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인 선배 있는 곳까지 올라갈래요
“김자인 언니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키 1m50㎝의 스포츠클라이머 김채영(16·신정고)이 말했다. 그는 지난 18일부터 열흘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산악문화센터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청소년 세계선수권 U18 부문 리드(확보 줄을 하고 높이 15m 인공 벽을 오르는 경기)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체격과 파워가 월등한 미국·유럽 선수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김채영이 롤모델로 삼은 김자인(35)은 2010년 IFSC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줄곧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을 대표해온 선수다. 김자인도 1m52㎝의 단신이다.
18세(U18·U16·U14) 이하 선수들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2개 은 2개를 따냈다. 스포츠클라이밍 역사와 저변이 부족한 한국으로선 기대 이상의 성과다. 특히 권기범(17·한광고)은 국제대회 두 번째 출전 만에 U18 리드 종목에서 우승했다. 결선 진출도 처음이었다.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미래로 불리는 권기범과 김채영을 대회가 한창인 서울산악문화센터에서 만났다.
45개국 596명이 출전한 대회에서 각각 1·2등을 했지만, 두 선수는 의외로 담담했다. 권기범은 “재미 삼아 하다 보니 상도 타게 됐다”고 했다. 클라이밍의 시작도 놀이였다. 권기범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놀이터에서 잘 놀았다. 이걸 보고 주변에서 ‘클라이밍을 시켜보라’고 해서 부모님이 구파발 인공암장에 데리고 갔다”고 했다. 김채영도 초등 2년 시절, 이모와 사촌오빠를 따라 인공암장에 놀러 간 게 시작이었다.
권기범은 서울 시내에 있는 10개의 암장을 ‘도장 깨기’를 하듯 다니며 훈련한다. 그는 “볼더링 위주로 훈련하는데, 한 암장에서 1주일에 한 벽씩 새로운 문제를 내기 때문에 매일 훈련 장소를 바꾼다”고 했다. 볼더링은 줄을 매지 않아도 되는 낮은 벽에 설치한 홀드를 잡고 오르는 종목이다. 홀드와 홀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문제를 푼다’고 말한다.
김채영은 성인 국가대표 서종국 감독이 운영하는 클라이밍 암장에서 훈련한다. 수업을 마친 뒤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하루 6시간을 암벽에 매달린다. 김채영은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김자인·서채현 언니랑 경쟁을 해봤다. 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창현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은 “스포츠클라이밍에서 16~17세는 눈에 띄게 기량이 좋아지는 시기다. 권기범은 홀드를 잡을 때 감각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김채영은 멘탈이 강하고 컨디션 조절을 잘하는 선수”라며 “두 선수는 앞으로 월드컵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둘은 학교 성적도 좋은 편으로 내신 성적 10% 이내에 든다. 난이도 높은 벽(리드)을 오르고, ‘루트 파인딩’을 통해 어려운 과제(볼더링)를 푸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능력이 필수적이다. 최근엔 스포츠클라이밍에 입문하는 청소년이 크게 늘었다. 10여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이재용 서울산악문화세터 강사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운동 능력뿐만 아니라 공간지각·수리능력을 담당하는 두정엽의 발달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봄이면 고미영컵 대회를 통해 청소년 대표를 선발한다. 이 대회는 고 고미영씨가 낭가파르밧(8125m) 등정 도중 사망한 이듬해인 2010년 그를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 지난 6월 대회에선 300여 명의 청소년 선수가 이 대회에 출전했다. 고미영은 김자인 이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스포츠클라이머였다. 이후 히말라야 고산 등반으로 전환했다.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는 일반인도 늘었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전국 인공암장은 600여 곳으로 10년 전보다 2배가량 늘었다. 스포츠클라이밍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한다.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은 김자인 이후 꾸준히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첫 정식종목으로 열린 2021년 도쿄올림픽에선 당시 고등학생이던 서채현(20)이 결선에 진출, 8위에 올랐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리드 종목에서 강세를 보인다.
이달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엔 총 6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한국은 이도현(20)과 서채현(20)이 남·여 콤바인(볼더링 리드)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김자인은 대표 선발전에서 3위에 그쳐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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