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는 알고 있었다, ‘단독’을 추구하는 세상의 변화

김남중 2023. 8. 3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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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단독성들의 사회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지음, 윤재왕 옮김
새물결, 672쪽, 3만4000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독일 베를린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문화사회학자이자 문화이론가로 2019년 발표한 책 ‘단독성들의 사회’로 서구 인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출판사 새물결은 ‘단독성들의 사회’ 출간에 이어 레크비츠의 저서들을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새물결 제공


지난달 쓴 이슬아 작가 인터뷰에서 ‘행동파, 창안가, 퍼포머’로 그를 소개했다. 작가에 대한 설명으로는 이례적인 단어들이라고 덧붙이면서. 독일 사회학자로 베를린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인 안드레아스 레크비츠의 책 ‘단독성들의 사회’를 읽고 이것이 이례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새로운 지식경제와 문화경제에서는 노동주체가 비정상적인, 즉 독특한 ‘프로필’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후기근대의 주체는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특수한 자아를 퍼포먼스로 펼치고, 그리하여 타인들은 곧 자아의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관중이 된다.”

이슬아도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에세이 쓰기에는 연극적인 데가 있다”며 “에세이 작가도 어떤 롤을 수행한다. 일종의 무대이기 때문에 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꾸며낸 자아를 전시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레크비츠의 책은 이슬아가 직감으로 알고 있던 세상의 변화를 설명해준다. 레크비츠는 1980년대 이후 후기근대에서 일어난 포괄적인 구조변화를 ‘단독화’로 규정한다.

“후기근대 들어 보편성의 사회논리가 특수성의 사회논리에 지배권을 상실하는 사회적 구조변경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특수하고 독특한 것, 즉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나는 ‘단독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산업자본주의가 아니라 문화자본주의다. 표준화된 대량재화의 경제로부터 지식경제와 창조경제, 문화경제 등을 중심으로 한 ‘단독성 경제’로 전환됐다. 새로운 경제에서 유통되는 핵심적 재화는 ‘문화적 재화’이고, 문화적 재화의 알맹이는 단독성이다. “단독적 재화는 가치와 질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반면 표준화된 재화는 그저 효용만을 제공하는 통속적 재화로 여겨진다.”

근대적 직업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독특성에 대한 지향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노동상태의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변경했다. “노동이라는 실천이 더 이상 표준화된 재화와 용역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단독적이고 매력적인 재화의 제작으로 변하고, 노동이 기본적으로 문화적 생산을 향해 가며 창조노동으로 변한다.”


이 시대에 노동자는 자신을 단독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주목과 가치설정을 둘러싸고 다른 사람과 벌이는 경쟁에서 자신의 특수성을 발휘할 때만 온전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화화한 노동은 소득, 안정성, 지위 등 산업사회 노동의 동기도 변화시킨다. 지식경제와 문화경제에서 활동하는 고능력자들에게 노동은 생계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문화적 미학적 윤리적 실천이자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펼쳐보이는 퍼포먼스로 여겨진다.

책은 단독화 과정에 디지털 기술들이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면서 그 명암을 분석한다. 또 단독성들의 시대를 주도하는 계층으로 신중간계급을 주목하면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폭넓게 조명한다. 중산층이 지식경제와 문화경제에 종사하는 대졸자 중심의 신중간계급과 전통적인 노동을 감당하는 신하위계급으로 분화되고 이들 사이에서 심화되는 격차가 양극화 시대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단독화라는 흐름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마지막 장도 흥미롭다. 저자는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은 재화의 양극화, 노동의 양극화, 중산층 양극화, 라이프스타일과 주거의 양극화 등 여러 차원으로 진행되는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한다.

이 책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서구 인문학계의 격찬이나 “물리학에서 고전역학이 양자역학으로 넘어간 듯한 지적 충격을 사회학계에 던져준다”고 한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의 추천사를 보면서 외면하긴 힘들다. 책은 현대사회를 읽어내는 하나의 유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또 밀레니얼세대가 왜 그렇게 독특한지, 사람들이 왜 다들 유튜브 채널을 열고 SNS에 시간을 바치는지, 어떤 상품이나 현상이 왜 뜨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게 해준다. 일단 서론을 정독하면 끝까지 읽을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담을 하나 붙이자면 단독성이란 기자들이 오래 전부터 추구해온 가치이기도 하다. 다른 기자들에 앞서 제일 먼저 쓴 기사, 발행 당시 유일한 기사를 ‘단독’이라고 부른다. 단독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는 기자 역량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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