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심으로 시작한 뮤비 제작, 그 끝에 나를 발견했다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 (이승윤 작곡·작사 ‘무명성 지구인’)
권하정(31) 씨는 대학 졸업 후 집에 틀어박혔다. 가수 이승윤(34)의 노래만이 위로였다. 자발적으로 외출할 마음이 처음 든 것도 작은 카페에서 열린 이승윤의 콘서트가 계기였고, 처음으로 뭔가 해 보고 싶다 생각한 것은 이승윤의 뮤직비디오 제작. 함께 영화과를 다녔던 두 친구 김아현(30)·구은하(30)가 이 무모한 길에 동행했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먼저 만들어 열정을 증명해 보이기로 했다.
콘서트가 끝나길 기다려 제대로 말도 못한 채 뮤직비디오를 담은 USB 메모리와 편지를 주고 왔고, 이메일 회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영화처럼 가수의 답장이 왔다. “내내 울다가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꿈을 포기하셨는지는 제가 알 수는 없지만 하정님 길에 제가 제 노래가 도움된다면 무조건 함께하고 싶습니다. 권하정 감독님의 팬 이승윤 올림.”
6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현재, 조회 수 70만 뷰를 기록하고 있는 3분 30초짜리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시사 후 권하정 감독은 “첫 뮤직비디오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은 두려워서였다. 배우나 촬영감독·조명감독 등 영화 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고, 그들에게 나를 뭐라 설명해야 하냐는 질문부터 막혔다”고 돌아봤다. 권 감독은 “첫 장편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영화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2021)의 ‘30호 가수’로, 또 우승자로 대중들에게 알려졌지만, 2020년 당시의 이승윤은 대학가요제에 올라간 뒤 9년,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앨범을 준비하던 때였다. 간담회에 동석한 이승윤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사활을 걸고 태운 불꽃이 다른 누군가의 불꽃에 닿으면서 조금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3년 전 만든 이 79분짜리 다큐에는 관객들이 먼저 반응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에 이어 지난달 10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조기 매진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에너지 삼아 20대를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에 다른 청춘이 공명한 것이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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