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서 '허대만'으로... "민주당의 맛을 잃는 순간..."

박소희 2023. 8. 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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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병립형 회귀' 만지작거리는 민주당... 멀어지는 정치개혁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소희 기자]

 임미애 경북도당 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 허대만 1주기 토론회 '민주당,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 남소연
 
부분은 전체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을까. 21대 국회를 취재한 지 만 3년, 의원 개개인을 만나면 저마다의 고민과 철학이 있다. 하지만 그 고민과 철학은 대개 당 앞에서 초라해진다. 때로는 단 6g짜리 '금배지'를 사수하려는 의지만 남는 경우도 있다. 무엇을 하겠다는 고민과 철학(목적)을 뒷받침하기 위한 힘(수단)이건만, 어느 순간 목적은 사라지고 그 수단이 목적으로 등치되는 경우도 본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해온 얘기라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럼에도 아직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은 정치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고 허대만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1주기 추모토론회는 이 마음을 모으는 자리였다. 허대만이 누구인가. '과메기가 나와도 진다'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고향 포항에서 줄곧 민주당 계열로 출마해 199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의원 배지 한 번 달았다. 20여년 동안 '죽은 표' 26만 2278표만 받았던 그는 2022년 8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태일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허 위원장은 사실 아주 여린 분"이라며 "그런데 오랜 세월을 지역구도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아넣었으니 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지 않았냐며 많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고 했다. 또 "그의 유지(遺旨)가 무엇인지 빈소에서 얘기를 나눴는데 가장 핵심은 역시 선거제도 개혁이었다"며 "1년 전 우리가 했던 얘기가 어떻게 되나 챙겨보자고 해서 이 자리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철저하게 기득권 집단"이라는 절규

이어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절규에 가까운 발제였다.

"민주당은 철저하게 기득권 집단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이 없다. 선거제도 개혁은 여야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로 모든 걸 피해간다.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가. 아니, 책임 있다. 2017년 촛불로 정권을 잡고 2018년 지방권력을 싹쓸이하고 2020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압승을 거뒀다. 국가권력, 지방권력, 입법부 권력까지 모두 가져왔을 때 '지금 이 시기가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해야 할 아주 절호의 기회'란 목소리가 민주당 내에서 나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관심이 없었다.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바빴고, 어떻게 하면 다음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이길까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중략)... 민주당은 원래부터 기득권 집단도 아니었고, 정치개혁에 소극적인 집단도 아니었다. 민주당이 민주당의 맛을 잃어버린 순간 국민들이 민주당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게 오늘날 민주당의 모습이고, 민주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높이라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윤호중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022년 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이 아무 일도 안 하진 않았다. 약속은 했다. 지키지 않았을 뿐이다. 2022년 2월 27일 민주당은 일요일 밤에도 의원총회를 열어 ▲대통령 4년 중임제·결선투표제 개헌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지방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이 포함된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절박한 정치개혁 과제를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반드시 실천할 것을 국민 앞에서 엄숙하게 결의하고 약속드린다"고도 못박았다.

2022년 8월 28일 전당대회 때도 약속은 했다. 이날 민주당은 2월의 '국민통합 정치개혁 의원 결의'를 보다 구체화한 '국민통합 정치교체를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하고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현행 선거법을 개정하고,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는 제도적 개혁을 내년 4월 중에 마무리 짓겠다"고도 못박았다. "민주당부터 솔선하겠다. 정치공학이나 선거의 유·불리, 앞으로의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도 했다.

2023년 8월 29일에도 약속은 계속 됐다. 이날 민주당은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기를 앞두고 8대 과제를 담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7번은 "양당 독식 완화, 비례성 강화, 소수정당 원내진입 뒷받침 등 3대 원칙을 바탕으로 국민의 뜻이 온전히 반영되는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겠다"였다. 동시에 여의도에선 '민주당이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고민한다'는 풍문이 떠돈다. 현재 제도로는 어떤 수를 써도 위성정당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약속 계속 됐지만... 또 '어쩔 수 없다' 변명할까

허대만 위원장은 2020년 총선을 한 달여 앞둔 2월 28일, 경북 포항남·울릉 예비후보 자격으로 '위성정당 창당 추진을 반대한다'는 논평을 냈다. 그는 "위성정당 창당을 꼼수로 여태까지 비판하다가 일당 지위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갑자기 민주당도 추진한다면 민주당은 두 번 죽게 될 것"이라며 "국민을 믿고 일관되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꼼수를 비판하면서 지지자와 당원들의 선택을 믿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끝내 위성정당 창당에 동참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일을 제대로 사과한 적은 없다. "위성정당으로 선거개혁을 실종시킨 '승자독식 정치', 우리 잘못에는 눈감는 '내로남불 정치', 민생 현실과 동떨어진 '소모적 대결 정치', 민주당이 먼저 반성한다(2022년 2월 27일 결의문)"며 대선을 코앞에 두고 쫓기듯 내놓은 반성문은 그 어떤 울림도 주지 못했다.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라던 조건은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텅 빈 수식어가 되어버렸다. 정치개혁을 약속했던 이재명 대표도 사실상 침묵한 지 오래다. 

그런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막을 수 없으니 병립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또 다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반복한다면 국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약속했던 개혁은 희미해지고, 사람들의 냉소는 깊어져 가는 사이에 '우리도 ○○○ 정신을 이어받아 할 만큼 해봤는데 안 되더라'는 민주당의 알리바이만 바뀌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허대만 위원장으로. 
 
 2018년 8월 12일 오후 경북 안동시 그랜드호텔에서 실시된 민주당 경북도당 도당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허대만 후보.
ⓒ 허대만 페이스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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