역할로 표현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요즘은 캐릭터가 마냥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역할에 푹 빠진 채 연기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내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달까요. 이제는 나를 드러내고 싶네요.

이민기가 입은 블랙 레더 재킷은 Valentino. 아가일 패턴의 베스트는 Polo by Ralph Lauren. 팬츠는 Marni by 10 Corso Como Seoul. 레이스업 슈즈는 Dolce & Gabbana. 한지민이 입은 보 카디건은 Weird Market. 러플 미니스커트는 Bmuet(te). 레드 백은 Alaïa. 귀고리는 Golden Dew. 화이트 스틸레토 힐은 Irostyle.

Q : 엄청 잘 속였네요. 최근 연기한 캐릭터들은 실제로 이민기가 저런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치된 느낌을 받았거든요

A : 분리하려고 해도 나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거니까, 어느 정도는 나 자신이니까 그렇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Q : 〈힙하게〉에는 당신을 전보다 더 많이 녹였나요

A : 저를 다시 꺼내 보고 싶었달까요. 세월이 지나고 사람도 바뀌어가면서 연기도 바뀌잖아요. 장열의 경우는 역할이 캐주얼하고 코미디적 캐릭터이다 보니 제 일상이 드러나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확실히 좀 더 자신을 붙여보려고 노력했죠.

Q : 낯설고 새로운 캐릭터에 친밀하게 접근하는 이민기만의 방식이 있나요

A :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았는데, 대본을 자주 보는 게 제일 도움이 되던데요. 내가 쓰는 표현들, 주로 느끼는 감정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잖아요. 그러니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캐릭터 대사를 자주 보고, 말을 자주 하고, 그 감정에 나를 자주 노출시키면 ‘그’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어요. 대본을 1시간 더 본다면 이민기보다 ‘그’인 시간이 1시간 늘어나니까. 사실 〈나의 해방일지〉의 창희를 보며 제가 그런 말투를 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속사포 같은 말투와 장기하의 비트를 붙여놓은 ‘밈’도 봤는데(웃음) 연기할 때는 전혀 몰랐거든요. 의도하지도 않았고요. 대본을 계속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 닮아가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 그 밈을 기억합니다(웃음). 늘상 진지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꽤 타율이 좋은 이민기의 ‘개그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나요? 혹 웃기려는 욕심도 있나요

A : 조금 있습니다. 스스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사람들 만나면 농담하려고 노력하는 거 보면 분명 있는 거겠죠. 웃기려고 집착은 하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기는 해요.

Q : 지금 세상에는 코미디가 왜 필요할까요. 〈힙하게〉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겠죠

A : 웃음기 없는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에너지는 일종의 ‘유행’인데,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연쇄적으로 그 우울감이 퍼지기도 하고, 밝은 기운은 또 그 자체로 빠르게 사람 사이로 전염되죠. 코미디의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가 SNS를 타고 돌면 즐거운 분위기도 생긴다고 봐요. 그런 기쁨의 알고리즘이 필요하죠.

Q :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작품도 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한 작품도 있다는 점이 배우생활의 기쁨이자 슬픔일 것 같습니다. 운이 안풀린다는 생각이 들 땐 어떻게 돌파하는 편인가요

A :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이 있었고, 그 이후 제가 일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면 돌파구를 찾았어야 했을 텐데요. 그래도 늘 다음은 있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힘들어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작품은 저 혼자 해내는 일도 아니잖아요. 혼자 힘들어하는 것도 웃기죠. 그래서인지 작품이 잘돼도 별로 즐기지도 못해요. 내가 누려야 할 게 아닌 것 같아서 눈치 보이거든요(웃음). 항상 중간쯤에 은은하게 머물러 있습니다.

Q : 은은하고 잔잔한 욕망일지라도 당신은 어떤 걸 욕망할지

A : 욕망이라기보다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으니 욕심과 가까운 것 같은데요.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고 싶어요. 영어 등 외국어 같은 ‘말’들 말이죠. 세상을 좀 더 가까이 느끼며 살고 싶거든요.

Q : 세상을 더 잘 느끼고 싶은 이민기에게 ‘힙’이란

A : 질문을 듣자마자 문득 생각난 건데, 지구를 잘 지켜야 하지 않나. 그게 요즘 할 수 있는 가장 ‘힙’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