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m 그림 속 피 흘리는 청년…“일본, 반성해야”

김현예 2023. 9.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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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코쿠’라는 필명의 초등학교 교사 출신 오하라 야이치이가 간토대지진 발생 3년 뒤인 1926년 그린 그림. 일본인 자경단에게 학살당하는 조선인들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현예 특파원

일본 도쿄 신오쿠보 고려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토(関東)대지진 100년 전시회’에서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은 총 2권으로 이뤄진 32m의 두루마리 그림이 일반에 첫 공개됐다.

고려박물관 전 관장인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 전 센슈대 역사학 교수가 공개한 이 그림의 1권 말미엔 조선인 학살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손에 곤봉과 죽창을 든 자경단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조선인들을 뒤쫓고, 학생 모자를 쓴 한 청년은 도망치다 칼에 찔렸는지 어깨부터 팔까지 선혈이 낭자하다. 무장한 군인과 자경단에 쫓기는 조선인들 뒤엔 산처럼 쌓여있는 주검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이 그려진 연대는 간토대지진(1923년 9월 1일)이 일어난 지 3년 뒤인 1926년. 수소문 끝에 작가는 ‘기코쿠(淇谷)’란 필명의 오하라 야이치이(大原弥市)인 것으로 확인됐다.

1862년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40여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기코쿠는 퇴직 후 2년이란 시간을 간토대지진의 참상을 기록하는 데 쏟아부었다. 그는 서문에 “이러한 참화를 조우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 반성의 마음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을 남겼다.

고려박물관의 토다 미쓰코 이사는 지난 30일 “일본 정부는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많은 정부의 공식 문서와 기록화를 통해 학살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최근 일본 교과서에서는 학살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부(負)의 역사를 직면해 실제 일어났던 일을 아는 것부터가 새로운 한일관계의 시작”이라며 “일본 정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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