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100만 관중 시대 재현 목표… AG 선전 믿어”
한국 농구의 전성기로 불리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경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농구장 매표소 앞엔 기다란 행렬이 이어졌다. 줄을 선 보람 없이 결국 입장권을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이도 여럿이었다. 인근 경찰들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아예 농구장으로 출근하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지난 2022-2023시즌 프로농구 평균 시청률은 고작 0.10%. 관중 수도 시즌 최종 승자를 가리는 챔피언결정전에 접어들어야 3000명 선을 겨우 웃돌았다. 10여년간 이어지고 있는 프로농구의 위기에 한국농구연맹(KBL)의 어깨도 무겁다. 취임 직후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위기를 넘기고 이제 ‘100만 관중’을 꿈꾼다는 김희옥 제10대 KBL 총재를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1년 7월 총재직 맡았을 땐 코로나19가 한창이었다.
“취임 당시엔 리그를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코로나19로 무관중 또는 제한 입장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리그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첫 시즌에는 경기를 일정대로 치를지를 놓고 하루하루 피 말리는 순간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농구영신’을 제외한 모든 이벤트를 치르며 리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헌법재판관, 동국대 총장 출신이다. 연맹의 일이 꽤 달랐을 텐데.
“와 보니 재정 문제가 제일 열악하더라. 이사회에선 늘 적자 운영이 고민이라고 했다. 쓰임새를 줄이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여러 고민을 한 끝에 만성적자 구조에서 벗어났다. 2년 연속 흑자 재정을 이뤘고 임기 마지막 해에도 흑자가 예상돼 취임 때 약속한 ‘사상 첫 3년 연속 흑자 및 3년 임기내 50억원 흑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임기엔 각 구단과의 공조 및 국제경쟁력 강화 등을 지렛대 삼아 ‘100만 관중’을 구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프로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인기가 떨어진 건 분명하다. 예전 ‘농구대잔치’ 시절에 비하면 스타 플레이어가 잘 나오지 않는 현실이다. 프로야구 등 경쟁 종목들이 팬들의 관심 속에 약진을 거듭하는 동안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인기가 처졌다. 스타플레이어를 발굴하고, 키우고, 띄우는 일에 힘써야 하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팬들이 흥분할 수 있는 경기를 많이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좀 더 많은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구단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겠다.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
-저변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다.
“인구가 자꾸 줄어들어 인적 자원이 부족해지면 스포츠계엔 치명적이다. 농구의 경우 다른 종목보다도 중고등학교 팀들이 많이 줄었다. 공급 루트가 확실히 적다. 처음 임기를 맡았을 땐 ‘우수 선수를 지원해서 선수 수를 확보하고 엘리트 선수 양성도 활성화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유소년 대회나 미국 유학 프로그램 등 좋은 프로그램들도 많더라. 기존 프로그램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은 꽤 고무적이었다.
“지난 챔프전 현장에선 옛 영광 재현의 가능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경기가 만원 관중을 이뤘고, 최종 7차전에선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가 연출됐다. 팬들도 이런 경기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래도 코로나19가 한풀 꺾인 후라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 국내 선수의 기량도 크게 좋아져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선수들이 기량을 펼치기엔 국내 무대가 좁다는 시각도 있다.
“해외 스카우터와 국내리그의 접점을 늘릴 수 있는 직접적 방안을 좀 더 고민해보도록 하겠다. 국제무대에 자주 나서고 다른 나라 리그와의 교류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시즌 안양 KGC(현 정관장)가 동아시아슈퍼리그(EASL)에 참여해 원년챔프에 오르기도 했고, 최근 일본 B리그 집행부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외국 스카우터들이 국내리그에 좀 더 관심을 갖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데이원 문제로 농구계가 몸살을 앓았다.
“KBL은 각 구단으로 구성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개별 구단인 각 회원은 임의로 탈퇴할 수도 있고, KBL의 승인을 받아 구단을 양도·양수할 수도 있다. 지난 시즌에는 오리온 구단이 KBL과 사전 협의 없이 데이원에 구단을 양도했는데 그 양수한 데이원 구단이 재정적으로 워낙 부실해서 시즌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KBL은 정관과 관련 법규에 따라 데이원을 제명하고 새로운 구단으로 소노의 창단을 승인했다.”
-재발 방지 계획이 있을까.
“사실 이런 문제는 KBL에서 특별한 대책을 준비하기는 어렵다. 연맹 차원에서는 그간 포괄적·선언적이었던 신규회원 가입 심사 기준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으로 가다듬는 등 노력해왔다. ‘데이원 사태’가 프로농구 인기 하락의 틈새를 파고들면서 빚어진 측면도 있는 만큼 프로농구 중흥이 보다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한국은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는데.
“이왕이면 우승했으면 좋겠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홈팀 중국을 비롯해 일본 필리핀 등 전통의 강호는 물론 최근 전력이 크게 좋아진 중동 국가들까지 가세해 쉽지 않은 메달 경쟁이 펼쳐지겠지만 선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추일승 감독을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단 모두의 각오가 굳건하다. 연맹 차원에선 라건아(KCC) 선수와 관련된 직접적인 지원과 함께 선수단 전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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