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리스크까지…중진국 함정 빠지나
잃어버린 30년·리먼브라더스 사태 소환
자산 버블과 고령화…日과 닮은 꼴
최근 중국 경제 위기와 맞물려 가장 많이 소환되는 국가는 다름 아닌 ‘일본’이다. 중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입에 들어서 있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잃어버린 30년은 1980년대 후반 주가 폭락을 시작으로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일본의 장기 불황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요약하면 ‘경기 침체’와 ‘자산 가치 하락’의 악순환이라고 볼 수 있다. 내수 침체로 소득이 줄어들면서 주택 수요가 급락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거품이 끼어 있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부동산 붕괴로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소비·투자 심리는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중국도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0년대 연평균 7%대 고성장을 유지하던 중국은 팬데믹 기간 2%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도 성장률 3%에 그치며 침체 양상을 보였다. 올해 2분기에는 0.8%까지 떨어졌다. 올해 6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경기 침체가 부동산 시장 붕괴를 이끌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분양 상업용 부동산 면적(6억4159만㎡)은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고 같은 기간 신규 착공 주택 면적(3억6340만㎡)은 24.9%나 감소했다. 부동산 개발 투자 증가율은 상반기 -8.5%로, 5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는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디폴트 위기로 이어졌다.
여기저기 경고음이 터져 나오자 투자와 소비 모두 위축됐다. 중국의 올해 7월 은행 신규 대출 규모는 전월 대비 89% 줄었다. 경기 악화를 전망하는 탓에 돈을 빌리지 않게 된 것. 소비도 줄었다. 소비 심리를 반영하는 종합 물가 수준 지표인 ‘GDP디플레이터’는 올해 상반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0.6% 감소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중국 GDP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건 1998년과 2008년, 단 두 차례뿐이다.
잃어버린 30년의 또 다른 원흉으로 꼽히는 ‘인구 고령화’에서도 일본 전철을 답습하는 중이다. 중국 출산율은 1980년대 후반 2.6명에서 2021년 1.15명까지 줄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 역시 고령사회 기준치인 14%에 2021년 도달했다. 일본과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은 뒤 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중국은 1만2000달러 수준에서 벌써 고령사회가 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 침체에 미국 수입 규제에 따른 수출 부진,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공급 과잉까지 겹치면서 중국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위기가 금융 전반으로 확산
중국 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역시 ‘부동산 시장 붕괴’다. 중국 GDP 25%를 차지할 만큼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붕괴가 금융기관 파산으로 이어지면 2008년 금융위기를 부른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세계 4위 투자은행으로 꼽히던 미국 리먼브라더스가 2008년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촉발됐다. 부실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담보대출)와 파생상품 손실에서 비롯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역사상 최대 규모 파산으로, 당장 시장 유동성이 마르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을 하던 수많은 기업과 개인이 연쇄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 상황도 비슷하다. 매출 기준 중국 1위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직면하면서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비구이위안 미상환 채권 보유액은 717억5602만위안(약 13조1100억원), 총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조4000억위안(약 255조7800억원)에 달한다.
부동산 위기는 금융으로까지 번져갔다. 많은 중국 금융 기업이 그간 부동산 상품에 투자해 막대한 융자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최대 규모 민영 자산관리그룹인 ‘중즈계’ 산하의 국유 기업 ‘중룽신탁’이다. 최근 투자 실패로 3500억위안(약 64조원) 규모 지급 중단 상태에 빠졌다. 중즈계 금융 기업인 진보홀딩스, 난두물업, 셴헝인터내셔널 등 3사는 지난 8월 공시를 내고 계열 핵심사인 중룽신탁의 지불 유예 소식을 공개했다. 만기가 된 상품의 현금 지급을 연기했다는 얘기다. 지불 유예 액수는 최대 11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불 유예와 디폴트 리스크에 따른 피해 확산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즈계가 산하 운용사 고객인 수많은 기업과 부유층에 판매한 금융상품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즈계가 관리하는 총 자산 규모는 약 1조위안(약 18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중즈계 외에 다른 중국 신탁사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투자신탁 산업은 운용 자산 규모가 2조9000억달러(약 3893조원)에 이를 만큼 오랫동안 부동산 개발 업체의 돈줄 역할을 해왔다. 중국 정부가 대출 고삐를 조이면서, 부동산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신탁업계에서 주로 자금을 조달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중국 전체 신탁의 13%인 2조8000억위안(약 511조5600억원)이 부동산 사업과 지방정부 부채에 노출돼 있어 디폴트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처럼 중국 전체 경제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중국 금융과 주요 기업이 철저히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4대 은행인 중국·공상·건설·농업은행이 모두 국유 기업이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금융은 정부가 쥐고 있는 데다 금융권 국영 기업 비중을 보면 부동산은 10% 수준이다. 부동산이 무너진다고 중국 국영 금융 기업이 같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라며 “중국 경제를 흔들 만한 규모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3) 중진국 함정
생산성 하락…선진국 입성 어렵다?
중국 경제 전반에 적신호가 들어오면서 선진국 반열에 진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의견이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저임금 제조업을 앞세운 저소득 국가가 중진국까지는 빠른 성장이 가능하지만 선진국 도약까지는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용어다. 러시아, 멕시코, 남아공 등이 중진국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진 이유는 바로 ‘생산성 하락’이다. 경제 성장에 따른 생산비용과 인건비 증가 등 요인으로 자본 생산성과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후진국의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국도 중진국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중국 한계고정자본계수(ICOR)는 계속 상승 중이다. 1990년대 말 3.3에서 최근 10을 넘어섰다. 한계고정자본계수는 높을수록 부정적이다. 한 단위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예전에는 자본이 3.3만 있어도 됐다면 이제는 그 3배 이상 자본 투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노동 생산성도 하락이 불가피하다. 인구 고령화와 핵심 연령인구(25~49세) 감소 탓이다. 노동인구는 2015년 8억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낮은 교육 수준도 향후 중국 노동 생산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중국 생산가능인구 중 고졸 이상 학력자 비율은 28%다. OECD 평균 79%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미국과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첨단 기술 패권 전쟁’ 역시 중국 생산성에는 악재다. 노동 생산성 향상이 어려우면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으로 구조를 바꿔야 하지만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터 등 기술 분야 투자를 제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중국 경제는 자력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지만 최근 해외로부터 기술 이전과 첨단 제품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고민이 더욱 커진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중국에 중진국 함정을 논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같은 고성장은 어렵겠지만 미국과 함께 G2라고 불리는 경제 대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산업통상본부장은 “중진국 함정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처럼 상당한 수준의 경제 규모를 지녔음에도 자국 제조업 기반이 부실한 국가에나 해당하는 얘기”라며 “이미 제조 강국에 튼튼한 산업 기반을 가진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말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역시 “중국이 세계 평균은 물론 미국, 일본, 한국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적이 없다”며 “역사적으로도 5% 이상 성장을 계속 유지하는 국가가 중진국 함정에 빠진 적은 없다”고 말했다.
(4) 시진핑 리스크
빅테크 때리기, 정책 의구심 키워
중국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시진핑 리더십’도 전에 없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동안 고수해온 규제 일변도 정책과 권위주의가 중국 위기를 키웠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다. 3연임에 이르기까지 당 장악력 강화를 위해 민간 부문 규제와 압력을 높인 결과, 전방위적인 위기가 찾아왔다는 지적이다.
이번 위기를 촉발한 부동산 위기 역시 시진핑 정부의 ‘부동산 때리기’에서 시작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20년 8월 중국 정부는 부동산 기업의 빚이 너무 많다며 이른바 3대 ‘레드라인’을 내놨다. ① 부동산 기업 자산·부채비율이 70%를 넘지 않고 ② 순부채율 100%를 넘지 않으며 ③ 현금성 자산이 단기 부채보다 많아야 한다는 엄격한 규제를 골자로 한다. 과도한 시장 개입이 결국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 주석은 부동산 외에도 수많은 민간 기업 규제로 악명이 자자하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 10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공개 행사에서 당국 규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설화 사건’을 계기로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당국이 직접 개입해 알리바바그룹 구조를 개편하는가 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반독점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이 밖에 글로벌 최대 게임 기업 ‘텐센트’, 중국 최대 생활 서비스 플랫폼 ‘메이퇀’ 같은 곳이 규제 철퇴를 맞았다. 규제가 시작되고 나서 중국의 수많은 빅테크 기업 실적이 크게 악화되기도 했다.
내수 부진과 수출 악화 역시 시진핑 실착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은종학 국민대 중국학부 교수는 “시진핑 정권의 부동산 규제와 빅테크 규제는 그 자체로서 부작용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며 “해외 자본이 빠지는 것은 물론 중국 내에서도 시진핑 정책의 불확실성 탓에 경제 활동이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공동 부유로 요약되는 시진핑 정권의 사회주의 색채 강화가 민간 부문 경제 활력을 약화시키면서 위기를 키웠다”며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 미-중 기술 패권 전쟁과 공급망 갈등도 결국 권위주의의 결과”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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